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7 23:29
- 2005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9분. 스포일러는 없구요. 웨이브로 봤는데 넷플릭스에도 있었네요. 넷플릭스로 볼 걸... ㅠㅜ
(이 포스터, 진심입니까. 최선이었나요.)
-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우직하게 설정을 읊어대는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인류는 태양계 자원을 다 끌어다 쓰고 더 넓은 우주로 진출했구요. 새로운 태양계를 찾았고 거기에 인간이 살만한 별들을 신나게 테라포밍해서 살고 있대요. 그 와중에 전쟁도 있고 뭐 그랬는데 결국 '연방'인지 '연합'인지가 짱 먹으면서 평화를 찾았구요. 근데 몇 년 전부터 '리버스'라고 불리는 식인종 집단이 나타나서 아무 데나 쳐들어가서 사람들 죽이고 잡아 먹고 난리를 친다는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세레니티'라는 우주선을 타고 무법자 놀이를 하며 먹고 사는 우주 해적 비슷한 집단입니다. 대체로 연방 군인 출신자들이 많은데. 저번의 그 전쟁에서 좀 복잡한 드라마가 있었던 모양인지 연방을 등지고 이러고 살고 있네요. 근데 거기에 연방이 키운 초능력 인간 병기 '리버'와 그의 오빠가 합류하고. 리버를 노리는 연방의 손길이 세레니티호에 닿으면서 주인공들은 투닥투닥 쌈박질 자중지란을 겪게 되는데... 대체 요 여자애(=리버)는 뭐가 대단하길래 10대 여자애 하나 잡겠다고 온 우주가 이 난리인 걸까요. 그리고 우리 엉망진창 세레니티호의 운명은!!?
(우리의 엉망진창 정신산란 오합지졸 군단! 물론 알고 보면 다 능력자들입니다만. ㅋㅋ)
- 아무 생각 없이 걍, 설정에 끌려서 본 영화입니다만. 오프닝 크레딧에 뜨는 이 분의 이름을 보고 허걱. 하지 않았겠습니까.
'조스 웨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걸 어쩌나. 그냥 봐야 하나 스킵해야 하나. 했지만 전 대체로 작품과 인간을 그렇게 밀착해서 보는 편은 아니라 기왕 튼 김에 봐 버렸어요.
근데 보다 보니 이게 또 이상합니다. 뭔 놈의 영화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몽땅 다 뭔지 모를 배경사가 있어요. 분명히 그런 느낌을 깔고 전개되는데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시리즈가 한참 진행된 영화의 최신편을 보는 기분인데 전 그 시리즈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죠. 몰라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긴 했는데 뭔가 찜찜한? 그래서 다 보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더라구요. 이미 영화보다 3년 전에 먼저 나온 '파이어 플라이'라는 티비 시리즈 한 시즌이 있었고, 바로 캔슬되어 사라졌지만 그래도 열혈 팬들이 있어서 그 이야기의 마무리 격으로 나온 게 바로 이 영화였어요.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이미 10년 전에 듀게에 올라온 글들도 있고 그렇더군요. 읽어보니 그 때도 읽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어차피 한국에 수입도 안 된 드라마라길래 관심 끊었는데 그걸(정확히는 그 관련 영화를) 이제사 보게 되네요. ㅋㅋㅋ
아. 암튼 중요한 건 지금도 역시 그 드라마를 정식으로 볼 루트는 없다는 겁니다. 이 영화만 감상 가능해요.
그래서 이 영화에는 이렇게 두 가지 장벽이 붙습니다. 업계에서 퇴출된 범죄자 아저씨 각본, 감독 작품에다가 합법적으로 구해 볼 길이 없는 망한 티비 시리즈의 극장판이라는 거(...)
(게다가 이런 분위기의 미쿡풍 스페이스 오페라 안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볼 생각이 안 들겠죠.)
- 이미 십여년 전에 다 끝난 얘기겠지만 한 10여분 보고 있노라면 되게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카우보이 비밥'이요.
스페이스 오페라에다가 서부극 분위기 결합한 거야 '스타워즈'가 당연히 우선이고 이후에도 많겠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그보단 '카우보이 비밥'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세레니티'호와 그 구성원들은 그냥 딱 봐도 조금 스타워즈스럽게 튜닝이 된 비밥호와 그 승무원들이구요. 얘들이 돌아다니며 저지르는 일들도 비슷해요. 뭐 현상금 사냥꾼과 그냥 범죄자들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어차피 비밥호의 녀석들도 법 지키며 정의롭게 일하는 놈들은 아니었으니. ㅋㅋㅋ
덧붙여서 그냥 영화에 일본 아니메들 영향이 그득합니다. 최종 병기 그녀(...)의 설정이나 활약부터가 그렇고. 별 이유 없이 일본 글자가 엄청 많이 나오구요 (농담 아니라 알파벳보다 많이 보입니다. ㅋㅋㅋ) 전반적으로 캐릭터들 성격이나 행동, 장면 연출 같은 것도 미국 영화보단 일본 만화스러울 때가 많아요.
(뭐 굳이 이런 식으로 덕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지만... ㅋㅋㅋ)
근데 그게 아주 그럴싸합니다. 미안한 비교지만 '승리호'의 주인공들에 비해 요 세레니티의 등장인물들은 훨씬 구경하기 재밌는 놈들이거든요. 평상시엔 오합지졸 분위기로 투닥거리다가 상황이 급박해지면 뭉치고, 투닥거림 속에 숨겨져 있던 의리와 정의감이 살아나고. 이런 만화책 캐릭터 같은 놈들이지만 어쨌든 그게 재미나게 잘 살려져 있습니다. 그냥 얘들끼리 쌈박질하고 서로 욕하는 것만 보고 있어도 재밌어요. 액션 연출이야 뭐 비교하기 미안하구요.
(하지만 가난하게 만들다 보니 cg는 대략 이 모양 이 꼴입니다. ㅋㅋㅋ 양해 부탁드립니...)
- 메인 스토리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뻔해요. 아주 뻔하고 세계관은 그다지 믿을 수 없는데 동시에 또 되게 흔한 느낌이구요. 어찌보면 클리셰 덩어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애초에 조스 웨던의 특기가 이런 클리셰 범벅에서 재미 뽑아내기 아니었겠습니까. 흔한 말로 '왕도'를 가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비틀고, 웃기고, 아주 살짝 의표를 찌르면서 신나게 흘러갑니다. 심지어 이렇게 드립 위주로 가볍게 흘러가는 영화들이 대부분 재미 없어지는 클라이막스의 진지한 전개까지도 괜찮았습니다. 시리즈를 안 봐서 캐릭터들에게 깊이 이입한 것도 아닌데 괜찮더라구요. 허허.
제가 원래 양키 센스 스페이스 오페라들을 그다지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영화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아 또 이런 장면...'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시작부터 끝까지 대부분 재밌었어요. 맨날 80~90분짜리 소품 호러들만 보는지라 두 시간이면 나름 긴 영화인데 지루할 틈이 없더라구요. 이래서 조스 웨던이 잘 나갔던 거구나... 근데 왜 인생 그렇게 살았니.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잘(?) 봤습니다.
(캐릭터들을 잘 뽑았습니다. 특히 요 빌런 아저씨가 좋더군요. 배우는 보시다시피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에서 또 빌런으로 수고하고 계신 그 분.)
- 그리고 뭐냐 그. 앞서 말 했듯이 이게 본 적 없는 시리즈의 최종화인데요. 그러니 100% 즐길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볼 수 있도록 조율이 잘 되어 있어요. 그냥 봐도 재밌고, 알고 보면 몇 배로 재밌도록. 각본을 참 잘 써놨더군요.
개인적으론 같은 조스 웨던이 만든 '어벤저스'는 물론이고 소재나 분위기상으로 닮은 구석이 많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보다도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봤어요. 뭐가 더 우월하다기 보단 그냥 취향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암튼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조스 웨던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었네요.
(갑작스런 사라 폴슨 강림!! 아마도 특별 출연이었나봐요. 아주 짧게 나옵니다.)
- 뭐 단점 꼬집자면 위에서 얘기했던 부분들이 사실 거의 다 단점이죠.
어쨌든 시리즈의 최종화니까 100% 즐길 수 없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는 거.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매우 티가 나는 cg 장면들도 많고요. 양키식 스페이스 오페라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게 맘에 안 드는 분들이라면 그냥 재미 없게 보실 확률도 높고. 또 아무래도 가볍게 흐르는 이야기이다 보니까 대충대충 쉽게 넘어가는 전개도 많습니다. 그에 따른 개연성 문제도 정색하고 바라보면 와장창 나오겠죠.
하지만 그냥 '가볍게 즐기는 일본 아니메풍 스페이스 오페라' 정도로 기대치를 잡고 본다면 아주 훌륭합니다. 비밥과 스파이크가 안 나오는 최고의 비밥 영화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캐릭터들이 이 영화 속 캐릭터들만큼만 이입할만한 양반들이었다면 내가 그 영화를 훨씬 더 좋아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만화 같은 영화 좋아하신다면 또 추천할만 하겠구요. 대략 이런 식의 장면 연출이 거슬리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으신다면 괜찮을 겁니다.
- 그래서 결론은 뭐...
조스 웨던의 이름이 커다랗게 박혀 있을지라도 재밌는 SF 모험 영화라면 한 번 보고 싶다. 라는 분들은 보세요. 개인적으론 비슷한 성격으로 나온 스타워즈나 마블 영화들보다 더 재밌게 봤습니다.
저예산 티가 나는 장면들이 많고 좀 술렁술렁 쉽게 넘어가는 영화인 데다가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 역할이라 세계관도 거칠게 느껴지고... 하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저예산 안에서 잘 뽑힌 액션과 쉽게 정 줄 수 있도록 잘 뽑힌 캐릭터들, 그리고 전형적이지만 전형적으로 잘 뽑은 스토리 때문에 그냥 재밌습니다. 창작자의 능력과 인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지만요. ㅋㅋ
(이 영화 잘 되면 다음 시즌도 나올지도 몰라!!! 라는 기대를 품고들 열심히 하시지 않았을까 싶지만...)
2023.05.18 09:57
2023.05.18 15:26
맞아요 저도 막 우주 전체의 운명을 걸고 고귀한 핏줄 출동하고 그런 건 별로인데 이런 소소한(?) 이야기는 재밌더라구요.
아, 중국어가 공용어인 세계관이군요. 나름 설득력 있기도 하구요? 근데 말씀드린대로 영화 속 전자 기기들 UI나 배경에 등장하는 영상물들 같은 데 보면 한자보다 가타가나, 일본식 그림체가 더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설정은 모르고 걍 일본산 작품들에 대한 팬심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죠.
어벤져스 인트로 웃겨요. 역시 덕후들의 능력과 정성이란 끝이 없군요. ㅋㅋㅋㅋ
2023.05.18 10:37
이번 가오갤에서 네이선 필리언 얼굴을 보고 몹시 반가웠더랬죠.
조스 웨던, 하니 디즈니플러스에 최근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가 올라왔습니다! (앤젤도 있음)
2023.05.18 16:17
이 분이 가오갤에 나오셨나? 하고 검색해보니... ㅋㅋㅋㅋㅋㅋ 전 그 전에 다른 작품에서 본 적이 있는 분인데 그땐 캐릭터가 좀 비호감이었거든요. 여기선 매력적이고 좋더라구요.
버피... 라고 하면 옛날 듀나님의 장기 연재 시리즈 소감글이 생각나요. 처음 두어 시즌까진 참 즐거워하셨는데 나중엔, 그리고 막판엔 매 회 소감이 거의 분노와 저주로 덮여 있었던... 하하.
2023.05.18 11:37
조스 웨던이 버피로 한창 주가를 올린 후에 약간 애매하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원작 시리즈를 안봐도 어느정도 즐길 수 있게 잘 만들어놨다니 역시 재능은 있나보네요. 어벤져스로 팍 뜨고나서 이렇게 또 팍 가라앉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저스티스 리그 재촬영 맡았다가 극장판 말아먹고 뒤이어 폭로까지 터져서 둘 중 하나만 있어도 타격이 큰데 다시 업계에서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연대기에서 터미네이터 역할로 나왔던 저 여배우(찾아보니 서머 글라우)가 눈에 익네요.
2023.05.18 16:38
뭐 버피 시리즈랑 어벤져스까지만 해도 충분한 업적이긴 합니다만. 이후에 폭로 터진 게 참... ㅋㅋㅋ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재능은 참 차고도 넘쳤던 사람인 것 같아요. 쩝.
저 배우님은 액션 특화 배우셨나봐요. 이거랑 사라 코너 말고도 대체로 액션물에서 히로인을 많이 맡으셨더라구요.
2023.05.18 19:23
파이어 플라이 정말 좋아하던 시리즈였어요. 말씀대로 카우보이 비밥에 웨스턴이 좀 강조된 신나는 SF활극이었지요.
프릭스 앤 긱스와 더불어서 캔슬이 정말 안타까운 시리즈였는데 영화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크루 전체가 다 마음에 들었지만 저는 공순이로 나온 주얼 스테이트를 제일 좋아했어요.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커리어가 좀 안풀린듯해서 참 아쉽지요.
2023.05.18 20:11
뭐라고 뭐라고 쓰다가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이미 10년 전에 듀게에 올라온 글들도 있고 그렇더군요."라고 쓰셨기에 혹시나 하고 검색해 봤더니 역시나 그때도 제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래서 생략하는 걸로. 아무튼 저는 스카이워커 사가 유의 은하계의 운명과 패권을 두고 어쩌고 하는 거대 서사에는 예나 지금이나 진력이 나는지라, 이런 '작은' 우주 활극의 존재가 참 소중합니다.
사실 본 지 오래 돼서 구체적인 부분은 잘 생각이 안 납니다만, 일본 글자... 그러니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많이 나왔던가요? 원래 [파이어플라이] 세계관에서는 영어와 중국어가 공용어거든요. 그래서 한자는 많이 나오고 아예 영어 대사 사이사이에 중국어가 들어가는 대목도 꽤 있었는데, 일본어가 나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카우보이 비밥]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요.
작품의 정체성을 직빵으로 전해 주는 [파이어플라이] 오프닝 올리고 갑니다. Take my love, take my land / Take me where I cannot stand~♪ / I don't care, I'm still free /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그리고 당연히 이런 것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