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연휴 TV에서는 성룡 영화 한 편씩 방영했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졌죠,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군요. 네이버 무료 영화에서 홍콩 영화 대잔치 중입니다(전 주에는 <천장지구> 1,2편이 나왔음).
오우삼도 건너 뛰고 왕가위 감독이 한국 연휴를 인터넷 상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썸네일도 다 새로 근사하게 뽑았네요. 
nav.png

<중경삼림> 보고 단번에 반하지 않기가 어려웠죠. 우울한 임청하, 금성무 편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왕비, 양조위 에피소드를 정말 좋아해서
<타락천사>도 바로 봤는데 음-- 좀-- 과한가??했지만 그래도 알록달록한 홍콩에서
미남미녀들이 흔들흔들 방황하는 영화니까! 왕가위 영화니까! 하고 좋아하는 척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사서독>은 너무 지루해서 아 감독님이 이제 '아트'영화 하시는구만, 
<아비정전>서부터 그런 기미가 충만했는데 내가 애써 달짝지근한 부분만 뽑아 먹으려 했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춘광사설-해피투게더>가 나왔죠. 양조위와 장국영이 연인으로 나온다고???
->아니 진짜 어떻게 인간으로서 마음이 안 동할 수 있습니까? 이건 봐야 한다. 공식으로 떠먹여주는 건 엎드려서 두 손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 영화라고 한국에서 개봉 안 하고~ 키노 잡지에서 초록색 영화 스틸만 보며 안달하다가
하여간 보게 되었을 때 또 음-----------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진행이 너무 느리고 둘이 저렇게 아웅다웅 밀고 당기고 하는 게 이해가 안되고 
화면도 칙칙하고 단순해서 더욱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고.
양조위와 장국영이 하늘 끝 세상의 연인으로 나와도 어쩔 수 없군,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이나 지루하군!!!
그러면서 날 재우지도 못했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왕가위 감독 영화들을 리마스터링 해서 재개봉했을 때 
나는 왜 그리 재미를 못 느꼈는지 확인하려고 <해피투게더>를 다시 봤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여전히 신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들을 항상 콕 집어낼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어휴 그냥 헤어질 것이지, 저 둘은 왜 저래에서 '왜'를 걷어내니 비로소 보이는 영화였어요.
보영과 아휘는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 하면 행복하지가 않아요. 아휘는 장과 있을 때 안정을 찾고 
장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지만 둘이 함께 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영어 제목인 <해피투게더>가 지독하게 반어적이라는 걸 영화 끝까지 보고 나서 깨달았을 때 
막바지 부분에서 오열하는 장국영의 슬픔에 그대로 이입되었습니다. 

처음 보고서는 머릿 속에 남은 장면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이과수 폭포 씬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양조위가 화면 왼쪽에서 노란 비옷을 입고 태풍처럼 쏟아지는 폭포수를 전신으로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지. 
보영과의 모든 기억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씻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어'하고요.
그러니까 이런 느낌.
rain.png

(목 없는 호빗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 장면은
005.png
?????
아니 분명히 3984574년 간을 노란 비옷을 입고 화면 왼쪽에서 전신이 나오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가 뭔가 법정 증언하거나 할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13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82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011
124446 밥 달라고 지저귀는 아기고양이들 [14] 로즈마리 2010.07.05 3818
124445 혼자라서 불편할때.... [17] 바다참치 2010.07.05 3927
124444 [축구] 여러가지 오심, 반칙등과 관련된 논란에 대한 [10] soboo 2010.07.05 2610
124443 원래 등업고시 다른 사람꺼 읽을 수 있는 건가요? [3] 임바겔 2010.07.05 2680
124442 갑자기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을 때 어떻게 하세요? [8] eeny 2010.07.05 5515
124441 반복해서 듣고 있는, 보고 있는 노래 [3] 바오밥나무 2010.07.05 2260
124440 자각몽을 많이 꾸는 편입니다. [8] 스위트블랙 2010.07.05 3549
124439 개를 '개' 취급 받은 경험 [37] 프레데릭 2010.07.05 4728
124438 중국집 라이프 사이클 [4] 걍태공 2010.07.05 2547
124437 최근 장르문학 신간입니다. [4] 날개 2010.07.05 2636
124436 또 다른 세대갈등을 불러옴직한 드라마들 혹은 언론의 설레발 [4] soboo 2010.07.05 2445
124435 (듀in)아이폰관련 질문.. [6] 역시천재 2010.07.05 4534
124434 아침에바낭] 농담, 독신생활, 무취미, 주말반 [7] 가라 2010.07.05 3225
124433 에어컨이 싫어요...;ㅂ; [8] 장외인간 2010.07.05 2477
124432 [bap] 명동연극교실 '극장을 짓는 사나이' / '지식의 대융합' [3] bap 2010.07.05 1844
124431 어제 '인생은 아름다워'보면서 강렬하게 바라게 된 것.. [6] S.S.S. 2010.07.05 3953
124430 흑백화면이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가요. [6] 자두맛사탕 2010.07.05 2523
124429 그럼 어떤 점이 "아, 이 사람 미쳤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나요? [10] 셜록 2010.07.05 3407
124428 꿈 속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거 알고 계시는 분? [16] 사과식초 2010.07.05 3680
124427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주정뱅이 천사 [10] GREY 2010.07.05 260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