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 01:17
- 1988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무려 2시간 4분. 스포일러는 안 적겠습니다.
(동네 폭주 고딩이 타기엔 넘나 폼 나고 럭셔리한 바이크였던 것...)
- 대충 미래의 '네오 도쿄'가 배경입니다. 3차 대전 후로 망가진 미래라서 그런지 사방이 정신 산란하네요. 으리으리 삐까번쩍한 풍경과 거리에 넘쳐나는 빈민들, 그리고 고아원 출신 소년 소녀들이 직업 학교에 다니며 마약도 하고 폭주도 하며 사는 풍경이 대수롭지 않게 어우러집니다.
암튼 우리의 주인공은 가네다. 위에서 말한 폭주 친구들(...) 중 한 그룹의 리더 포지션이구요. 오늘도 매사에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시절 죽마고우 테츠오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지만 테츠오는 오랜 세월 이렇게 도움만 받다가 생긴 열등감이 활화산처럼 터지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혼자서 튀어 보려고 날뛰다가 위기에 처하는데... 그 순간 할아버지 얼굴에 어린 아이 몸집을 한 초능력자 하나가 나타나 괴상한 일들을 벌이고, 순식간에 나타난 매우 수상한 군인들이 그 초능력자를 데려가며 덤으로 테츠오까지 줍줍 해 버립니다. 이게 뭐꼬!!! 하고 경악한 가네다는... 금방 평상심을 되찾고 경찰들에게 능글맞게 뻥을 쳐가며 풀려납니다만. 그 와중에 참으로 쉽게 반해서 구해줘 버린 매우 수상한 여자애 덕분에 테츠오와 그 비밀 조직, 그리고 수수께끼의 이름 '아키라'와 얽힌 아주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사실 스토리를 주인공 가네다 중심으로 요약하면 의외로 평범한 일본 아니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넉살 좋고 기이할 정도로 맷집 좋은 평범 고딩이 세상을 구하는...)
- 글 제목에 '간단' 잡담이라고 적어 놓은 건 별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졸려요... 길게는 못 적을 듯 싶어서요. ㅋㅋ
그리고 또 이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제가 뭐라고 수다를 떨 의욕이 별로 안 생기는 경우라서... 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전설의 레전드'이고. 또 후대에 미친 영향들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의 원조'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그렇게 지나친 표현은 아닐 걸요. 다들 지겹도록 들으셨을 '터미네이터'에 미친 영향도 있겠지만 그건 오히려 이 작품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드립에 가깝죠. 저엉말 오랜만에 이걸 다시 보고 있으니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이런 연출도 이게 시작이었구나. 이런 구도도 세계적으로 유행 시킨 건 아마 이 작품이겠네. 아이고 이건 또... ㅋㅋㅋㅋㅋㅋ
(핵폭탄 혹은 뭐가 됐든 거대한 폭발을 이런 식으로 그려 놓은 것이 어디 터미네이터 뿐이겠습니까. 아닌 걸 찾기가 힘들죠.)
(매트릭스 구경도 해보시구요. ㅋㅋ)
- 참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원작 만화가 있는 작품인데 그 원작과 이 애니메이션판이 모두 오토모 가츠히로, 한 사람의 것이잖아요. 원작 만화의 스토리나 표현력, 전개도 이미 레전드였는데 그걸 본인이 직접 다른 매체로 연출해서 또 이런 걸작을 만들어 내다니. 이런 케이스가 얼마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이게 애니메이션이잖아요. 아무리 연출, 각본이 훌륭해도 그게 움직이는 그림으로 훌륭하게 표현되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그것까지 완벽하다는 게 이 작품의 어이 없는 부분입니다.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니 이게 몇 프레임이지? 24프레임이 이렇게 부드럽게 느껴질 수가 있나? ㅋㅋㅋㅋ 컷 계산을 정말 1초 1초 하나도 빠짐 없이 완벽하게 해서 만들어냈을 이 부드러움도 신비롭고. 근데 그게 그 와중에 또 엄청나게 정교하단 말입니다. 디테일이 뭐 하나 허투로 되어 있는 장면이 없어요. 거기에다가 색채, 빛 표현도 이게 그 시절 애니메이션 맞나 싶고... 과장이 아니라 현시점에서 후배 작품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의 끝이 아닌가 싶구요. 여기에서 국적을 떼고 전세계 상업 애니메이션들과 비교를 붙여도 여전히 탑티어에 들어가고도 남을, 거의 오파츠급의 완성도였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1988년산이요...)
- 아무래도 스토리 면에선 좀 점수를 깎을 수도 있겠죠. 분량이 적지 않은, 게다가 스토리도 단순하지 않고 세계관도 복잡한 만화책 시리즈의 내용을 2시간에 때려 박아서 결말까지 내야 한다는 핸디를 안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불친절하고 비약과 구멍도 종종 보입니다.
그런데 또 이 정도면 정말 잘 해 낸 각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원작을 봤으니 하는 말이지만 어차피 그걸 두 시간 안에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풀어내는 건 미션 임파서블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약적 설명 대화 씬 같은 게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온통 다 액션이에요. ㅋㅋ 두 시간이 넘는 런닝 타임 중에 액션이 안 펼쳐지는 장면들을 모아 보면 십여분이나 나오려나... 싶을 정도로 액션과 액션과 액션으로 이어지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큰 그림은 알아 먹을 수 있도록 흘러가구요. 지루하거나 쳐지는 부분도 없습니다. 아예 한 시즌짜리 시리즈로 만든다면 모를까, 극장용 영화로는 이게 최선이었던 듯 해서 점수를 깎고 싶지 않더군요. 자세한 게 궁금하면 원작 만화책을 보십... ㅋㅋㅋㅋ
(아니 이게 어떻게 24프레임이며... 저 쪼가리들은 어떻게 다 그렸으며... ㄷㄷㄷ)
- 암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봐도 여전히 감탄만 나오는 명작이었습니다.
버블 시대의 끄트머리 시기에 이런 천재가 나타나서 자신의 재능이 최고조에 달했던 바로 그 시점에 훌륭한 스탭들과 함께 돈을 팡팡 쓰며 만들어낸 어메이징한 작품이었던 거죠. 다들 아시다시피 오토모 가츠히로도 다시는 이 '아키라'에 비견할만한 작품을 못 만들어냈고, 이제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이런 작품을 뽑아 낼 여건이 아니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전설의 레전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보실 분들은 다 보셨을 작품이지만. 혹시 애니메이션을 좀 덜 좋아하셔서 아직 안 보신 왓챠 유저님들이 계시다면 한 번 보세요. 어째서 아재 오타쿠들이 '일본 애니는 80~90이 진짜였지~' 라며 라떼 드립들을 쳐대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ㅋㅋ 잘 봤어요. 언젠가 극장에서 다시 상영한다 그러면 꼭 극장 가서 봐야지. 라고 다짐해 봅니다.
+ 수년 전에 도쿄 올림픽이 연기됐을 때 오타쿠들이 참 재밌어 했던 부분이 있었죠.
하필 2020이라는 연도가 보이고... 극중에서 계속 올림픽 개최 언급이 되고...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결국 그 올림픽은 못 열렸을 거고... ㅋㅋ
++ 그래서 이 장면 말입니다.
유튜브에 이런 영상도 있더군요.
그리고 위 영상에는 없는, 제가 최근에 그 장면을 본 영화는 바로
이거였구요. 콕 찝는 질문을 받은 조동필씨의 뿌듯한 표정이 웃깁니다. ㅋㅋㅋ
그리고 저런 연출은 안 나오지만
그 바이크가 출연한 영화도 있구요. 하하. 뭐 이건 원작부터 그런 거겠지만요.
2024.04.15 02:19
2024.04.15 02:31
작년인가 도쿄에서 <아키라> 셀화 전시회 했었습니다. 참 가고 싶었습니다만..
https://halcyonrealms.com/anime/akira-animation-cel-art-exhibition/
2024.04.15 12:24
4K 블루레이는 플레이어가 없... 다고 답하려다 보니 시리즈 엑스가 있네요. 이런. 이러면 사야 하는 건가요. ㅋㅋㅋ
만화책은 재밌게 다 읽긴 했는데 결말 부분은 잘 기억이 안 나요. 애니메이션이 만화책 완결 전에 나와서 그런지 이쪽 기억이 더 강렬하게 원작 기억을 덮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말씀하신 미해군 장면은 대략 기억 나네요. 그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확실히 지금 다시 보면 거시기하긴 하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다시 보고 그 뉴스를 발견했는데, 말씀대로 이후 소식이 없더라구요. 뭐 만들어졌어도 그건 그것대로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일단 스토리부터 원작을 따라 가겠죠. ㅋㅋ
2024.04.15 03:34
90년대 초반 PC통신 등을 거쳐서 LD를 녹화한 비디오로 볼 때는 그냥 그림만 좋은 애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이 먹고 2017년인가에 국내에 정식 개봉되서 극장에서 볼 때에야 비로소 "우와 진자 쩐다"라고 왜 이 작품이 대접받는 지에 대해 실감할 기회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극장 영화는 정말 극장에서 봐야 하는 거구나, 블루레이니 뭐니 다 말짱 헛거였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여담인데 강남 M가박스에서 제가 이거 볼 때엔, 휠체어에 탄 장애인 관객이 아무래도 특성상 강제로 맨 앞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었습니다. 국내 문화시설에서도 좀더 장애인을 배려할 필요가 있겠지만 당분간은 요원할 것 같았습니다.
2024.04.15 12:26
그때 보셨군요! 저는 하는 줄도 모르고 한참 후에나 알아서 아쉬워했습니다. ㅋㅋ 그래도 이 작품 정도 인지도면 언젠가 아주 소규모로라도 다시 극장 상영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기대해봐야겠네요.
휠체어 타신 분들의 경우엔 확실히 현재 시설로는 그것 말고 답이 없긴 하겠어요. 시설 업데이트가 필요하긴 한데 지금 장사 안 된다고 엉엉 하는 중이니 안 될 듯...
2024.04.15 07:25
생각해보면 91년 폭풍소년이 서울 일부 제한상영이 아닌 전국 와이드 릴리스됐었거든요. 저희 지역도 소위 소극장 죽돌이인 노는 형, 누나들 중심으로 입소문이 다 날 정도였어요. 극장용 디즈니 작품이 겨우 태동하던 시기에 수입사는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모험을 했던걸까요?
2024.04.15 07:49
그 정도였습니까 불과 며칠 만에 철퇴를 맞고 간판을 내렸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나무 위키에 따르면 1주일 정도?
2024.04.15 12:28
수원에도 개봉했었고 (당시 기준 많이 작은 극장 딱 한 군데서만 하긴 했습니다) 저도 극장 가서 보고 온 친구들에게서 이야기 듣고 '으아니 나도 봐야겠어!!!' 라고 결심만 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말씀대로 전국 와이드 릴리즈가 맞았던 듯 합니다. 근데 못 봤죠 금방 내려 버려서. 거기에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았구요. ㅋㅋ
뭐 검색해 보면 홍콩 버전을 수입해왔으니 괜찮을 거다... 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만. 다르게 생각하면 굳이 그 시절에 일본 아니메를 그런 식으로까지 들여 오려고 했던 열정을 볼 때 사장님이 오타쿠가 아니셨을지... 하하;
2024.04.15 09:32
오 바이크 씬이 저런 오마쥬가 저렇게 많았다는 건 처음 알았군요.
이 영화 제목은 뭔가 게임 젤다의 전설처럼 이름 혼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사실 "아키라"는 그냥 xxx이고 폭풍소년은 가네다인데 말이죠 ㅋㅋ
2024.04.15 12:30
오마주를 넘어서 그냥 일반 연출처럼 되어 버린 장면이죠. ㅋㅋ 근데 다들 원작 팬심이 넘치셔서 그런지 일부러 티를 내는 경우가 많구나... 라고 제가 올린 저 영상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살짝만 응용해서 뭘 바꿔도 괜찮을 텐데 굳이들 원작 그대로. 하하.
그렇죠. 저도 직접 보기 전까진 당연히 아키라가 주인공인 줄 알았습니다. 어라? 아키라 언제 나오는데??? 이러다가 아키라 등장(?)씬을 보고 허헐... 했죠.
2024.04.15 17:12
아키라 영향 받은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크로니클]도 빼놓을 수 없죠. 감독이 촬영장에서 주연배우 데인 드한을 아예 '테츠오'라고 불렀다던ㅋㅋㅋ
전 사실 이 영화에 대해 비주얼은 끝내주지만 담고 있는 스토리는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치워두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면 인상이 바뀔지 조금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오토모 감독이 연출한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스팀보이]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작품들을 다 챙겨본 건 아니지만.
2024.04.15 19:55
그렇죠. '크로니클' 나왔을 때 비교하는 얘기들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만, 테츠오 얘긴 처음 듣네요. 정직한 감독님... ㅋㅋ
사실 지금 봐도 스토리는 그냥 그렇습니다? ㅋㅋ 적어도 2024년 기준으로 본다면 별 거 없어요. 그냥 비주얼과 액션, 연출과 작화 퀄리티 등등이죠. 그런데 그게 다른 거 다 덮고 압도할만한 퀄리티라는 거. 엄격하게 요즘 작품들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는 게 더더욱 대단하구요.
전 애니판을 더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데요, 만화는 지금 보면 결말부가 좀 그래요.
패전에 대한 컴플렉스 해소식 자위라던가(미해군 박살낸다던가), 좀 제국주의 냄새도 나고요 ㅋㅋ
최후반부 주인공 일당의 선택과 행동도 설득력이 없고..
물론 저 만화 그릴 당시의 패기 넘치던 작가라면 할 법한 창작이긴 합니다만..
저 작품이 나온 88년엔 <토토로>와 <역습의 샤아>가 개봉했는데, 그 쪽으로(+ 해외 하청으로) 고오급 애니메이터들이 죄다 모여서, 실력 있는 신인들을 긁어 모아 작업했다고 합니다.
안목 있고, 애니메이터 급의 작화 실력이 있는 작가였기에 가능했겠습니다만..
몇 년 전에 선라이즈 제작으로, 작가가 직접 감독을 맡아 원작 전체를 애니메이션 시리즈화 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그 후 소식이 없네요.
극장도 좋지만 그냥 4K 블루레이 구해보세요. 돈값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