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2024.08.05 23:54

DJUNA 조회 수:1488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라는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그립니다. 히라야마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도쿄 시부야 여기저기에 있는 화장실들을 꼼꼼하게 청소하고 퇴근하면 목욕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이웃을 돌거나 책을 읽어요. 중반을 넘어서면 이 소박하지만 평온한 일상에는 살짝 균열이 생깁니다. 가출한 조카가 찾아오기도 하고 같이 일하던 동료가 그만 두기도 하고. 하지만 이 일상이 극적으로 붕괴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벤더스가 일본 영화를 만들었다니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일본인이 아닌 영화감독이 만든 일본어 영화면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어요.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영국 감독이 만든 독일어 영화지만 두 나라 사아에는 이렇게 큰 간격은 없습니다. 일단 그 영화는 원작이 영어 소설이죠.

그러나 이 선택은 수많은 서구 시네필들에게 수많은 일본 고전 영화는 교과서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벤더스는 일본 영화를 서부극이나 SF와 같은 장르처럼 선택해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은 자기만의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벤더스는 이미 오즈 야스지로를 예찬한 다큐멘터리 [도쿄가]를 만든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선택은 이해가 가요.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마지막 장편 극영화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도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장르가 아니고, 영화 속에서 본 정보만으로 그 세상의 복잡성을 구현해낼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서구인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이 개입될 가능성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영화는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버스 운전사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패터슨]을 떠오르기도 합니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노동자 계급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로 옛날 노래들을 듣고 일이 끝나면 윌리엄 포크너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독서에 몰두하는 하라야마의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죠.

하지만 왜 화장실인가? 그것도 왜 그런 특정한 화장실들일까요? 이 영화에서 하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그냥 평범한 건물들이 아닙니다. 모두 아름답고 개성있게 지어진 현대건축물로, 도쿄 토일렛이라는 시부야 공공 화장실 프로젝트에 속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종종 아름다움이 기능을 넘어서기도 해요. 하나는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건물로 특정한 장치를 작동시켜야 불투명해집니다. 낯선 지역에 온 볼일 급한 사람들에게 과연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이 궁금증은 원래 이 영화가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 대한 빔 벤더스의 관심에서 출발했으며 처음에는 단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고려했다는 걸 알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화장실은 이 영화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야쿠쇼 코지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배우입니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도쿄 토일렛에 대한 PPL처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 이후 도쿄 토일렛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관광명소화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이것은 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영화의 미심쩍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반복되는 일상의 소박한 노동에서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을 그립니다.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겁니다. 하지만 [퍼펙트 데이즈]의 노동은 도쿄 토일렛의 아름다운 건물들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히라야마 역시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에요. 일단 오직 자기 혼자만을 챙기는 사람이고 영화는 이 사람이 갑자기 이 삶을 선택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정보를 조금씩 흘립니다.

다시 말해 히라야마가 그런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안전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는 언제든지 이 일을 그만두고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렇다면 아무리 우리가 히라야마에게 공감한다고 해도 모든 게 조금 재수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히라야마가 힐링을 위해 휴가지처럼 머물고 있는 그 노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훨씬 무겁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에서 그 노동은 그렇게 정갈할 수만은 없습니다. (24/08/05)

★★★☆

기타등등
이 영화보다 훨씬 사실적인 화장실 청소 장면이 궁금하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보세요.


감독: Wim Wenders, 배우: Kōji Yakusho, Tokio Emoto, Arisa Nakano, Aoi Yamada, Yumi Asō, Sayuri Ishikawa, Tomokazu Miura, Min Tanaka

IMDb https://www.imdb.com/title/tt2750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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