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8 00:29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몬테크리스토 백작'(1845년)
어릴 때 축약본을 읽은 이후 가지고 있던 기억에는 모험과 액션의 이미지가 컸는데 이번에 보니 아주 막장 드라마 요소가 많았습니다. 에드몽 당테스가 14년 갇혀 있었고 10년을 준비 기간으로 보내므로 24년 세월이 흘러 44세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복수 대상자 세 사람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이니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활극의 비중이 크기 보다는 사회적, 가정적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들의 처세에 대한 세밀한 공격이 맞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원수들의 악업은 차곡차곡 쌓여 있고 복수는 그들이 품고 있던 악업의 칼에 그들 스스로 뒹구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복수자는 그 칼이 잘 드러나도록 계획하고 계산할 뿐 본인이 자기 칼로 찌르지는 않는 것이었어요. 잘못 기억하게 된 것은 어려서 본 축약본의 삽화 탓으로 돌립니다.
매우 자극적이고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으로 지하 감옥 옆 지기 신부의 존재가 그렇죠. 이분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이야기잖아요.
저는 읽고 나서 좀 엉뚱한 결론일지도 모르나 역시 개인이 혼자 잘나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합니다. 에드몽 당테스라는 황금의 마음의 소유자이며 아이큐 300짜리 두뇌의 소유자도 지하감옥 이웃 신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할 전개니까요. 신부로부터 얻은 지성과 재화와 생명에 비하면 에드몽 개인의 우수성은 별 거 아닙니다. 에드몽 개인은 그냥 괜찮은 도구일 뿐.
이 소설이 왜 그렇게나 인기였을까 새삼 일일이 짚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지옥에서 돌아와 정의를 구현하는 불패의 인간!!인데, 전체 분량 20퍼센트 안에 에드몽의 시련은 끝나며 나머지 80퍼센트 이상의 분량을 읽으면서 독자가 불안해 할 일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요리는 맛있게 완성될 것이고 과정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면 된달까요. 이게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복수자가 너무너무 강력하고 복수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이 천지를 모르고 있으면서 당하면 재미없기가 쉬운데 이걸 아기자기 잔가지 다 관리하면서 재미를 유지하니까요. 물론 위에 썼듯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신의 대리자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며 우주의 기운이 돕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재미나 의미를 찾으려 하면 번지수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아주 오랜만에, 잊어버리고 있던 어떤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청소년기에 자신에게 바라던 요구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되야겠다고 희망했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마음과 관련있는 더 어린 시기의 초창기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갈매기의 꿈'이 퍼뜩 생각나고요, 많이 있겠으나 '좁은 문' 같은 책도 그 계통이었던 것같습니다. 막연한 희망, 근거없는 자부심, 있다고 믿으면 생기게 되는 의지... 같은 것. 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부분을 읽으며 그런 기억이 났어요. 파리아 신부가 집에 있을 때 5천 권의 책 중 잘 고른 150권의 책을 삼 년 동안 되풀이 읽어 외울 정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두 사람이 형편없는 도구로 매일 조금씩 15개월동안 땅굴을 파서 완성하는 장면 등에서요. 오래 자신과 현실의 한계에 치이다 보니 전혀 눈길을 주지 않은 자신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것인데 이게 필요 없어진 것인가 여전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조모가 아이티 출신의 흑인이었다는 걸 읽었어요. 사진에서 조모의 영향이 보이네요. 조부, 부, 작가를 보면 뭔가 왕성한 활동력이 내력인 것같습니다. 작가의 경우 한 해에 애인을 다섯 명 두었을 때도 있었답니다. 세 명의 애인과 본인과 어머니 이렇게 다섯 곳의 집세를 지불하기도 했다네요. 결국 호화스런 생활 끝에 파산해서 채권자를 피해 벨기에, 러시아로 달아나야 했다고. 글도 많이 썼지만 청탁이 많아지자 남의 글을 베끼기도 많이 했고 일 벌이기를 좋아하고 연애와 사업으로 분주하셨던, 실제 삶을 보면 금욕적인 몬테크리스토 백작과는 거리가 먼 작가 되시겠습니다. 좀 뒷담화같이 되었으나 소설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2023.06.28 01:04
2023.06.28 09:42
실제 사건은 소설과 달리 많이 단출하더라고요. 더하기가 안 되네요.ㅎ 수정했습니다.
14년 감옥살이 우리 나이에(?) 돌아보면 엄청난 세월은 아니지만 스무 살부터 서른 중반까지라는 시기를 생각하면 한 사람 생애에서 참 분하긴 합니다. 지내보면 별거 있나 싶어도 못 지내본 입장에선 그 특정 시기가 매우 중요한 거 같아요.
재산은 섬에서 첨 발견할 때 어림해 보면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 의심이 좀 들었으나 그냥 천문학적이겠지, 그러고 봤습니다.
2023.06.28 02:16
글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교훈도 있네요. 저는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이걸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의 러시아판과 프랑스판을 보았어요.
감이 잡히시나요? :) 언젠가부터 난독증이 생겨서 이렇게라도 '1차원적 문화 체험'을 해야해요. 개인적으로는 아들(소) 뒤마 원작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춘희)를 좋아해요.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보면서 울던 그 작품이죠.
2023.06.28 09:52
기본 세 집안 인물들에 더해 다른 인물도 많고 내용이 길고 복잡해서 2차 창작의 경우 정리를 많이 해야할 거 같아요. 저는 뮤지컬을 그닥 안 좋아해서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축소, 변형이 많이 되었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가 러시아 사교계 생활도 하고 거기서 작품 활동도 좀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러시아 배경도 많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는 어쩌면 더 어울리는 나라가 아닌가 싶기도..ㅎ '춘희'도 어릴 때 읽은 소설이네요. 이것도 아마 축약본인 거 같은데.
2023.06.28 09:31
전 이 작품이 축약본과 원본이 완전히 다르다는걸 깨닿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의 원본을 한참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 번안이 있다는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고등학생 때였나, 중학교 말이었나 기억은 안 나는데. 제목이 이렇게 어려운(?) 이름은 아니고 암굴왕이었던가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범죄도시] 시리즈나, [더 글로리], [모범택시] 등이 크게 흥행하는걸 봐서는 복수극에 대한 갈망이 상당히 끓어오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하긴 주말 혹은 일일 드라마에서 복수가 빠지는 일은 없었겠죠.) 작가의 후일담을 써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3.06.28 10:05
이름이 길고 어렵다해서 어린이, 청소년 대상으로 '암굴왕'으로 바꾸고 분량도 줄이고 내용도 변형하고...그렇게 나왔나 봅니다. 저는 이번에 읽으면서 처음 그리스 여자 하이데의 존재를 알았어요. 메르세데스랑 그런 결말이 되는 걸 모르고 있었네요. 많은 복수극에 영향을 준 소설이라 숙제의 느낌으로 읽는데 길이가 길어서 물리적으로 힘들긴 하더라고요.
대리만족 중에 복수극만한 게 없을 것 같아요. 작가는 행적만 보면 이 소설의 몬테크리스토 아니고 오히려 원수들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파산과 도피라니...그래서 좀 웃겼어요.
2023.06.28 10:16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 같은 아버지 뒤마의 활극 소설은 흥미진진한 재미로 후딱 읽었으나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네요.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베니스 축제의 화려한 묘사나 (젊은 청년과 상대방 일행이 축제 기간 중 서로의 의상과 소품을 모방해서 입으며 유혹하는) 본 줄거리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오스만 파샤의 딸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2023.06.28 11:23
저는 복수 이전 지하감옥 부분도 재밌고 탈옥 후에 잘 만든 배를 사며 돈을 쓰는 부분에 쾌감이 있더군요. 얼마를 부르던지 지불할 능력이 되어 바로 배를 사는 것에서 대리만족했나 봅니다. 배 사고 싶네요.ㅎㅎ 코르시카 출신 집사인 베르투치오의 과거 이야기들- 복수하려다 생긴 일, 여관에서 목격한 거 등 재밌었어요.
2023.06.28 15:10
몽테크리스토 섬에서 발견한 보물의 가치가 1300~1400만 프랑 정도라 했고 나중에 백작의 재산은 1억 프랑이라고 했으니 그 차액은 에드몽 당테스가 밀수를 하든지 해서 벌어들인 것이겠죠
복수가 너무 수월하게 이루어지니까 내가 에드몽 당테스라면 허탈했을 거 같습니다. 이럴 거라면 뭐하러 그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키웠나 싶어서 말이죠. 사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백작의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 장면은 빌포르의 딸을 구해낸 거 하나뿐이죠.
2023.06.28 17:43
하긴 10년 동안 복수 준비도 하고 돈도 불렸을 거 같습니다.
함정에 굴러떨어지도록 잘 계산을 했고 집사와 하이데 경우를 보면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오래 준비했던 것인데 그에 반해 저는 빌포르의 딸 경우엔 너무 초능력을 발휘하는 거 같아 마지막에 연인을 만나게 하는 장면에서 좀 뜨악했습니다.
일단 실제 사건 배경이고.../ 감옥행 19세, 감옥 생활 14년 탈출 약 34세, 10년 준비..해서 백작으로 나타난 건 44세, 45세쯤이죠. / 어릴때는 14년 감옥살이...입이 딱 벌어졌는데 나이먹고 보니 세월이 별게 아니네요. 34세인데 보물 약 1억달러 어치라..(소설 속에서 간혹 재산이 1억 프랑이라고도 하고, 대강 달러로 바꿔도 맞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