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15:24
1. 좋은 일이 없을까.
원래 좋은 일은 크게 기뻐하지 않으면서 지나버리는 성격이고(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음엔 엄청 괴로운 일이 준비되어 균형을 맞추겠지, 같은 생각을 하느라) 대부분 나날들은 인생이란 기본이 이렇게 지루하고 고루한 것이라는 기분으로 사는지라 그저 큰 기복이 없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게 뭔진 모르겠으나 진짜 좋은 일이 생기면, 또는 여건상 해마다 미루고 있는 해외여행이나 도시 간 이사같은 극심한 변화가 온다면 감당할 자신이 있겠는가 슬슬 의아심이 생기고 있습니다. 여행이나 이사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인데 이제 내 심장이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건 수사적인 표현만은 아닙니다. 중년 어느 시점부터는 다들 있다는 부정맥이 저는 꽤 의식이 되어서 검사도 했더랬는데 의사가 약을 먹고 싶으면 먹으라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약이 뭐가 먹고 싶을까요. 견딜만 하면 안 먹어도 된다는 뜻이라 받아들이고 일단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심장의 갑갑함이나 부담감을 자주 느끼고 있네요. 가끔은 이유없이 쿵쾅거려서 누워 줘야 할 때도 있으니 아무래도 약을 시작해야 하나 싶습니다. 개와 주인은 닮는다는데 최근 토마스도 약 횟수를 늘였답니다. 좋은 일이 필요하네요.
2. 그래서 자기 전에 편안해질 만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았습니다. 밖은 비바람이 치지만 실내는 모닥불 타는 소리가 반복되어 아늑함과 멍함에 이르게 하는 영상물도 보고 추천에 뜨는 요리 영상도 보다가 우연히 일본 부부와 개가 등장하는 영상물을 보게 되었네요.
주방을 좋아하는 젊은 주부가 아침에 거실로 나오는 것으로 매번 시작하는데 아침 준비, 식사, 개와 함께 남편 배웅, 간단한 점심, 개와 산책, 저녁 준비, 개와 남편 맞이, 저녁 식사- 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반복됩니다. 가끔 마트나 친구 만나기 외출을 하지만 집 밖은 거의 안 다룹니다. 좁은 주방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식탁입니다. 이런 반복을 말로 하니 지루할 것 같죠? 그런데 회당 20분 내외의 이 영상물을 자꾸 보게 되었어요. 이상하게 빠져들어요. 여러 회차를 보고 나니 저 주부가 일반 주부는 아니고 아무래도 요리를 전공했거나 본격 배운 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매일 아침 준비도 놀랍지만 저녁 만찬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보는 사람의 심정을 남편이 그대로 반영해서 매번 감탄 매번 아리가또, 오이시 소리를 수십 차례하면서 하하호호하며 둘이 식사를 합니다. 나누는 대화는 시답잖고(어 내 손에 언제 밥풀 묻었지) 소소한 일상(오늘 너무 바빠서 정말 집에 오고 싶었거등) 얘기입니다. 이건 정말 인생 뭐 있나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 잔과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영원히 반복되는 나날 이거지, 이게 행복이지, 이런 생각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영상입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부분만 정돈해서 보여 주니, 참 깔끔하게 만들어서 싫증이 안 나는 거 같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일 벌리지 않는 점도 좋고 말이죠. 하지만 절대 따라하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실용적인 요리 영상은 아니었어요. 저에게는요.ㅎ
3. 그리고 커피 판매 영상도 두 개 봤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설명 부족이라 반칙 같네요.
요즘 작가 김영하가 글쓰기 연계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분 전공이 경영학이어서인지 작가로서의 자산을 지속시키고 홍보, 확장시키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것 같습니다. 물론 땡기는 게 있을 때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적인 유인이 제일 크겠지요. 암튼 이분이 회비를 받고 이메일로 매주 1회, 총 24회 계획하여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화요일마다 옵니다. 이번 주 두 꼭지 중 하나는 읽지 않으면서 책을 계속 사는 것, 안 읽고 책장에 모셔 두는 것에 대해 썼더라고요. 그것이야말로 독서가의 참된 면모라는 (나 들으라고?)설득력 있는 전개를...ㅋ 저는 오래 전부터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우리는 김영하가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여기저기 보다 보니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글에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더군요. 아무튼 이번에도 이걸 확인했습니다. 저는 하루키의 소설 보다는 수필을 더 재미나게 읽었는데 김영하도 그렇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이분도 수필이 더 재미있습니다. 이 정도 필력을 가진 사람임에도 어쩌면 좋은 소설 쓰기가 그만큼 힘든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요.
첫 줄로 돌아가서, 커피숍도 있고 판매도 하는 회사와 재발매된 김영하 본인의 책 [여행의 이유]를 딴 커피블랜드 상품을 내놓는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짧은 영상 둘이었는데 작가야 말을 잘 하지만 숍 주인장도 차분하고 말을 잘 하시더군요.
4. 그런데 [동조자]를 아직또! 못 끝냈습니다. 독서 침체기 오래 가네요. 계속 붙잡고 있긴 합니다. 다른 책(엔도 슈사쿠 [바다와 독약])도 건드려 가면서요. 그냥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서 재미도 있고 책도 좋은데 진도를 못 뺍니다. 혹시 읽을까 말까 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분량도 깊이도 묵직하네요. 박찬욱의 시리즈는 쿠팡에서 쉬엄쉬엄 공개 중이네요.
5. 디즈니 플러스 [쇼군]을 보고 있는데 잘 만든 드라마지만 큰 재미는 없어요. 이렇게 느끼는 건 잘 만들었는데 뭔가가 부족해서이지 싶은데 뭐 때문일까요. 다 보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2024.05.01 15:51
2024.05.01 16:40
Sonny 님은 예상 밖입니다? 저는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예전보다 커지는 거 같습니다. 늘금이여... 저도 잘 버티길 바랍니다.
잘 봤습니다. 소박한 일상 반복을 더욱 귀하게 여기기 위해서라도 건강이 허락할 때 이것저것 해 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2024.05.01 15:52
2024.05.01 16:42
그렇습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뭔가 꽂히는 면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유튜브는 가장 최근 것 가져와 봤습니다.
2024.05.01 21:24
2024.05.02 09:44
네, 편하게 보다 보면 내공이 대단하네 생각도 들면서 때로는 착잡하기도 해요.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난 저렇게 못 해...기타 등등ㅎㅎ.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4.05.01 17:05
1. 저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역시 쉽지 않더군요. 되게 사소한 일로도 제 인생에 실망감을 가지게 되어버려요... 약은 꼭 드시고 심장건강에 좋은 식품이나 가벼운 운동습관 등도 찾아보시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분야에 전문지식은 1도 없지만요. ㅋ
4. 저도 박찬욱 감독이 참여해서 '동조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단 완결되면 시작하려구요. 원작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5. 쇼군은 프로덕션 때깔이나 그런 완성도는 정말 훌륭한데 재미는 없다는 반응이 종종 보이는 것 같습니다.
2024.05.01 17:44
가까운 사람들에겐 과하게 걱정할까봐 입다물고 있었는데 듀게에서 말을 꺼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가벼운 운동습관 정말 중요합니다.
후반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책은 좋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지 않나 생각되고 있어요. 퓰리처 상 비롯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책을 읽을수록 박 감독님 시리즈에 대한 기대도 자꾸 커집니다. 기대를 조절해야겠어요. 실망하면 안 되니.
그리고 [동조자] 내용 중에 의미심장하게 소개되는 노래인데 아래 옮겨 와 봅니다. 저는 쉐어가 이 노래의 오리지날인지 이번에 알았네요. 모르는 게 너무너무 많네요.ㅎㅎ
2024.05.01 22:19
2024.05.02 09:48
둘 다 메롱거리는 시기가 번갈아 있었어요. 걱정 감사합니다. 좋은 일을 만들고 싶네요. 쏘맥 님 아직 휴지기시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4.05.01 23:17
2. 얼마 전에 어쩌다보니 티비를 처음 갖게 되었는데 누워서 유튜브 보기 좋더라고요. 근데 너무 자극적이거나 함께 자는 사람과 서로 취향이 안 맞는 건 곤란하던 차에 문득 알고리즘에 있어서 보게 된 아제르바이잔 시골 채널이 그런 목적에 참 좋습니다.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동유럽이라고 해야할지 서아시아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적당히 전세계적으로 익숙한 서구권의 느낌이 있으면서도 지금 서구권에는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토속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굉장한 인기 채널인데요(구독자가 수백명 단위). 물론 이 정도 수익 규모면 사실은 실생활이기보다는 대부분 세팅이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점들이 있는 거겠지요. 아마 thoma님이 보신 채널도 비슷한 계열일 것 같아서 생각나서 길게 달아보았습니다. ㅎㅎ
2024.05.02 10:03
아제르바이잔 이름은 들었지만 위치를 정확하게 몰라서 지도를 찾아 봤어요. 조지아 밑, 이란 위, 카스피해에 접해 있군요. 조지아는 영화를 통해 보았는데 외모는 서양인, 아랍인 느낌이면서 물질적으로는 넉넉치 못한 이전 시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이랑 비슷할 것 같네요. 유튜브는 컨트리라이프라는 채널일까요. 색상이 화려하면서 풍요로와 보입니다. 구경해 봐야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2024.05.02 00:41
저도 요즘 워낙 글이 없으셔서 쏘맥님이나 토마스에게 혹시 안 좋은 일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어제 글도 적다가 지웠는데요. 이렇게 소식 알려주시니 정말 반갑고 좋은데... 안 좋은 소식이 없었던 건 아니었군요. ㅠㅜ 정말 보탬 안 되는 말이지만 그래도 좋아지시길 진심으로 빌구요.
김영하의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얘긴 아닙니다만. (사실 초기작 몇 개 읽고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 나중 작품들은 전혀 몰라서 뭐라 말할 자격이 안 됩니다. ㅋㅋ) 재밌는 이야기를 구상해내는 능력과 그냥 평범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는 말빨(혹은 감수성)은 별개인 것 같죠. 간혹 두 가지가 동시에 되는 사기 캐릭터들이 사람을 슬프게 하지만 대체로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잘 만들었다 싶은데 이상하게 재미 없는 작품들 많죠. ㅋㅋㅋ 소재가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고. 때깔과 기본적인 연출은 아주 좋은데 특별한 매력이 없는 작품들도 있구요. '쇼군'이라는 드라마는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래도 미국에선 폭발적인 인기라는 걸 보면 나름 매력은 있나 봅니다. 다만 전 원래 사극 싫어하고 전쟁 이야기 싫어하는 데다가 저 시절 일본 사극 복장이나 분위기들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싫어하는 편이라 아마 영원히 안 볼 것 같구요(...)
2024.05.02 10:25
걱정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꾸준히 보시고 글 남기시는 로이배티 님께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합니다.ㅎ
소설의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바탕에 깔려 있는 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뛰어난 작품의 경우, 특히 장편의 경우에는요. 그걸 '절실한 하고픈 말' 또는 '사상' 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일반인이 이런 것을 갖추기는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방법은 저야 모르지만 한 차원을 넘는 일 같기도 하고... 어디 굴에 들어가서 마늘과 쑥이라도 먹으며 몇 년 보내든가 해야 하나ㅎㅎ 김영하 작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거나 다양한 경험을 누리는 걸 즐긴다거나 해서 디테일은 풍부한 작가 같은데.
그래도 오래 전부터 읽은 작가라 지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이번 '쇼군'은 책을 그대로 옮겼나 싶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뭔가 광활한 바다, 들판 같은 풍경이 나오는데도 그다지 뒷 부분이 궁금하지 않은 책읽는 느낌? 로이배티 님 취향 말씀을 읽으니 정말 안 보실 작품이네요. 취향을 뒤로하고 보고 싶은 작품도 생기곤 하던데 말이죠. 요건 아닌 걸로.
2024.05.04 18:13
전반적으로 좋은 일상을 잘 지내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네요.
삶의 기복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큰 다행이죠. 감정의 진폭을 크게 가져가지 않고 안정적인 성격을 가지셨나 봐요.
심장의 건강은 잘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일본의 잔잔한 영상물들은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소소한 일상을 편안하게 머리 비우고
볼 수 있게 해주죠. 가끔 이런 일상에 대해서 글써주시면 반갑고 감사하겠어요.
2024.05.04 20:07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았는데 나이드니 예전보다 소심해지는 걸 느낍니다. 마음의 폭이 커지길 바랐는데 더 좁아지는 것 같달까요.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묵상, 명상, 기도?? 이름이야 무엇이든 정신수양이 필요합니다. ㅎㅎ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5.08 13:52
좋은 일이란걸 한참 생각해봤어요. 이런 저런 소식들은 대부분 슬프고 어려운 것들 투성이죠.
그래서 다들 나이가 들어가면 자연물에 집중하게 되나봐요. 맑은 하늘, 계절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나무들, 퉁퉁했다가 얍실해지는 새들. 어린 참새들이 태어나서 어리버리한 모습들. 오랜 만에 눈에 보이는 제비들. 이팝나무꽃, 아카시아 꽃 향기. 잘 살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며 대략 3000만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살았을 것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송화가루가 퍼지는 사이사이 비가와 가끔 맑은 하늘이 보이는 것도 좋은 일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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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ttps://twitter.com/askalaisu/status/1564861282561699840?s=19
이게 떠오르는군요. 저희가 가장 소박하고 기본으로 생각하는 복이 사실은 옥황상제님도 못들어준다던... 그래도 세상 떠날 때 어떤 날들은 좋았다고 추억거리를 미리 저장해둬야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