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범죄도시 4

2024.07.20 13:46

Sonny 조회 수: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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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4]의 퀄리티 저하는 단순한 반복의 문제가 아니다. 관객들은 이 시리즈가 같은 공식과 캐릭터로 꾸준히 반복되길 바란다. 그러나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작품의 밀도가 떨어진다. 주인공인 마석도도, 그의 동료들도, 이들이 맞서는 빌런도, 이들이 처한 사회도 묘사가 붕 떠있다. 남는 것은 마석도란 한국형 헐크의 구타뿐이다.


마동석은 전작들과 조금 다른 형태의 액션만 얽으면 신작을 내놓고 싶은 것일까. 이 시리즈에 대한 마동석의 오해 혹은 타협을 좀 짚고 싶다. 액션은 단순 액션으로만 전달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정말로 액션만을 원한다면 모든 액션영화는 그냥 동네 건달 역의 엑스트라를 한 삼천명 세워놓고 두시간 내내 도미노 쓰러트리듯이 패나가면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액션영화는 그렇게 스토리나 캐릭터를 생략하지 않는다. 액션은 액션을 행사하는 쪽과 액션을 당하는 쪽의 감정이 서로 얽힌 드라마의 일부분이다. 물론 [존 윅] 시리즈처럼 인간성을 소거하고 액션만을 열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게임적 판타지를 사람으로 구현한 작품이 모든 액션영화의 표준모델은 아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속세에 훨씬 더 발을 붙이고 감정을 동력으로 끌어나가는 인간적 드라마다.


마석도가 [범죄도시 3]에서 별 이유없이 마약사건에 집착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서 그랬을까. [범죄도시 4]는 마석도에게 노골적으로 인간적 동기를 증명하려 애쓴다. 죽은 아들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하는 어머니가 이후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석도는 사건에 매달린다. 이 부분의 묘사는 배우의 연기나 시나리오의 흐름이 너무 작위적이어서 마석도의 인간성을 더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마석도가 정말 울분에 가득찼다면, 결정적 피의자를 "진실의 방"에서 고문하며 즐거워했을까? 경찰서에서 그 피의자가 암살당한 사건으로 경찰이라는 프로페셔널리티가 농락당했음에도 마석도는 별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처음과 끝의 노골적인 신파적 알리바이가 영화의 드라마를 강압적으로 주입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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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4]의 마석도가 얼마나 결핍되었는지를 묻기 위해 전작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범죄도시1]에서 마석도는 그냥 경찰인가. 그렇다고 하면 영화는 금새 이상해진다. 경찰이 피의자를 전기충격기로 고문하고, 조직폭력배를 자기 멋대로 합의시키고, 조직폭력배를 성희롱하거나 갈취하는 장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마석도에게는 법치적 결백을 초월하는 연결고리가 있다. 하나는 나쁜 놈이라면 벌을 줘도 된다는 권선징악의 구도이고 또 하나는 마석도라는 인물이 발붙이고 사는 가리봉동이라는 지역의 구체적 묘사다. 마석도가 발을 붙이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가리봉동이라는 공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기에 그는 단순한 직업경찰이 아니라 '힘센 동네 경찰 아저씨'의 친밀감을 획득한다. 그 상태에서 관객은 마석도의 지독한 완력행사를 '못말리는 경찰 아저씨'의 장난 정도로 묵인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괜찮은 현상인지는 질문해봐야한다)


영화 속 마석도라는 캐릭터의 밀도는 가리봉동이라는 배경지역의 밀도에서 비롯된다. 그가 거창한 대의나 휴머니즘을 표방하지 않아도,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가리봉동을 생각하면 그의 분노는 자연스레 드라마로 이어진다. 심지어 그가 괴롭히는 장이수조차도 험상궂은 깡패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어머니 회갑잔치도 하는 지역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었다. 반대로 장첸은 그 지역이나 주민들과 어떤 연고도 없는 순수한 외지인이었다. 즉 영화에서 적을 나누는 기준은 행위의 잔학성이 아니라 친밀감이다. 이처럼 어떤 세계는 거리감을 통해 인물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법칙을 후속작인 [범죄도시 4]에 물어볼 수 있겠다. 이번 작품에서 마석도를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광수대로서 어떤 세계에 속해있는가.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마석도의 정체성은 점점 경찰이라는 직업군에 매몰되어가고 있다.


'동네 경찰 아저씨'였기 때문의 마석도의 괴력과 무자비함은 의외의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동네'라는 요소를 빼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경찰이라는 직업 하나 뿐이다. 그러니까 계속 묻게 된다. 마석도가 이렇게 분노하고 누군가를 패고 다니는 건 직업 윤리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인가. 1편의 마석도는 초법적 경찰, 혹은 경찰 뺏지를 찬 "큰형님"으로서 입체적이었다. 4편 속 마석도의 분노와 폭력은 무엇을 해소하고 무엇을 되찾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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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4]의 감정적 흐름도 어색하다. 마석도는 백창기와 싸운다. 왜냐하면 백창기가 영화상 최초의 희생자를 만든, 잔인한 조직폭력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창기는 마석도와 싸우지 않는다. 백창기는 코인 투자로 부자가 된 장동철과 싸운다. 백창기는 자신을 홀대하고 자꾸 제몫을 빼돌리는 장동철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장동철은 탐욕스럽게 이익만 추구한다. 마석도는 장동철에게 별 감정을 갖지 않는다. 백창기가 끝내 장동철을 응징하고 제몫을 되찾을 때 영화는 주인공이 정의를 행사한 듯한 인상마저 부여한다. 전편에서 마석도가 야쿠자, 주성철과 1:1을 나눠서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어느 순간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백창기에 몰입해 응원하게 된다.


이 영화의 원안은 애초부터 백창기와 장동철의 싸움은 아니었을까. 영화 전체가 백창기와 장동철의 대립이고 마석도는 그 중간에 끼어든 것 깍두기처럼 느껴진다. 피해자 어머니의 손을 잡는 감정적 알리바이를 제외하면 마석도에게는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 오히려 영화가 굴러가는 동력은 백창기의 울분이다. 백창기는 장동철에게 자신의 것을 뺏겼고 이를 되찾아야한다. 그에게는 장동철을 응징해야할 명분이 있다. 백창기에게는 탐욕 이상의 정당한 동기, 상대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자꾸 변명하고 무시받았으니 복수할만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장동철은 돈이 전부인 줄 아는 천박한 무뢰한이다. 백창기는 이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암흑세계의 신사다. 백창기는 누굴 비웃거나 천하게 굴지 않는다. 백창기가 청소부 아주머니를 잡고 인질극을 하는 장면만 빼면(심지어 이 장면도 사악한 느낌보다는 냉철한 느낌이 더 강하다) 관객이 그에게 분노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다. 장동철을 혼내주고 난 뒤 백창기는 자신의 카지노 코드만 챙겨서 나간다. 눈 앞에 놓인 현금다발은 다른 조폭에게 양보하고 자기 것만 가져 나가는 그에게는 심지어 물욕마저 초월한 원칙주의자의 깔끔함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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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경찰로서 마석도가 분노를 품고 그걸 해소한다면, 프로그래머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자본가 장동철을 두들겨 패고 후련해져야한다. 왜냐하면 장동철이 부하처럼 부리는 게 백창기이고 그 백창기가 프로그래머를 죽였기 때문이다. 시스템에서 백창기는 장동철의 하수인이다. 백창기가 마석도에게 체포가 되어도 장동철은 또 다른 카지노 관리인을 고용해서 프로그래머들을 노예처럼 다루다가 죽게끔 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마석도로 하여금 장동철을 응징하게 하지 않는다. 그건 암흑가 내부의 질서 문제인 것처럼 백창기가 장동철을 혼내주게 하고, 그 백창기를 마석도가 잡는다. 조직의 보스가 아닌 중간관리인을 주인공이 최후에 응징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부분에서 [범죄도시 4]는 육체적 폭력에 대한 숭배도 느껴진다. 왜 장동철은 백창기를 무시하다가 결국 그에게 죽음을 맞이할까. 진정한 악, 혹은 진정한 권력은 육체적 힘이 있어야 한다는 깡패영화 특유의 미학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장동철은 무례하고 밥맛인 인간으로 그려져야하고 현장에서 직접 피비린내를 맡아가며 싸움을 도맡아하는 백창기는 멋있는 인간으로 그려져야 한다. 타고난 육체와 숙련된 싸움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결국 대결한다는 이 프레임은 지극히 우파적이면서도 이 영화가 사회적 정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인상마저 준다. 자본에 의한 착취는,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육체적 힘이 없이 까부는 자격없음"으로 비판한다니. 전작들에 나온 "까불이"나 "초롱이"같은 캐릭터들보다 더 육체적 힘을 기준으로 한 멸시와 숭배가 더 과해진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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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범죄도시 시리즈는 경찰이 정의를 구현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동네 큰형님이 육체적 힘으로 마을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권력과 안정에 대한 영화였다. 지역은 서울로 옮겨졌고 악당 캐릭터들의 종류는 다양해졌지만 2편 다음부터는 점점 '못말리는 보완관'의 쾌감도 사라지고 있다. 이 다음편부터는 보다 어둡고 지독한 스릴러 장르로 변주를 꾀한다고 하니 또 두고 볼 일이다. 다만 1편의 그 소시민적인 애환과 우정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것일까. 깡패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올바르진 않지만 다정함이 있는 그런 마석도의 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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