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9 00:13
- 1995년작이라니 거의 30년이네요. 런닝타임은 1시간 52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포스터의 저 비주얼은 지금 봐도 참 멋진데요. 이게 영화 속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도 정말 대단하구요.)
- 뭐라 간단히 설명하기 힘든 괴상한 세계관입니다만. 어쨌든 미래 기술과 과거의 생활 양식이 공존하는 스팀펑크스런 세상이구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가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만드는 나아쁜 사람들이 있구요. 차력사 '원'이라는 아저씨가 애지중지 아끼던 자기 동생을 그들에게 유괴당하고 되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다가 고아 범죄단(...)의 리더쯤 되는 소녀 '미에뜨'를 만나 둘이 함께 모험을 벌인다... 뭐 대충 이렇게만 설명해 두겠습니다.
(풋풋한(?) 론 펄만 아저씨 비주얼도 반가웠지만 미에뜨 역의 저 분.. 이렇게 예뻤던가! 하고 보는 내내 놀랐습니다. ㅋㅋ)
- 아무리 그래도 1995년은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확인해보니 한국 개봉 연도는 1996년이었군요. 이거나 그거나 마찬가지 같지만 제겐 큰 차이구요. ㅋㅋ 암튼 그때도 저는 괴상하고 튀는 영화를 좋아했던지라 아주 인상적으로, 아주 즐겁게 봤죠. 근데 뭐 그렇게 좋게 봐 놓고선 이후로 다시는 안 봐서 말입니다. 왓챠에 있는 걸 보고 언젠간 다시 봐야지... 하다가 이번에 봤는데요. 으흠. 신비롭게도... 정말 안 봐지더라구요. ㅋㅋ 30분쯤 보다가 포기하고. 한 시간 남짓 보다 포기하고. 결국 3일차인 오늘 작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달려서 끝을 보긴 했지만 역시나 그렇게 재밌게 보진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시작부터 비주얼로나 아이디어로나 참 괴상하게 시작해줍니다. 산타 다음에 산타 다음에 산타 다음에 산타가... 올록볼록거리는 촬영도 한 몫 하구요.)
- 일단 여전히 좋았던 점. 비주얼은 여전히 저엉말 훌륭합니다. 뭐 그 시절 프랑스 영화인데 제작비를 들여봐야 얼마나 들였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시 보니 돈을 조금 들여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비주얼이더라구요? 확인해보니 달러 기준으로 1,800만 달러 정도였다고. 그렇다면 대략 당시 환율 생각해보면 150억원 근처쯤 되는 듯 하고. 그 시절 물가까지 고려하면 한국 기준으론 어마어마하게 들인 영화였네요. 4년 뒤에 한국산 블럭버스터!로 등장했던 '쉬리'의 제작비가 고작 30억 언더였으니까요.
(엑스트라도 꽤 많이 쓰고 셋트도 완전 공들이고... 근데 이 짤도 어째 '매트릭스' 풍이군요.)
- 암튼 그 덕택 + 쥬네 & 카로의 비주얼 감각 덕에 보는 내내 눈은 호강하는 영화입니다.
나오는 기계, 도구들이든 배경이든 하나 같이 다 디자인이 잘 되어 있고 디테일도 쩔어요. 그리고 그 디테일들을 수작업으로 표현해 놓은 퀄리티가 지금 봐도 감탄스럽구요. 그 와중에 의상 담당이 장 폴 고티에네요? ㅋㅋㅋ 그렇게 보기 좋은 것들이 영화 내내 좌라락 펼쳐지는 가운데 촬영은 다리우스 콘쥐입니다. 뭘 더 바라겠나요.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보다 보면 테리 길리엄 생각도 많이 납니다. '브라질'이 하안참 전에 나온 영화였고 이거랑 같은 해에 나온 '12 몽키즈'도 그랬구요.)
- 이야기 측면에서 본다면 흔히들 '잔혹 동화'라고 부르는 류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거의 동화의 논리로 전개가 돼요. 주인공들이 도저히 빠져 나올 길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순간 흘린 우리 소녀의 눈물 한 방울이 여기로 가서 닿고, 그게 어떻게 되었는데 그게 또 뭐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하면서 암튼 기적적으로 빠져나왔다! 뭐 이런 식이죠. 빌런들의 동기나 행동 양식도,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유대 같은 것도 정말 별 설명이 없이 심플하게 흘러갑니다. 얘들은 착하니까, 얘들은 어린이의 순수를 잃은 나쁜 어른들이니까. 뭐 그런 거죠.
근데 문제는... 도무지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할만한 디테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냥 착한 애가 위기에 빠졌으니 응원해야지, 착한 애들이 자기들끼리 뭉치려고 하니 기특해 해야지... 이런 식인데요. 이 또한 '동화'라는 이야기 성격을 생각하면 그렇게 문제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에 하나 더 얹히는 게 20세기 프랑스 영화다운 화법입니다. 불친절해요. ㅋㅋㅋ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알아 먹기 힘들게 전달하는 그 시절 이 나라 영화들 곤조가 있잖습니까. 이 영화도 좀 그렇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는데 그냥 불친절한 이야기에 과감하게 디테일을 다 생략해 버리는 동화적 어법이 얹히니 이야기를 구경하는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참 신기해요. '원'을 연기하는 론 펄만의 야수스러움은 충분히 인상적이고, '미에뜨'를 맡은 배우님은 정말 예쁘고 멋지거든요. 근데 얘들이 뭘 하든 별 관심이 안 가니...
(그 시절엔 참 저렇게 사람 머리 위에 뾰족뾰족 복잡한 걸 얹어 놓는 걸 좋아했죠. 아... 요즘도 그렇던가요.)
- 대충 빠르게 정리하자면요.
당시 절정의 재능을 뿜뿜하던 감독 콤비와 고오급 스탭들 + 당시 프랑스 기준으로도 대단하게 쏟아 부은 축에 드는 제작비... 덕에 지금 봐도, 아니 요즘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오히려 우월한 비주얼을 뽐내는 영화입니다. 볼거리 측면에선 요즘 영화들과 비교해도 나으면 나았지 모자랄 게 없어요.
사실 이야기도 설정만 놓고 보면 꽤 기발하고 재밌고 또 이것저것 생각해 볼 거리도 많은 이야기입니다만. 볼거리 만들기에 지나치게 꽂혔던 탓일까요. 주인공들의 드라마가 살지 않아서 그 숱한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재미가 없는 영화였습니다. ㅋㅋ 그래서 추천은 안 하는 걸로.
아쉬웠네요. 분명히 그 시절엔 엄청 좋게 봤는데!!! 이것도 늘금일까요... ㅋㅋㅋㅋ
+ 어쩌면 이번 주 내내 피로에 절어 있었던 게 감상에 지장을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어쨌거나 좀 힘들게 봐놓고 나니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 그래서 이 양반들 요즘 뭐하고 사나... 하고 검색해 보니 둘이 결별하고 나서 카로는 영화 하나 만들어서 망한 후 눈에 띄는 활동이 없고. 쥬네 아저씨는 근래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나 만드셨는데 평가는 매우 안 좋습니다. 한 때 그렇게 빛나던 재능이 이렇게 사그라든 걸 확인하면 늘 아쉽죠. 사실 전 '에일리언4' 까지도 재밌게 봤던 사람이라...
+++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것 중 하나. 과연 도미니크 피뇽씨는 이 영화를 찍고서
출연료를 7인분을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ㅋㅋ 뭐 등장 인물 수대로 돈을 주진 않았겠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2인분은 줬어야 도의에 맞는 게 아닌가 싶었던...
2024.03.09 00:55
2024.03.09 00:58
2024.03.09 01:21
음하핫. 하지만 괜찮습니다. 비평적으로나 화제면으로나 델리카트슨이 이 영화보다 존재감이 크죠. 착각하실만도 해요. ㅋㅋ
이 영화를 좀 실망스럽게 보고 나니 델리카트슨도 다시 보며 확인하고 싶어져서 검색해보니 정작 이건 OTT에 없네요... 어디 다른 데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근데 여성의 날 기념으로 킬 빌이라니. 센스가 독특하군요!!! ㅋㅋㅋ
2024.03.09 01:06
솔직히 저는 처음 봤을 때도 그닥 재밌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다른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었던 뭔가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특유의 비주얼과 분위기는 확실히 뇌리에 남아있습니다만... 언젠가 재감상을 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었는데 배티님 글을 보니 의욕이 더욱 사라지는! ㅋㅋㅋ
감독님 특유의 작품세계를 유지하면서도 무난하게 대중적으로 귀엽게 만든 '아멜리에'는 정말 여러번 봤는데요. 아마 대중들의 일반적인 선호도도 그렇겠죠? 상대적으로 아쉬운 평을 받았던 '인게이지먼트'도 저는 아주 감명깊게 봤었습니다. 당시 혜성같이 등장하여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토투가 그만큼 너무 매력적이기도 하고 역시 데뷔 초였던 마리안 꼬티아르, 조디 포스터의 서프라이즈 카메오도 좋았었죠. 도미니크 피뇽씨는 모든 작품에서 다 맛깔나는 양념역할을 해주셨구요.
2024.03.09 01:28
제가 워낙 비주얼에 약한 인간이라 ('블레이드 런너' 빠질을 그렇게 오래 한 것도... ㅋㅋ) 그 시절엔 되게 인상 깊게, 좋게 봤던 듯 해요. 바꿔 말하자면 나이 먹으면서 좀 더 내러티브에 관심이 많아진 걸까요. 흠(...)
전 그래도 '델리카트슨'이 이 사람들 대표작이 아닌가 했었는데. 이 영화 보고 나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사실상 '아멜리에'가 커리어 하이 대접이더라구요. 근데 정작 저는 그 영화를 초반은 재밌게 보다가 후반 전개에서 '어라 이게 뭐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기억만 남고 정작 영화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니 그것도 언젠가 다시 봐야겠습니다. ㅋㅋ
오드리 도투는 그 영화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이후로 한동안은 어디에 나와도, 무슨 역을 해도 "아멜리에 때만큼 매력적이진 않네"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 그래도 찾아보니 지금까지 꾸준히 잘 활동하고 계시네요. 하하; 그 시절에 안 보고 넘겼던 '더티 프리티 씽'이나 찾아볼까 봐요. OTT에는 없는 듯 하지만...
2024.03.09 13:30
아마 비평적 성과로는 델리카트슨을 더 높게 쳐줄테고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오드리 토투가 사랑스러운 주인공을 연기해서 대중성까지 확보한 아멜리에가 더 대표작으로 뽑히는 것 같아요.
토투가 그랬었죠. 아멜리에로 전세계에 얼굴을 알렸지만 다시는 그런 임팩트와 매력을 뽐낼 배역을 만나지 못했죠. 이건 배우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지라;; 그래도 주연급으로 꾸준히 커리어 잘 이어가는 걸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더티 프리티 씽'은 영어권에 진출하려던 시기 출연작으로 기억해요. '노예 12년'으로 뜨기 전 치웨텔 에지오포와 영국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동양계 배우 베네딕트 웡 등의 나름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죠. 꽤 볼만했던 이민자 잔혹사물 영화일겁니다. 나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빈치 코드'까지 나왔었는데 작품도 그냥 그랬지만 배역도 소모적인 히로인에 불과했고 이후로는 자국에서만 활동하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오드리 토투는 아멜리에 이후로는 '시작은 키스!'라는 작품을 가장 애정하는데요. 넷플릭스에 올라와있네요. 배티님 취향에 맞으실지는 잘.. ㅎㅎ
2024.03.09 02:28
감탄하면서 본 영화이긴한데, 솔직히 재미는 없었죠.
저도 비주얼에 약한데,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게 불친절하면 보기 힘들더군요. 특히 부조리극처럼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 캐릭터와 이야기 진행일 경우 더 그렇고요, 물론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습니다만..
저 영화는 <브라질>이나 <블레이드러너>보다는 체코 애니메이션 <앨리스>류에 가깝지 않나 생각하고, 그 영화도 엄청 좋아하는데 재감상할 때마다 정주행하기는 힘들거든요 하하..
2024.03.10 01:38
'솔직히 재미는 없었죠.' 이 말씀에 마음이 몹시 평온해집니다... ㅋㅋㅋㅋㅋ 역시 그랬던 거군요!
맞아요. 불친절한 전개 자체는 괜찮은데 그게 어떤 이야기와 맞물리면 그냥 감상이 고통스러워지는 게 있더라구요. 그리고 솔직히 이 영화는 뭐랄까... 그냥 각본을 좀 잘못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꾸 중요한 정보를 까먹고(?) 그냥 흘러가는 장면들이 종종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생략에 특별한 의미나 효과 같은 게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체코 애니메이션 앨리스라는 건 난생 처음 들어봐서 검색을 해 보니... 흠. 저도 일단 좋아할 것 같긴 한데 '뭔 얘긴지 알아 먹기 힘들다'는 얘기가 참 많이 보이네요. 그럼 저도 힘들 듯... ㅋㅋ
2024.03.09 06:12
카로는 신비주의 컨셉인지 신작관련 TV인터뷰조차 역광으로 실루엣만 보이게 진행했던게 기억나네요. 당시 참 쿨하다 느꼈어요.
순전히 이 작품의 팬이라서 영화 기반의 어드벤쳐 게임도 했었는데 말도 안되게 어려워서 인터넷으로 외국 공략사이트 뒤져서 겨우 엔딩보고 말았더랬죠.
2024.03.10 01:39
역광 실루엣 인터뷰라니 정말로 세기말 감성이네요. ㅋㅋㅋㅋ
게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사진, 영상들 찾아보니 원작 재밌게 본 사람이면 안 해보고 넘기기 힘들었을 비주얼이네요. 하지만 존재 자체를 몰랐던 저는(...)
이 댓글을 쓰는 지금 스크린 채널에서 킬빌을 다 틀어줄거래요(여성의 날 기념으로ㅋㅋㅋㅋ) 오늘 잠은 다 잤네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