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짧은 잡담

2023.08.11 23:34

thoma 조회 수:812

한국 영화를 개봉한 주에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습니다. 거의 혼자 보러 가는데 모처럼 극장 동행이 생겨서 이런 일이 생기네요. 

보고 나서 듀나 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거리도 생기고 특히 아쉬운 점 지적 부분에 많이 동의가 됩니다.

아래 스포일러 약간 있어요.                                            



원인은 모르지만 다 파괴되고 요 아파트 한 동만 남아 있는 세계, 라는 설정만 받아들이면 영화의 진행에 헛웃음이 난다던가 어이없음의 무리수는 없었어요.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아파트 사람들이 당장의 안위에 코를 박고 날을 세워 서로 공격을 해대고 생존법칙 이외에는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재를 그대로 떠올리게 합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상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소소한 이야기들이 허약하거나 잘 섞여들지 않고 따로국밥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런 게 안 느껴지고 작은 사건들이 그럴 듯하고, 서로 잘 맞물려 있었고, 이런 차곡차곡 쌓아진 얘기가 후반에 제대로 터트려집니다.  

 

박보영 캐릭터가 어떤 관객들에게 '철이 없다'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쳐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갈 수 없었을까. 박 배우 역할을 이런 시선으로 보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당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이 문제를 좀 잘 풀었으면 얼마나 더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까요. 듀나 님 리뷰에 '선은 재미가 없지 않습니다.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재미있을 수 있는 겁니다.' 라고 쓰셨는데 악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입체적인 선한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 시나리오들의 큰 숙제 같습니다. 악은 관성적인 진행 방향이지만 선은 현실의 진행 방향에서 그 관성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선하려면 마음과 머리를 더 써야 하고 실행에 있어 더 힘듦니다. 

이병헌의 배역이 참으로 찰떡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안 미안함) 외모부터 이미지까지 역할에 잘 어울리면서 연기가 물만난 고기 같네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병헌 연기 칭찬만 주로 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아파트에 사시나요. 저는 아파트에 삽니다. 처음 아파트에 살 때 관리실 방송이 거실에 울려 퍼질 때의 난감함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네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고 도시로 나가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믿게 된 한국 사람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그리하여 선택하게 된 '아파트'란 무엇인가. 실용과 기능적 고려만으로 수도 없이 지어진 네모네모 고층 건축물들. 모르긴 몰라도 주거 양식에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가 세계 탑급 아닐까 싶습니다. 좁은 땅에 비해 인구가 많으니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긴 한데 저는 이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씁쓸합니다. 마루에 앉아 비오는 마당을 볼 수 있는 집에 사는 것이 꿈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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