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 00:18
- 나온지 며칠 안 됐구요. 로알드 달의 단편 네 편을 웨스 앤더슨이 하나씩 영상화 한 겁니다.
그 중 세 편('독', '백조', '쥐잡이 사내')이 17분, 나머지 하나('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가 41분이어서 전부 다 봐도 92분 밖에 안 되구요.
재밌게 봤지만 뭐 딱히 할 얘기가 있나... 싶어서 대애충 뭉뚱그려서 적습니다. 스포일러 같은 거 전혀 없어요.
(딱히 네 편을 하나로 묶어주는 포스터 같은 게 없어서 유일하게 포스터 이미지가 있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로 대표를 시켜 봅니다.)
-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말장난이지만 '비디오북' 같은 겁니다. ㅋㅋ 일반적인 '소설의 영상화'와는 많이 달라요.
일단 등장 인물들 중 한 명이 쉴 새 없이 나레이션을 해요. 소설의 서술자 역할인 거죠. 근데 그걸 대놓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합니다. 니가 독자야. 라는 듯한 느낌.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 역할을 배우들이 나와서 연기를 하구요. 배경은 언제나 웨스 앤더슨스러운 실내 셋트이고, 보기에 어떤 느낌일지는 설명도 필요 없겠죠? ㅋㅋ 암튼 그래서 나레이션이 오디오북 같은 기능을 하는 가운데 웨스 앤더슨스런 셋트와 배우들의 연기가 마치 책의 삽화처럼 작용하는 겁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굉장히 연극적이에요. 등장하는 배우가 직접 나레이션을 하면서 또 등장 인물 역할 하나를 맡아서 하구요. 상황에 따라 1인 2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경 세트 조작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아주 웨스 앤더슨스런 차림새를 하고선 그냥 화면에 튀어나와 조작을 합니다. 이거 갖다 놓고 저거 치우고 뭐 들고 있고 그러구요. 가끔 특수 효과가 들어가야할 부분도 cg도 쓰지 않고 이런 무대 담당자가 '나는 여기 없는 거니까'라는 식으로 무심하게 몸으로 때우거나 카메라 착시를 위한 소품들 같은 걸로 처리하고 그럽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논스톱 라이브로 찍어 내고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영화인데, 이런 식의 연극 요소를 많이 넣은 거죠.
(배 위에 독사가 잠들어 있는 친구를 구출하려 애쓰는 친구와 의사 이야기, '독')
(총을 든 동네 양아치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선량하고 조숙한 소년 이야기, '백조')
- 이야기들의 성격이 의외로 다양합니다. 시니컬한 블랙 코미디도 있고, 그냥 어처구니 없는 작은 소동극 같은 것도 있고, 먹먹해지는 슬픈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어린 애들 보여줘도 될 법한 건전 훈훈한 이야기도 있구요. 다만 만들어진 형식들은 모두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아서 작품 별로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웨스 앤더슨 작품답게 배우들도 많이 겹치구요. 근데 뭐 어차피 웨스 앤더슨이 혼자서 다 만든 것이니 이런 부분은 그냥 '일관성'으로 봐야겠죠. 그리고 그게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웨스 앤더슨의 팬까지는 아닌데. 그냥 가아끔씩 한 번 보면 '아 이 양반 여전하시네 ㅋㅋㅋ' 이러면서 재밌게 보는 편이거든요. 이 시리즈(?)도 딱 그런 느낌으로 잘 봤어요. 여전히 같은 스타일의 그림이지만 여전히 예쁘고. 배우들도 이렇게 연극스럽게 연기를 하니 뭔가 대단한 장면 같은 건 없어도 은근히 실력 발휘들 해주는 편이구요. (솔직히 웨스 앤더슨의 '평소 영화'에 나왔을 때보다 연기할 건 많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ㅋㅋ) 로알드 달의 이야기들도 각자 다른 스타일로 재밌습니다. 네 편 모두 잘 봤어요.
(아주아주 괴상한 쥐잡이 아저씨에 대한 엽기적인 일화, '쥐잡이 사내')
(뭔가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할 말이 없는, 근데 이 짤만 봐도 모두 다 감독을 바로 떠올릴 것 같은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 뭐 더 덧붙일 말도 없구요. 그냥 '웨스 앤더슨이 만든 로알드 달 원작 단편 영화'라고 하면 다들 자동으로 머리에 떠오르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웨스 앤더슨 스타일 좋으시면 보시고, 로알드 달 작품 좋아하시면 보시고... 그러시면 됩니다. ㅋㅋ
그리고 만약 보실 거라면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마지막에 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게 런닝타임도 길고, 또 이 중에 가장 미술 쪽으로나 연출 쪽으로나 스케일도 있고 신경도 많이 쓴 느낌이라서요. 상대적으로 매우 소박한 나머지 셋을 먼저 보고 이걸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쨌든 전 즐겁게 잘 봤네요. 끝입니다.
(극중에 로알드 달 본인도 자꾸 나와요. ㅋㅋ 보시다시피 레이프 파인스가 맡았습니다.)
2023.10.01 18:28
2023.10.02 00:16
넷플릭스 썸네일만 보고도 감독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웨스 앤더슨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늘 고민되는 그 분은 두 편에 나옵니다. '쥐잡이 사내'랑 '헨리 슈거'에 나와요. 어차피 다 보실 것 같지만 그냥 참고하시라고...
2023.10.01 22:18
아! 이게 여러 편이 있었군요. ㅎㅎ 전 추천 영상으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가 뜨길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봤습니다.
웨스 앤더슨 팬이 아니지만 재밌게 봤어요. 특히 그 또박또박한 영어 발음은 정말 청각적으로 만족스럽더군요.
레이프 파인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읽어 주는 책이 있다면 정말 사고 싶.....
말씀처럼 비디오북 같은 컨셉인데 보면서 "오우, 이거 괜찮은데? 책 이렇게 읽어주는 서비스도 나처럼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에겐 꽤 유용할 거 같아" I said.
흥행하면 로알드 달 외에 다른 시리즈가 나오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네요. ㅎㅎ
2023.10.02 00:18
정말로 나레이터 맡은 배우들이 다 '구연' 하는 느낌으로 살짝 연기를 넣으면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게 재밌더라구요. 어차피 전 원어로는 못 알아듣지만 알아 들을 능력 되는 분들이면 저보다 훨씬 즐겁게 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
어디서 보니 넷플릭스가 로알드 달 작품들 판권을 사서 만든 거더라구요. 처음부터 웨스 앤더슨이랑 얘기가 된 건지, 판권 먼저 사고 앤더슨을 낙점한 건진 모르겠지만 판권료를 어마어마하게 줬더군요. 덕택에 자손들이 행복합니... (쿨럭;)
2023.10.01 22:32
디즈니플러스에 웨스 앤더슨 영화가 여럿 있어서 언젠가부터 안 보게 된 이 분 영화를 볼 계획입니다. 이 영화는 꽤 호기심이 생기는데 이번엔 넷플릭스에 올라갔군요...
소개하신 걸 보니 코엔 감독의 '카우보이의 노래'도 떠오릅니다. 매우 다른 느낌이겠지만요. 큰 감독들의 이런 기획은 좋으네요.
2023.10.02 00:20
본문에도 적었지만 제게 웨스 앤더슨 영화란 '잊을만 할 때마다 하나씩' 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안 봐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당연한 말을;) 주기적으로 한 번 새로 나온 걸 챙겨 보고 싶어진달까요. 이 시리즈(?)는 딱 그 타이밍에 나와서 얼른 봤습니다. ㅋㅋ
큰 감독들이 투자를 못 받아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만드는 건 슬프지만, 이렇게 극장용으로 만들기 애매한 작품들을 만드는 경우엔 감독과 넷플릭스와 이용자가 모두 행복한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자마자 웨스 앤더슨인거 알겠더라고요 ㅋㅋ 정리해주신 내용들을 보니 정확하게 제가 기대하고 있는 옴니버스인 것 같아요.
한바탕 폭풍도 지나갔고 이제 평화가 왔으니 차분하게 하나씩 볼 생각입니다.
리처드 아이오아디는 계속 나오는 것일까요? 일단 등장이 확실한 쥐잡이 사내를 먼저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