샘 페킨파의 [가르시아]를 보았습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영화지요. 전 옛날옛적 이 영화를 먼 동네에 있는 으뜸과버금 체인점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었는데, 지금은 왓챠에도 있고 웨이브에도 있습니다. 클릭 몇 번이면 볼 수 있는 영화죠.

이 영화의 원제인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제목의 탑 텐 안에 들어가는데, 한국의 비디오 업자들이 이걸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제목으로 줄여놨지요.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가르시아는 영어권의 스미스처럼 흔해빠진 이름이라 정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의 제목과 기본 아이디어는 공동각본가인 프랭크 코왈스키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제목이 완성되면 영화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요. 제목의 대사를 읊는 사람은 그냥 엘 헤페(보스)라고 불리우는 나이 든 남자입니다. 알프레드 가르시아라는 남자가 딸을 임신시켰고 남자는 가르시아의 목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겁니다. 하청이 이어지고 워렌 오츠가 연기하는 베니에게도 그 소식이 들어갑니다. 베니는 알프레도 가르시아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 머리를 갖고 가면 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는 것은 알죠. 베니는 남들이 모르는 것도 아는데, 알프레도 가르시아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죠. 베니는 한 때 가르시아의 애인이었던 여자친구 엘리타와 함께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지러 갑니다.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머리는 몰타의 매, [레이더스]의 성궤와 함께,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맥거핀으로 종종 언급됩니다.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무의미한 물건입니다. 가르시아는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닙니다. 엘 헤페도 제목의 문장을 홧김에 내뱉었을 뿐이고, 그 뒤에 이 남자에 대해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점이 무엇이건 이 머리는 점점 시체들을 만들어 갑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하지만 가르시아는 샘 페킨파 유니버스에 속해 있고 그 곳에서는 방아쇠가 우리 유니버스보다 훨씬 쉽게 당겨집니다. (그리고 총알이 사람에 맞는 순간 갑자기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지요.) 종종 영화가 이 맥거핀을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힘있는 사람들의 가볍고 하찮은 언동이 큰 갈망을 품고 있는 밑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전 이야기꾼이니까 이걸 이야기꾼과 캐릭터의 관계의 비유로 읽기도 합니다. 조금 더 무리하면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정치적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찍은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여기에 어떻게 복잡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죠.

이 영화의 문학적 시조는 아마 셰익스피어의 [햄릿]일 겁니다. 베니는 갱스터 버전 햄릿이고 알프레도 가르시아는 요릭이죠. 그러니까 이 영화는 [햄릿]의 무덤 장면을 확장해서 네오 웨스턴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실제로 베니는 가르시아의 머리를 챙기고 그 머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머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갑자기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죽은 남자의 머리를 챙겨 번 돈으로 여자친구랑 오손도손 살아야지'라는 첫 생각에서 점점 더 벗어납니다. 피투성이 결말도 꼭 페킨파 영화여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생각이 많아지면 사람이 좀 이상해지지 않나요. 물론 감독의 전기적 사실이 중요한 관객들은 당시 페킨파가 마약과 알코올로 몸과 마음이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의 컴컴한 분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할 겁니다.

페킨파가 유일하게 최종편집권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하긴 재편집하면 멀쩡해 보일 수도 있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포장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냥 이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24/08/17)

★★★★

기타등등
1. 베니와 여자친구가 초반에 만나는 바이커 중 한 명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입니다.

2. 영화 후반에 나오는 [타임] 매거진 표지로 이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가 1973년 11월 무렵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독: Sam Peckinpah, 배우: Warren Oates, Isela Vega, Robert Webber, Gig Young, Helmut Dantine, Emilio Fernández, Kris Kristofferson, Donnie Fritts 다른 제목: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오라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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