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9 17:58
야쿠쇼 코지 배우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기념으로 '큐어'를 봤습니다.
ㅎㅎ 아니고 사실은 왓챠에 며칠 전에 올라와 있길래 듀게에서 예전부터 들어온 영화이자 '스파이의 아내'로 관심 감독이 되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영화라 보았습니다.
보고 나서 오 맞다 배우님이 이번에 상도 받았다, 라는 것이 생각났고요.
이 영화가 1997년작이군요. 그런데 야쿠쇼 코지 배우 칸에서 찍힌 사진을 보니 그렇게 변한 게 없네요. 26년 세월이 흘렀고 1956년 생이신 걸 생각하면 별로 안 늙으신 듯.
'스파이의 아내'도 부부의 일상과 신뢰, 배신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큐어'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외부의 풍경이 차단된 버스 안의 인물들을 잡은 장면도 오래 전부터 기요시 감독이 좋아해 온 장치인가 싶었습니다. '큐어'에서는 두 번 나오더군요. 한 번은 아내와 함께, 한 번은 혼자. 창밖은 안개인지 연기인지가 부옇게 흘러가서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마치 천국행(아니 지옥행) 버스 같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겐 20세기 전후 시기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는 걸까 큰 근거 없는 저혼자 망상이지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스파이의 아내'에서 집과 소품이나 오래된 영화, '큐어'에서 예전 영상과 축음기의 사용 같은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은판 위의 여인'에서도 옛날 식으로 사진찍기를 고집하고 19세기 복장의 모델을 세우고 그랬거든요. 그냥 뭐 품위있는 물건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감정을 드러내고 해소하기 보다 눌러 감추면서 다루는 걸 칭찬하는 사회 속에서 속병드는 내용인가 싶었어요. 뭐 '사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그러하죠. 각자 해결하기를 바라고 조용히 지나가도록 참는 상황이 행복이라고 우기니 종교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일종의 사악한 종교에 대한 얘긴가 싶기도 했습니다. 보는 동안은 긴장이 되었지만 시청각적 깜짝 놀래키기 수법을 쓰는 영화는 아니었고 저같이 놀라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도 볼만했습니다. 마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골목길 저녁인지 새벽인지 그 분위기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이 좋으니 영화 전체 분위기가 다 좋아지는.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사악한 길로 빠지기 쉬운 것일까요.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 낯선 것의 불편함은 누가 제공한 것만 취해왔을 뿐, 자기 것이 없다는 의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무슨 선문답 같은 막막한 소리인지... ㅎㅎ 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이 소속된 곳의 유니폼은 바바리인가 했어요.
2023.05.29 19:40
2023.05.29 20:34
찾아보니 사린가스 테러가 95년이었네요. 영화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겠습니다. 픽션이 픽션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상당히 현실적인 공포였겠어요. 제목도 그래서 바뀌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2023.05.29 22:36
이 영화가 개봉하기 10년 전쯤이긴 하지만 일본의 녹십자 혈액응고제 에이즈 감염 사건도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혈우병 환자들한테 팔았던 혈액응고제에 HIV 감염자의 피가 섞여있어서 이 혈액응고제를 먹고 2000명쯤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그런데 일본 녹십자와 후생성은 이걸 덮으려고만 했다가 추후에 폭로되었다고 합니다. 세기말 감성일 수도 있겠으나 일본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박힌 사건이라서 이 영화의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하는 그 내용은 일본의 사회적 불안이 이 영화 속에 녹아있는 것이라고도 하더군요... 말씀하신 옴진리교 사건도 정말 충격적이었고요...
2023.05.30 09:16
그런 일도 있었군요. 불미스런 것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 생기는 증상들이 있는 거 같고 일본의 모습은 우리 나라가 뒤잇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생각하게 됩니다.
2023.05.29 22:38
참으로 무서운 영화죠. 그냥 놀래키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해 음산한 불안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남기는 상처는 독특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3.05.30 10:13
사이비 종교 문제도 모르는 이에 대한 공격도 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고 이제 우리 일이 되었어요.
2023.05.29 23:52
복고 선호는 전지구적 인기 컨셉이지만 일본 사람들의 옛 것 선호는 좀 유별난 부분이 있죠. ㅋㅋ
이 영화의 빌런님 캐릭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같은 만화들이 있는데요. 둘 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이비 종교스런 부분도 있고, 두 만화의 빌런들이 나쁜 짓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또 둘 다 추억팔이에 진심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그렇습니다.
전 기요시 영감님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닌 평온한 풍경'에서 불길하고 불쾌한 느낌을 뽑아내는 솜씨가 참 놀랍더라구요. 이 영화에 이어서 3연작 소리 듣는 '회로'와 '절규'도 다 비슷한 느낌이고 제가 아는 바로는 이 분의 마지막 호러인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도 그랬구요. 모두 다 기본적으로 잘 만든 호러에다가 일본 사회 특유의 어떤 분위기 같은 걸 잘 잡아낸 작품들이니 시간 나면 보세요... 라고 적다 생각해 보니 이 중에서 vod 이용 가능한 건 '크리피' 뿐이군요. ㅠㅜ
2023.05.30 09:33
'마스터 키튼'은 읽고 좋아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언급하신 두 만화를 맛을 봤는데 이 둘은 저랑 안 맞았어요.
'크리피'는 봤는데 그 나라의 독특한 분위기, 현실 속의 기괴하고 불길한 분위기가 잘 나타난 범죄영화였죠?
사이비 종교의 세계는 인간의 온갖 모순과 나약을 알기 위해 연구해 볼만한 것 같아요. 저는 가능한 그 방법으론 근처에 가고 싶지도 않지만요...ㅎ
2023.05.30 09:52
저도 그 작가 만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마스터 키튼'입니다. 그거랑 '야와라' 둘이 걸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야와라'는 아마 취향에 안 맞으실 듯. ㅋㅋ
그 '크리피'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지만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사건 하나랑 비슷한 점이 많이 떠오르는데 참 멋지게도 실제 사건이 영화 내용보다 훨씬 초현실적 막장이었죠. '큐어'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 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을 소재로 호러를 만들던 사람이고 그런 맥락에서 '스파이의 아내'도 얼핏 보기엔 전혀 달라 보여도 비슷한 구석이 느껴지고 그랬습니다. 막판 장면들 보면 그냥 호러가 따로 없었죠 '스파이의 아내'도. ㅋㅋ
2023.05.30 10:01
기요시 감독이 드디어 호러 요소가 전혀 없는 정극 가족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도쿄 소나타'도 몇몇 장면들만 보면 영락없이 호러라는 게 너무 재밌어요. 특히 야쿠쇼 코지 나오는 씬들이라던가 ㅋ
2023.05.30 11:20
옛날에 '마스터 키튼' 읽고 재밌어서 주변에 영업도 많이 했었던 생각이 납니다. 제가 만화를 별로 안 보긴 했으나 본 중에는 최상급이었어요.
볼 때도 그렇지만 되새김질 해볼수록 싸늘하고 소름끼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일종의 사악한 종교 메타포가 맞을 수도 있는 것이 90년대 일본의 그 악명높은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으로 이래저래 뒤숭숭한 일본사회 분위기도 많이 반영됐다고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