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의 원제는 [青春並不溫柔]. '청춘은 온유하지 않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국 영화 제목은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Who'll Stop the Rain]을 변형한 것인데, 이건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노래 제목으로, 이 제목을 그대로 빌린 카렐 라이츠의 베트남전 영화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슈 이쉬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반교:디텐션]을 감독했고요. 이 시리즈의 주연이었던 리링웨이는 이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나옵니다.

1994년 타이페이가 배경입니다. 영화가 간단히 자막으로 상황을 정리를 해주긴 하는데, 그래도 대만 현대사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합니다. 한국 관객들은 우리가 거쳐온 민주화 역사에 빗대어 이해할 수는 있는데, 그래도 아주 같을 수는 없지요.

학생운동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치웨이는 막 타이페이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는데, 그 학교의 폭군인 학과장 치엔 교수와 충돌하게 됩니다. 치엔 교수가 불공평하게 막 다룬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라, 결국 부당하게 퇴학당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시위가 벌어지는데. 이 시위를 주도하는 건 학생회장인 광과 광의 여자친구이고 타과 학생인 칭입니다. 치웨이는 자연스럽게 이 운동에 가담합니다.

그 뒤로 학교에 맞서는 학생운동에 대한 사실적이고 거의 냉정하다고 할 수 있는 묘사들이 이어집니다. 정보량도 풍부한 편이고요. 운동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 것인가, 어떻게 자신의 운동을 홍보하고 학교의 거짓 선전과 맞설 것인가, 내부의 균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어디까지 외부 정치 세력을 끌어들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온갖 질문과 의문들이 계속 던져지고, 학생들은 계속 여기에 맞서야 합니다. 당연히 완벽한 해답은 없습니다. 주인공들도 완벽하지 않고요. 광은 관객들이 마음을 주기엔 지나치게 정치가처럼 행동합니다. 칭은 유력한 정치가의 딸이라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려고 이 운동에 가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로맨스가 있습니다. 칭과 광 모두가 치웨이에게 관심을 보여요. 치웨이가 운동권 마그넷이어서 그렇겠죠. 세 사람 중 가장 결이 곧은 사람이 치웨이거든요. 그리고 치웨이의 감정은 오직 칭에게만 쏠려 있습니다. 칭은 그렇게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로맨스 이야기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불안함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역시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흘러요. 당시 운동권이 벗어나지 못했던 성차별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담담하고 현실적이고 타협적입니다. 로맨스로도 그렇고, 학생운동 이야기로도 그렇고요. 격정적이고 로맨틱한 무언가는 없어요.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개성이에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퀴어 로맨스와 결합되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발전 중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24/08/03)

★★★

기타등등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전 처음 예매에서는 놓쳤는데, 상영 직전에 취소표가 나와서 봤어요.


감독: I-Hsuan Su, 배우: Ling-Wei Lee, Hsiao-Fei Yeh, Roy Chang, Anan Chang, Hsin-Tai Chen, Yi-Ju Fang, Chun Hong, Jou-Min Huang, 다른 제목: Who'll Stop the Rain

IMDb https://www.imdb.com/title/tt2792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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