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7 23:33
-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42분이고 장르는 호러에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포스터 참 맘에 들어요. 영화 내용, 분위기랑도 잘 맞구요.)
- 배경은 1918년이고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 외딴 시골 농장에 살고 있는 젊은이, '펄'이에요. 아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신 마비 상태로 가족의 짐짝이 되어 있고, 엄마는 본인의 한 많은 인생 때문에 딸에게 야멸차고 매정하게만 대하지만. 그리고 이 시궁창에서 벗어나리라 꿈과 희망을 걸었던 남편 하워드는 전쟁 통에 유럽에 끌려가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펄에겐 꿈이 있거든요. 언젠간 멋진 댄서가 되어서 이 집을 벗어나 미국 전역을 누비며 신기한 체험도 많이 하며 폼나고 화려하게 살게 되리라는 꿈. 그래서 농장의 동물들에게 디즈니 공주처럼 말을 걸며 쇼를 하구요. 연못에는 남 몰래 귀여운 동물 친구도 하나 키우고 있구요. 가끔씩은 엄마 심부름으로 마을에 나가 생활비 좀 삥땅쳐서 극장도 가고. 그러면서 힘차게 잘 삽니다.
하지만 뭐 장르가 호러이기도 하고. 또 도입부에서부터 허걱스런 장면이 하나 있기도 하고. 이 이야기가 이대로 흘러갈 리는 없겠죠.
(미아 고스라는 배우의 개성 있는 마스크를)
(굉장히 잘 활용하며 살려낸 경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봤는데, 각본을 감독과 함께 썼더라구요?)
- 좀 웃기는 경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같은 감독이 같은 해에 내놓은 영화 '엑스'의 프리퀄이에요. 그리고 그 본편이 아주아주 높은 평가를 받아서 한국의 호러 팬들을 설레게 했구요. 하지만 그 '엑스'는 극장 개봉은 커녕 vod 출시도 안 되고 있는 상태에서 쌩뚱맞게 나중에 나온 프리퀄이 먼저 vod로 출시가 되어 버린 겁니다. ㅋㅋ 아 진짜 이번 '이블데드 라이즈'가 극장에 걸리지도 못한 것도 그렇고, 한국은 호러 영화의 불모지가 맞는 듯.
암튼 그래서 '본편도 못 봤는데 프리퀄부터 볼 순 없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어제 올레티비를 켜 보니 영문을 알 수 없게 영화 구매용 포인트 1만원 어치가 선물로 들어와 있지 뭡니까. 그래서 그냥 봐 버렸습니다. 언제 나올지도 모를 본편 기다리기도 난감하니 볼 수 있는 거라도 먼저 봐야죠. 뭐 어쩌겠습니까. ㅠㅜ
(안녕하세요. 클락 켄트라고 합니다?)
- 그러니까 저 도입부 설명을 보면 꼭 옛날 옛적 '씩씩한 농장 아가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명랑 무비 같은 느낌이잖습니까. 혹은 뭐 진지한 멜로 드라마 같은 게 될 수도 있겠구요. 그리고 영화는 정말 그런 옛날 영화들 흉내에 진심입니다. 비현실적으로 예쁜 색감의 그림들이 자주 나오고, 주인공의 환상이 반영된 건지 그냥 실제인지 모를 어여쁘고 귀여운 장면도 많이 나오구요. 배우들의 연기나 미장센 같은 것도 '헐리웃 고전 시네마'의 느낌적인 느낌을 흉내내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냥 이게 이 감독 특기 중 하나이기도 하죠. 예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몇 번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도입부에서 우리의 펄은 정말 디즈니 공주님 흉내까지 냅니다. 당연히 은근슬쩍 스멀스멀 웃기구요. 하지만 장르가 장르이니 노림수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귀엽고 발랄한 느낌에다가 음산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슬쩍슬쩍 섞어 넣다가 언젠간 '펑!!' 하고 터지겠죠. 게다가 먼저 적었듯이 시작부터 주인공이 황당한 짓 한 번을 해서 '사실 전 멘탈 헬스에 문제가 아주 많은 사람이랍니다' 라고 대놓고 알려주기도 하구요. 그러니 딱히 놀랍거나 신선하거나 그럴 부분은 없습니다. 감독도 특별히 그렇게 보이려고 애를 쓰지도 않구요.
(대충 이런 느낌으로 예쁘장한 가운데)
(이런 식으로 불쾌하고 기이한 느낌을 섞는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 그렇게 신선함이나 놀라움 같은 건 저 멀리 치워 버린 대신에, 퀄리티가 좋습니다. 진짜 옛날 영화같단 느낌까진 안 들어도 암튼 그런 느낌은 낭낭하구요. 미아 고스를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도 좋구요. 이야기는 전형적인 대신에 구색을 맞춰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시에서 펄을 유혹하는 '보헤미안' 남성 캐릭터나 악의 없이 살벌하게 펄을 압박하는 엄마 캐릭터나, 다들 나타내는 바가 명백하면서도 이야기에 잘 어울리게 배치되어 효율적으로 잘 쓰입니다.
상당히 느긋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초장에 펄의 똘끼를 선명하게 보여준 덕에 늘 긴장감을 깔고 심심하지 않게 흘러가구요. 중간중간 포인트가 될만한 이벤트들을 짤막하게 넣어주는 센스도 좋구요. 다짜고짜 와다다 달리는 호러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고 기대치를 맞춰서 본다면 딱히 심심할 틈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런 장면들(?)도 임팩트 있게 잘 연출되었구요.
(어쨌든 예쁘게 잘 찍은 장면들이 나름 적절한 은유와 상징을 담고 펼쳐지구요.)
- 뭣보다 제목에 주인공 이름을 박아 넣은 영화답게 캐릭터를 잘 만들었습니다. 이 구역의 미친 x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만, 동시에 우리 펄씨는 시대와 팔자의 희생양이기도 해요. 그래서 보다 보면 펄과 엮이는 인물들은 물론 펄 본인까지도 걱정을 하게 됩니다. 아이고 저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가 저러다 뭐 험한 꼴 당하는 거 아닌가... 와 아이고 저 분위기 파악 못한 캐릭터가 저러다 피칠갑 되는 건 아닌가... 라는 식으로 양측을 다 걱정하며 보게 되는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니 뭐 본격적으로 사건 벌어지기 시작하면 당연히 한 쪽만 걱정하면 되는 분위기가 되긴 합니다만. ㅋㅋㅋ 그거야 장르상, 이야기 컨셉상 어쩔 수 없는 거구요. 또 나중에 펄씨가 벌이는 폭주는 살짝 한풀이의 성격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은근 즐겁기도 해요. 시각적으론 매우 끔찍합니다만 뭐... 그거야 장르가 호러니까 익스큐즈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제가 본 중에선 주연 배우님의 능력과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 그리고 미아 고스가 있습니다.
비주얼부터 임팩트를 타고난 분이라 이 분의 연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본인이 직접 각본까지 함께 쓰고 만든 이 영화에서 아주 단단히 실력 발휘를 해 주십니다. 엿같은 팔자의 순박한 시골 젊은이와 분노 조절 장애 미친 놈... 이라는 캐릭터의 양면을 모두 어색함 없이 표출해주시구요. 그래서 귀엽고 안타깝다가도 역할 정도로 막나가는 비호감이 되기도 하고. 약자였다가 빌런이었다가 쉴 새 없이 오락가락하는 캐릭터를 잘 살렸어요. 영화의 클라이막스와 크레딧 씬에선 꽤나 긴 롱테이크와 함께 좀 곡예성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역시 참 잘 하더군요. 원래부터 이렇게 잘 하는 분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봤습니다. 자칫하면 팬 될 뻔!! ㅋㅋㅋ
(아 이 분을 까먹을 뻔 했군요. 엄마 역으로 나오신 분인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역시 미아 고스 못지 않게 잘 해주셨습니다. 탠디 라이트라는 뉴질랜드 배우님이시네요.)
- 대충 결론내자면 뭐, 대략 뻔한 설정으로 좀 유희성이 짙은 형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만. 그 설정을 잘 살려내고 있고 또 그게 영화의 메시지나 스타일과도 잘 조화되어 있구요.
전형적인 싸이코 돌아이 호러지만 캐릭터가 괜찮고 배우도 찰떡 같이 소화해 주고 하니 '이 정도면 간만에 보는 괜찮은 돌아이 영화였다'라는 기분으로 흡족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뭐 다시 생각해봐도 본편인 '엑스'를 먼저 보고 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수입 배급사들이 안 도와주니 어쩌겠습니까. ㅋㅋ 그래도 미뤄뒀다가 언젠가 본편을 본 후에 보는 게 좋겠다면 그렇게 하시구요. 저처럼 걍 이거라도 먼저 봐야쓰것다... 싶은 호러 팬들이라면 그냥 보셔도 괜찮을 거에요. 본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단단하게 잘 만든 소품 호러였습니다.
+ 근데 1918년에 극장에서 유성 영화를 틀고 있는 풍경은 이쪽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좀 무리수였으나... 설마 만든 사람들이 그걸 몰랐겠습니까. 걍 의도한 효과를 위해 슬쩍 시치미 떼고 만든 거겠죠. 결과물이 좋았으니 굳이 시비를 걸 이유도 없겠구요.
++ 주인공 펄과 엄마의 관계를 보면 아무리 봐도 '캐리' 생각이 나구요. 그래서 펄도 '나는 예쁘지도 않고 사람들이 안 좋아하고 어쩌고' 같은 신세 한탄을 합니다. 아 네, 뭐, 그렇군요? ㅋ
이 분이 인디 아들래미랑 결혼했다는 건 인디아나 존스 4를 보고 나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처음 알았어요. 샤이아 라보프가 어디 유튜브에 나와서 '개 같이 살다가 개 같이 멸망했던 내 삶을 구원해준 천사'라며 아주 격렬한 사랑을 고백하는 영상도 있고 그렇던데. 암튼 뭐 행복하시길 빌고. 라보프씨도 본인 말대로 정말로 정신 차렸길 빌구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펄은 엄마 심부름으로 장보러 갔던 시내에서 매우매우 수퍼맨처럼 생긴 훈남 젊은이의 유혹을 받구요. 그래도 일단은 뿌리치고 집에 왔는데, 다음 날 방문한 시누이로부터 며칠 후에 마을 교회에서 댄서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요. 하지만 엄마는 당연히 야멸찬 소리를 한 사발 들이 부으며 펄을 좌절 시키고. 결국 살벌한 몸싸움 끝에 엄마는 심한 화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근데 죽지는 않았고, 펄은 그런 엄마를 지하실에 가둬 버리고 와다다 시내로 달려가서 훈남 젊은이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요.
다음 날 그 젊은이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참 대담하게도 젊은이를 집으로 끌어들여 섹스를 나누려고 합니다만, 뭔가 묘하게 어질러져 있는 집안 꼬락서니에다가 지하실에선 정체 모를 쿵쿵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 뭔가 불길함을 느낀 젊은이는 '아 네, 그럼 일단 전 출근해야 하니 집에 좀... 하하하' 하고 회피 기동을 시도하고. 안타깝게도 "내가 뭘 어쨌다고!!!!" 라고 달려드는 펄의 분노의 쇠스랑에 퍅퍅퍅... 사망합니다. 그러고 펄이 키우는(?) 뒷뜰 호수의 악어님 식사가 되구요.
화를 가라앉힌 펄은 일단 전신마비 아빠를 질식사 시킨 후 집 떠날 채비를 다 하고서 시누이와 함께 댄서 오디션에 참가해서 열정의 땐스를 선보입니다만. '오, 참 잘 하시는데 우리가 바라는 스타일이 아니군요? 우린 좀 뭐랄까, 미국적인? 금발의? 나이도 어린???' 이라는 이유로 탈락. 광광대며 울다가 시누이의 위로를 받으며 집에 돌아옵니다만. 참으로 오지랖 넓고 선량한 시누이의 '마음 속 말 다 해 봐' 라는 부추김에 걍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일들을 다 털어 놓고. 겁에 질려 부들거리며 도주하는 시누이를 맹추격해서 이번엔 도끼로 찹찹... ㅠㅜ
그러고나선 지하실 계단에 죽어 있는 엄마의 시체 곁에 누워 엄마의 팔을 자신에게 두르고 청승을 떨면서 장면이 전환되고. 전쟁터에 끌려갔던 남편 하워드가 돌아옵니다. 이 가련한 젊은이가 집에 들어와 보니 식탁 의자에 앉아 썩어가는 장인과 장모의 충격적인 비주얼이 반겨주고요. 이 양반이 경악하는 동안에 주방에서 펄이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하구요. 겁에 질린 남편을 바라보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하고선 웃다 울다 눈물 흘리는 펄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한참을 보여주며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끝.
2023.07.08 09:46
2023.07.08 15:06
네 '엑스'는 안 들어왔어요. ㅠㅜ
영화는 재밌습니다. 나름 여성 서사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는 것도 괜찮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가볍게 볼 수 있는 팝콘 호러인 것도 좋았습니다. ㅋㅋ
2023.07.08 13:12
저도 '엑스'를 목놓아 기다리다가 결국 못참고 이걸 봤는데 똑같군요. ㅎㅎ 프리퀄이라고 홍보가 많이 됐었던 걸로 아는데 수입사는 기왕이면 같이 사오지...
제작비화가 참 재밌더군요. 원래는 X 촬영을 앞두고 한창 팬데믹 기간이라 촬영지에 비행기 타고 와서 다들 자가격리하던 중 미아 고스가 자기 캐릭터 펄의 과거사를 대략적인 큰 줄기의 스토리로 적어서 보내주자 감독이 여기에 꽂혀서 아예 이걸 각본으로 써보자! 해서 그 짧은 격리기간 도중 휘리릭 완성했다고 합니다. X도 그렇지만 펄도 어차피 초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작품이라 A24 측에다가 그냥 여기서 X 찍은 다음에 연달아서 프리퀄도 찍으면 안되겠느냐고 제안을 하니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네요. ㅋㅋ 그래서 X를 첫 공개했을 때 마지막에 쿠키영상으로 이 펄의 티져 예고편을 보여줬다죠. A24가 역시 일을 잘해요.
작품에 대한 얘기는 너무 잘 써주셔서 다 동감이고 미아 고스는 원래도 이런 쎈 작품에서 험하게 굴려지기 전문(?)으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이 작품에서 정말 200% 재능을 발휘한 것 같아요. 디즈니 프린세스 풍 패러디 연기부터 처절한 비극적 히로인에 슬래셔물 빌런 연기까지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두 번의 롱테이크 연기가 나오는데 첫번째도 대단했지만 두번째는 정말 보는 입장에서 배우가 대단하기도 하고 보다가 내가 민망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도 모르겠고 ㅋㅋㅋ
대충 이거저거 검색해보니 X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있고 펄이 아예 할머니로 나오기 때문에 다행히 이걸 미리봐도 그렇게까지 감상에 지장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고 하는군요. X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맥신'도 이미 제작이 다 끝나서 개봉만 남았다고 하는데 제발 국내 수입사에서 힘좀 내주길 바랍니다.
2023.07.08 16:00
제작 비화 재밌네요. A24는 뭔가 매우 크게 성공한 광화문 씨네마 느낌이 있어요. ㅋㅋ 광화문 씨네마가 미쿡에서 탄생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암튼 이 분들은 정말 아무 소식 없는 거 보면 망한 거겠죠(...)
본인이 생각해 낸 이야기라 그런 걸까요. 그동안 미아 고스가 연기를 못한단 생각은 안 해봤어도 이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은 놀랍더라구요. 외모부터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림은 물론이고 연기도 대단. 특히 싸이코 기운 발동할 때의 우악스런 모습은 웃김과 동시에 무시무시해서 이 영화의 톤 그 자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단해요. ㅋㅋ
뭐 언젠간 '엑스'도 수입되긴 하겠죠. OTT나 iptv들 보면 정말 별의 별 영화들을 다 수입해다 늘어 놓는지라 아예 안 들어올 거란 걱정은 안 하는데요. 이렇게 프리퀄이자 후속작이 더 먼저 들어왔는데 본작이 기약 없는 상황 보면 정말 별 생각 없이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들여다 놓는구나... 싶어서 난감합니다. ㅋㅋㅋ
2023.07.08 17:37
자세한 사정이야 저도 모르지만, 영화들 간의 관계나 순서도 모르고 아무거나 가져온다고 욕을 먹기에는 한국 배급사가 조금 억울할 것도 같아서 굳이 말을 얹자면,
[엑스]와 [펄]의 배급사가 달라요. [엑스]는 A24에서 제작도 하고 배급도 했는데 [펄]은 유니버설에서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 배급권을 획득했거든요. 그리고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배급 영화는 한국에서는 해리슨 앤 컴퍼니라는 회사가 고정적으로 홈비디오 배급을 대행하고 있을 거예요. 말하자면 업무 협약을 맺은 고정 파트너가 있는 거죠. 반면 [엑스]는 한국의 배급사가 A24랑 계약부터 직접 해야 하고요. 상황이 이러니 만큼 다른 배급사들 입장에서는 '[펄]이 이미 유니버설/해리슨 앤 컴퍼니로 넘어갔는데 굳이 우리가 [엑스]를 배급해야 하나?' 싶을 테고, 해리슨 앤 컴퍼니는...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에게서 벗어나서 따로 배급 계약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 다루는 것만으로 벅차지 않을지. (바로 아래에서 반가워하셨던 [이블 데드 라이즈]가 워너브라더스 영화라서 해리슨 앤 컴퍼니 배급입니다.)
저는 [엑스]를 블루레이로 봤는데요, 괜찮기는 했지만 미국 공포 영화 팬들 사이에서 엄청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던 것치고는 그렇게까지 눈이 휘둥그레지는 영화는 아니었고, 특히 한국 시장에서 가령 조던 필이나 아리 애스터 영화처럼 어필할 수 있는(지적 허영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공포 영화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텍사스 사슬톱 학살] 같은 삭막한 깡촌을 배경으로 + 극장용 포르노의 황금기였던 70년대의 성 해방 풍조를 주제로 한 복고풍 + 슬래셔인데, 셋 다 한국에서는 문화적 맥락을 모르거나 인기가 없는 요소니까요. 미아 고스와 제니 오르테가가 저 장벽을 넘어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큼 인기 있는 배우도 아닐 테고요. 그러니까 극장용으로는 탈락, VOD로 볼 사람은 봐라,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배급해야 할 텐데... 그래도 이게 어쨌든 A24에서 배급한, 미국에서는 잘 나갔던 화제작이니까 가격이 그렇게 막 쌀 것 같지도 않단 말이죠. 그래서 한국 배급 시장에서는 계륵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제 짐작일 뿐이지만요.
8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는 속편 [맥신]이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보다 더 규모도 크고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영화인 것으로 밝혀지고, 그게 들어오면 [펄]도 이미 들어왔고 하니까 [엑스]까지 역주행하는 관객도 생기지 않겠냐는 마음에 어느 배급사에서 뒤늦게 수입한다... 는 시나리오 정도를 꿈꿔 봅니다.
2023.07.08 19:49
역시나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봅니다. ㅠ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흥행은 애초부터 무리일 작품이 가격도 싸지 않겠군요.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저렴한 영화들 여럿 수입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냥 매달 신작 vod 리스트 올라오는 거 보면서 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디 호러들이 와장창 올라오니 그 와중에 나름 화제작에 호평도 받은 작품은 왜 안 올라올까. 그리고 프리퀄은 왜 올라오는 걸까.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네요. 하하;
근데 타이 웨스트 이 양반이 그동안 만들었던 영화들 생각해보면 '맥신'도 한국에서 크게 흥행은 어렵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러다 '엑스'는 영영 안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좀 늦게라도 좋으니 언젠가 들어오기만 했으면 좋겠네요.
2023.07.08 22:01
역시 배급계약이라는 건 특히 국내, 해외 이런 걸로 복잡하게 꼬인 경우가 많네요. olidies님의 유용한 정보 댓글 덕분에 항상 많이 알아갑니다!
2023.07.08 19:29
하지만 안타깝게도 메이저 시상식에서는 외면을 받고 말았죠. 일부 영화매니아들과 평론가들은 아카데미가 이런 호러 장르물에서는 명연기가 나와도 꾸준히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 같더라구요.
하긴 대중적으로도 그렇게 화제였던 '유전'에서의 토니 콜렛도 지명이 안됐으니 그냥 소소하게 알려진 정도인 이번 작품이야 뭐...
2023.07.08 19:53
사실 캐릭터가 그렇게 상 받을만한 캐릭터까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 노미네이트라도 좀 시켜주지... 라는 맘이 드는 좋은 연기였는데요. 말씀대로 호러 장르 나와서 연기상 받기는 참 힘들죠. ㅋㅋ 그래도 열심히 이 장르 만드는 분들, 존경합니다!!!
오~ 이 영화가 vod로 올라왔군요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해서 개봉하나 싶었는데 vod로 직행했나 보네여 근데 X는 같이 수입안한건지 -_- 암튼 정보 감사합니다 영화 보고 다시 글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