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2024)

2024.07.30 01:43

DJUNA 조회 수:1083


[딸에 대하여]는 김혜진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영화지요.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뒤로 영화제를 돌다가 얼마 전에 9월 4일로 개봉일이 잡혔습니다. 개봉판은 영화제판에서 조금 편집한 버전으로 장면 하나가 잘려나갈 거라고요. 저는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4에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 이미랑의 전작은 단편인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와 [목욕]을 본 적 있어요. [딸에 대하여]도 그렇지만 모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친절하고 선량한 영화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요양원에서 치매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중년여성입니다. 이 사람이 얼마 전부터 담당하고 있는 환자는 한 때 국제적인 사회활동으로 명성을 누려서 지금도 가끔 기자들이 찾아오는 왕년의 유명인사입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딸 그린이 여자친구 레인과 함께 엄마 집으로 이사오면서부터죠.

퀴어 여성 커플의 부동산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며칠 전에 제가 본 [럭키, 아파트]가 떠오르는 설정이지요. [럭키, 아파트]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그렇게 밝지는 않아요.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는 당연히 불안하지요. 무엇보다 엄마는 지금도 딸이 동성애자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요. 아직 거두지 못한 호모포비아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돌보는 환자에게서 딸의 미래가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 거겠죠. 게다가 그린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동료 강사를 옹호하는 시위를 하고 있지요. 엄마의 환자가 지원을 잃고 요양원을 떠날 판이니 정말 이 모녀에겐 좋은 일이 없습니다.

전 영화를 보기 몇 달 전에 소설을 읽었는데, 재미있게 잘 읽긴 했지만 걸리는 게 좀 있었습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이 모든 이야기의 관점이 일인칭 주인공인 엄마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지요. 당연히 엄마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는 주인공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의 딸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것은 신경 쓰여요. 아니, 그것도 이해가 되는데, 그렇다면 작가는 1인칭 화자가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작품에 집어넣어야 할 필요가 있지요. 그래야 주인공이 사는 세계가 보다 입체적이 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와 화자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정작 이슈의 중심이 되는 두 여성이 피상적으로 묘사되지요.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모든 캐릭터의 묘사에는 조금씩 외부자의 시혜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영화는 소설과 내용이 많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단지 원작의 내레이션을 끌고 오지는 않아요. 그 때문에 주인공은 원작에서보다 훨씬 과묵하게 느껴지죠. 딸과 딸의 여자친구도 주인공을 통하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직접 볼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덜 납작해 보입니다. 원작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연기가 원작의 내레이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여요.

여기서 조금 더 나갈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소스에서 아무 멀리 가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 때문에 원작의 단점이 여전히 남습니다. 예를 들어 그린과 레인은 여전히 정말 흠 하나 없는 사람들이죠. 정의롭고 아름답고. 특히 레인은 거의 완벽한 며느리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갈등이 좀 피상적일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이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고, 기술적으로 잘 만들었고, 배우들도 좋고, 그렇긴 한데, 영화의 설정은 암만 봐도 조금 더 나갈 수 있을 거 같거든요. 제 생각엔 이 설정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형식은 시트콤인 거 같아요. (24/07/30)

★★★

기타등등
영화의 치매 묘사는 솔직히 소망성취가 반영된 것이고, 결말로 가는 과정에서 문제들이 지나치게 쉽게 해결된 것 같아요.


감독: 이미랑, 배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다른 제목: Concerning My Daught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2881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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