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키드와 한국 무술

2024.08.13 14:37

돌도끼 조회 수:155


80년대 신문 외신기사에서 미국에서 대히트중인 영화 '가라데 어린이'에 대한 짤막한 소식이 실린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나중에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원제는 [카라테 키드]인데, 일본애들이 제목 촌스럽다고 [베스트 키드]로 바꿔서 개봉했고, 우리나라는 그 제목을 덥석 물어온 거죠.

일본에서 바꾸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라데 키드]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습니다.
그때는 해외 매체나 창작물에 '커라티'가 나오면 전부다 태권도로 바꿔버리던 시절이니까...

그렇다고 가라데가 아예 주제인 내용의 영화를 [태권도 키드]로 바꿀 수는 없지않겠습니까.
국내 수입사는 제목 바꾼 거 말고도 영화 주제가 제목인 'The moment of truth'가 마치 영화의 원제인 것처럼 위장해서 홍보에서 'karate'라는 말을 완전히 지워버렸습니다.

영화는 오키나와 출신 정통 가라데의 달인 미야기 선생이 무도의 정신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깡패짓하는 사파인 코브라카이(會)를 참교육시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히트후 미야기와 제자 다니엘이 오키나와에 가서 모험을 한다는 내용의 2편이 나왔고,
3편에 와서는 (수많은 영화 3편이 그러하듯이) 1편 내용을 복붙해서 재탕합니다.
코브라회도 다시 나오는데, 여기서 엉뚱하게도 코브라회가 한국인한테서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만든 도장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 사람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죠. 가라데 도장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도 가당찮게 느껴지는데(역시 양놈들은 아시아 나라들을 구분 못한다능...ㅎㅎ), 더군다나 코브라회는 나쁜넘들이잖아요.

그치만 영화가 가열차게 망했기 때문에 어그로도 끌지 못하고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글구 수십년 지나는 동안에, 알고보면 코브라회가 나쁜넘들이 아니었단 식으로 재해석하는 애들이 나왔다나봐요. 그런 썰을 바탕으로 해서 코브라회가 주인공인 시리즈도 나왔다는 듯...
전 '코브라 카이' 시리즈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거기서 코브라회와 한국의 관계가 좀 더 자세히 다뤄진다나 봅니다.
글고... 코브라회의 무술이 처음부터 가라데가 아니고 당수도였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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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에 척 노리스 영화가 한국에 소개되면서 각종 신문잡지들이 척 노리스가 태권도인이라는 사실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월드스타급 배우가 태권도를 한다니 국뽕심이 차오르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근데 그런 기사들을 보고는 전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어요.
국내 언론은 척 노리스를 태권도인이라고 홍보하고 있었지만 제가 아는 척 노리스는 가라데 챔피언이고 가라데 영화의 스타였거든요.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워갔다면서 미국 가선 가라데 고수 행세를 하다니 이건 배신이잖아요ㅎㅎ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척 노리스가 한국에서 배운 무술은 정확히는, 태권도가 아니었답니다.
노리스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왔던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무술 자체가 없었다고...
그당시 국내에 난립하던 무술도장들이 통합하면서 태권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건데, 노리스가 미국에 돌아갔던 시기쯤이 한국 태권도의 태동기였던 것 같습니다.

척 노리스가 한국에서 배웠던 무술이 당수도였습니다.

오키나와 무술인 唐手가 조선사람들에게 전해졌고 해방후 국내 여기저기 당수를 가르치는 도장이 있었습니다.
다만 한국 당수는 오키나와 원본과는 다른, 한국사람들이 마개조한 버전이었고, 각각의 도장마다 다 달랐답니다.
척 노리스가 배운 당수도도 그중에 하나였죠.

당수도 등의 한국 당수는 50년대에 이미 가라데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특징을 보였다고 합니다.(특히 발기술이 엄청 추가되어 있었다는...)

당수도를 포함한 주요 무술 도장들이 통합하면서 태권도라는 간판을 달게 되었으니까 척 노리스가 태권도인이란 게 아주 거짓말은 아니고,
당수가 원래 가라데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니까, 척 노리스가 미국에 가서 가라데 대회에 참가한 것도 딱히 이상하다 할 건 없죠. 그시기에 태권도는 막 생겨난 신 브랜드였고 가라데는 꽤 알려져있었으니까...

통합무술 태권도가 생겼다고 그 이전의 도장들이 다 흡수되어 없어졌던 건 아니고 일부는 그 뒤로도 독자적으로 존속했습니다.
당수도도 그중 하나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고(황정리도 실은 당수도 계열이란 소리도...), 한국에서는 태권도에 밀려 완전 듣보가 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척 노리스가 미국에 가서 미쿡 탱수도 협회를 만들었거든요.



그럼 [베스트 키드]와 당수도는 뭔 상관이냐면, [베스트 키드] 시리즈의 무술지도를 했던 사람이 척 노리스의 옛동료이자 미쿡 탱수도계의 거물입니다.
팻 존슨. [용쟁호투]에도 카메오로 나왔던 분이죠.

80년대까지 가라데라고 하면 미국에선 그냥 모든 동양무술을 싸잡아 이야기하는 말이었습니다. 영영사전에는 쿵후도 가라데의 일종이라고 나와있었어요.
그러니 [베스트 키드]를 만든 사람들이 딱히 무술 오타쿠도 아니었던 거 같고... 적당히 동양무술-당수도하는 사람한테 무술 코디네이션을 맡긴 것 같아요.(걍 유명한 가라데 스타 척 노리스가 하는 무술이니까 가라데라고 생각했는지도...) 당수도는 가라데 보다는 태권도에 더 가까운 무술이라고 해야겠지만 영화쟁이들은 커라티와 탱수도의 차이같은 거에 관심 없었겠죠 아마...

팻 존슨은 미야기의 가라데는 오키나와 고무술, 그보다 더 공격적이고 실전성을 추구하는 코브라회의 무술은 당수도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치만 어지간한 무술 오타쿠가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죠 (더구나 연기하는 배우들의 무술실력이 미천해서 더 알아먹기 힘들...) 그래도 잘 보면 코브라회 애들이 발을 좀 많이 쓴다는 듯..?

그러다가 3편에 와서 코브라회의 무술이 한국에서 생긴 거라는 걸 스토리상으로도 슬쩍 흘린 겁니다.

지금은 '코브라 카이' 시리즈의 영향으로 코브라회가 당수도를 한다는 게 꽤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전 그 시리즈 안봐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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