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튤립 피버'

2023.11.12 13:11

조회 수:274

쿠팡플레이에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예요. 추천은 아니고 그냥 봤다는 이야기 정도.
내용을 미리 보면 김이 꽤 샐 영화라서 미리 경고 드립니다. 그냥 줄거리 다 얘기할 거예요!




치정극이라기엔 좀 동화 같은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치정극입니다.

아들을 원하는 노년의 부자, 팔리다시피 이 남자와 결혼한 젊고 예쁜 여자, 그 집의 하녀, 그리고 그 두 여자의 애인 이야기예요.

결혼 삼년차에 아이가 없어서 위치가 불안해진 시점에 여주인공은 자기들 부부 초상화를 그리러 온 화가와 사랑에 빠집니다.
젊고 잘생긴 남자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걸 보면 이야기 속의 남편이 사실은 아내가 밖에서 아이 만들어오길 바란 거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더군요. 만난다고 다 바람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젊은 미남미녀에 여자가 받고 있는 임신 압박, 그리고 남편 나이를 생각하면 아내가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죠. 게다가 초반부터 화가가 남의 부인 보는 눈길이 대놓고 끈적하거든요.

이쪽은 그러하고,

이 집 하녀에게도 잘생긴 생선 장수 애인이 있어요. 애인은 큰돈을 위해 튤립에 투자하는데 - 모두가 짐작하듯이- 초반에 돈을 좀 벌고 좀 더 큰 투자를 합니다. 그러다가 그 돈을 투자로 날린 것도 아니고 소매치기 당해요. 그 돈을 찾으려던 싸움판에서 소매치기 일당들에게 밀려 강제로 원양어선에 태워집니다.
하녀는 임신한 상태로 애인이 사라져버리자, 임신이 알려지면 여주인의 불륜을 폭로할 테니 덮어달라 협박하고, 여주인은 둘 다 살 궁리를 하다가 자기가 임신한 걸로 남편을 속이기로 하죠. 몸이 약해서 남편을 멀리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서 어쨌든 하녀 아기를 자기가 낳은 아기로 속이는데 성공하고, 출산 직후 죽은 것처럼 꾸며 집을 빠져나가기까지 완료.

한편 이 음모에 가담해 주인공과 동인도로 도망갈 계획이었던 화가도 또 돈이 필요하죠. 역시 튤립에 투자하고 실제로 튤립 구근 가격이 폭등합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실수로 구근을 잃어버려서 완전히 망해요.
튤립 때문에 망한 사연이 둘 다 구근 가격 폭락이 아니라는 게 재미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어이없을 때가 있다는 면에서 상당히 현실적이기도 해요.

관에 들어가서 남편의 집을 빠져나온 여주인공은, 출산하는 척 하던 때 남편이 한 말에 이미 감동한 상태입니다. 관 뚜껑이 열리자마자 집에 돌아가겠다고 나섭니다.
이 지점에선 제 세대 모 기업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있었던 관에 들어가기 체험이 생각나더군요. 인권의식이 지금보다 더 낮았던 90년대인데도 꽤 비난을 받았었죠.
폐소공포증까지 가지 않더라도, 빛이 거의 없는 곳에 움직이지 못 하고 더구나 평범한 사람이 죄를 짓고 들어가 있으면 제 정신일 수가 있을까요. 저 위 신입연수때 꽤 짧은 시간인데도 울면서 나온 사람이 많았다는데요.
뭐 아무튼 이 주인공은 공범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집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기서 공범들이 여자를 잡을 줄 알았는데 그냥 어이없어만 해요. 착하기도 하지.

남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전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양반은 아이를 택하죠. 결국 아이도 아내도 잃은 기억 때문에 죄책감인지 전략 수정인지 아무튼 후처인 주인공에게도 부드럽게 대하고, 이번에 주인공이 거짓 출산을 할 때는 의사에게 미리 당부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이를 포기하고 아내를 살려달라고.
이게 꽤 중요한 부분이에요.
남편을 한참 속이고 있던 주인공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약해지거든요. 결국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돌아온 주인공은 아기를 안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훔쳐보고 그대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 심리는 또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의 평화를 깨기가 미안했을 수도 있겠죠. 관짝 체험 약발이 다해서 그냥 겁이 났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적어도 영화속에서는 그런 표정은 아니었어요.
아무튼 주인공은 그렇게 모습을 감추고...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하녀의 애인이 돌아와버립니다. 둘은 왜 떠나버렸느냐, 네가 화가하고 자는 걸 봤다( 여주인이 하녀 외투를 뒤집어쓰고 화가에게 가는 걸 하녀 애인이 보고 뒤를 밟았거든요) 옥신각신 하다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친절하게 다 얘기해줍니다.
당연히 집주인이 듣죠.
이 부분은 저녁 막드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아니 사실 막드가 아니라도 한국 드라마에서 중요한 비밀들은 주로 '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되거든요. 집주인이 멀리 가있다는 면죄부라도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그 정도 성의도 없이 냅다 다 들리게 떠들어대서 우연히 듣게 된다니까요. 당췌 성의가 없어요, 성의가.
아무튼 이 남편, 당장 하옥시켜라! 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넓은 아량으로 두 사람을 용서하고, 집을 하녀와 애인에게 준 채 집을 떠납니다. 자기 가문 이름으로 살아달라고 하면서요.
허허...네...뭐 저로선 이해가 안 되는 보살의 경지입니다만 이 분 심리 묘사가 더 잘 됐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가문과 후손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아내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게 되는 노화 증상이라든가 이유가 뭐든 좀 설득을 해달란 말씀입죠.

시대극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은 합니다. 저게 초인종 초기 형태구나 뭐 이런 관점으로 보면 재미있어요. 저도 그런 맛에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거든요. 조마조마 뭔가 터질 듯 터질 듯한 긴장감도 어느 정도 있고요. 기대만 잔뜩 주고 대폭발이 아니라 뽁 하고 터져서 상당히 찜찜하지만 터지기 전까지 나름대로 스릴은 있는 편입니다. 제 나이에 지나친 긴장은 위험하므로 이 정도면 딱 좋은데, 문제는 마무립니다.
몇 년 전엔 누군가 영끌로 주식 사면서 저들처럼 시그니엘에서 신혼 시작할 단꿈을 꾸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기도 하죠. 카카오 피버로 리메이크도 가능할 듯.
그런데 좀 얄팍해요. 재미있을 만한 스토리지만 기대한 것은 나오지 않고, 갈등은 너무 쉽게 해소됩니다.


직접 관계는 없는 궁금증 한 가지.

생선 장수가 탄 배는 원양'어선' 이 맞을까요? 그렇게 자막이 나오긴 합니다.
소금을 쓴다면 원양까지 가서 못 잡아올 이유도 없을 것 같긴 한데, 저라면 이왕 부실한 배 태워 멀리 보낼 거 후추 사러 보내지 고기 잡아오라고는 안 할 것 같아서요.
이 주제로 유투브나 뒤져보렵니다. 대항해시대 향신료 무역 다룬 채널은 몇 개 봤는데 초기 원양어업도 누군가는 다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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