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1 20:54
-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92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이 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포스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동민씨 화이팅!!! ㅋㅋㅋ)
- 주인공 찬우씨는 5년째 경찰 시험 준비 중입니다. 라고 하면 뭔가 한국 영화의 이런 캐릭터들에 붙어 다니는 구질구질한 디테일들이 좌라락 떠오르실 텐데 그게 뭐가 됐든 다 맞으니 설명은 여기까지.
당장 내일까지 다섯 번째 도전 응시를 해야 하는데 수중에 단돈 만원이 없어서 접수를 못하다가, 니가 나와서 같이 술 먹어야만 돈 빌려 준다는 웬수 같은 친구에게 끌려나가서 필름이 끊기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머나. 오피스텔 자기 집이 아니라 그 옆집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자기 몸은 상처 투성이인데 방바닥엔 웬 남자가 피를 철철 쏟은 채로 뻗어 있어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리고 난 이제부터 뭘 어떡해야 하는가...
(그냥 엄마한테 만원만 보내 달랄 것이지 괜한 자존심 부렸다가...)
- '광화문 시네마'를 기억하십니까. 전 아주 좋아했었는데 이 분들 이제 다 산산이 흩어졌는지 마지막 작품이었던 '소공녀'가 벌써 5년 전 영화입니다.
아니 물론 요 '옆집사람'은 광화문시네마와는 관계가 없어요. 굳이 갖다 붙이자면 감독이 한예종 출신이더라는 것 정도? ㅋㅋ 영화의 톤도 특별히 그쪽과 닮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요즘 청춘'을 주인공 삼아 저예산으로 알찬 장르물을 뽑아낸 솜씨를 보고 있노라니 자꾸만 광화문 시네마 생각이 나더라구요. 오겡끼데스까~~
(이렇게 됩니다. ㅋㅋㅋ 엄마 말을 잘 듣자. 주사가 있으면 술은 끊자. 라는 교훈을 담은 건전한 영화!)
-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참 모범적이구나' 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뭐 시작부터 끝까지 특별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저 도입부 설정에서 떠올릴만한 장면, 전개들이 그냥 그대로 나옵니다. 등장 인물들도 다 어느 우주의 클리셰 사전에서 끌어내다 세워 놓은 듯 익숙하구요. 막판에 반전으로 튀어나오는 전개도 사실 대부분 처음부터 짐작할만한 거였죠.
돈 없는 인디 영화가, 그것도 장르물이면서 이렇게 특별한 아이디어나 임팩트 있게 참신한 설정 하나 없이 어쩔꼬... 싶은데 그게 재밌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재밌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재밌어요. 왜냐면... 그냥 '잘' 만들었으니까요. 허허.
(사실 이걸 미스테리로 놓고 보면 사건의 진상은 참 하찮은데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재밌게 보도록 관객들을 끌고 가는 솜씨가 상당합니다.)
- 그러니까 도입부에선 영화 속 공무원 시험 장수생들 캐릭터 묘사의 클리셰들이 펼쳐집니다. 근데 그게 웃겨요. 디테일이 좋고 배우도 잘 해서요. 시체를 발견한 후 한동안은 모자란 아마추어 탐정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 하는 슬랩스틱이 펼쳐집니다. 어쨌든 웃겨요. 디테일이 좋고 배우도 잘 해서요. 그러다 같은 방에 머물게 되는 누군가(?)가 등장한 후로는 이 놈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미스테리와 함께 스릴러 분위기에 발동을 거는데요. 그동안 이어 온 코믹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긴장감을 살려냅니다. 역시 각본과 연출의 센스가 좋고 배우들이 잘 합니다... 하하. 그만 해야겠네요.
(과연 이 겁나 예쁜 옆집 처자는 애처로운 피해자이자 찬우의 로맨스 상대일지)
(아님 여기서 제일 나쁜 사람일지. 뻔한 듯 하면서도 유머와 스릴러를 오가며 사람들 헷갈리게 만드는 솜씨도 좋았구요.)
- 모두에게 익숙한 재료를 갖고 익숙한 방식으로 조리를 해도 그 재료가 좋고 요리사의 솜씨가 좋다면 충분히 맛있는 게 나온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참으로 모범적인 코믹 스릴러였습니다. 굳이 '인디인데 잘 만들었네!' 같은 설명 안 붙이고 그냥 '잘 만들었네!'라고 해주고픈 영화에요.
유머 감각도 좋고 스릴러로서의 리듬감도 준수하고 둘이 섞이는 부분들도 참 솜씨 좋게 잘 엮어 놨습니다. 근래의 시사적인(?) 요소들을 이야기 속에 이것저것 좍좍 깔아가며 웃기기도 하고 떡밥 삼기도 하는 센스도 좋았고. 또 몇 안 나오는 배우들은 다 천연덕스럽게 잘 해주고요. '난 소품은 그냥 다 별로야'라는 취향이 아니시라면 누구든 즐겁게 보실만한 수작이었어요.
영화 스타일상 뭐 더 주절주절 떠들 게 없어서 글은 짧습니다만. ㅋㅋ 최근 나온 한국 극장 & OTT 장르물들이 아쉬우셨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시면서 다시 꿈과 희망을 키워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장르물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능!!!
(많은 시청 부탁... 은 아니고 그냥 아주 가볍게 권유해 드립니다!!! 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찬우의 옆집은 평소에 잦은 소음 제조로 입주민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던 곳이었고. 집 주인은 젊은 여성인데 맨날 남자를 불러 들여다가 쌈박질을 해대서 찬우도 여러 번 항의를 했었거든요. 그러니 거기 뻗어 있는 건 세입자의 남자 친구일 것이고, 아마도 세입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어쨌든 그 시체 옆에서 깨어난 건 찬우인지라 방안을 샅샅이 뒤져가며, 그리고 필름 끊겨 날아간 기억들을 재구성해가며 탐정 놀이를 빡세게 해 봅니다만 딱히 쓸만한 정보는 떠오르질 않구요.
그러다 결국 집에 돌아온 세입자 여성과 마주치는데, 아우씨 진짜 예쁩니다. (주인공 대사를 흉내내 본 겁니다. ㅋㅋ) 너무 예뻐서 찬우씨는 정신줄을 놓고 여자가 하는 말을 다 믿어주기 시작하는데, 이 분의 주장에 따르면 자긴 로또에 맞아서 갑부가 되었고 그걸 안 남자 친구가 돈 내놓으라고 협박 하며 폭력을 행사해대서 저항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대요. 그리고 자긴 감옥 갈 생각은 없으니 시체 처리하고 도망치는 것 좀 도와주면 돈 삼천을 주겠답니다. 그러면서 선금으로 천만원을 바로 뙇!!!
그래서 어찌저찌 시체 처리에 동참하려는 찰나에 시체가 일어나서 날뛰기 시작합니다. 그냥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하루 종일 뻗어 있었던 모양이구요. 본격적인 난장판 모드가 되어 서로 죽이려고 달려들고 난리를 치다가... 다시 그 시체 아닌 남자가 뻗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마지막으로 찬우에게 제안을 해요. 내가 아까 니 사진 좀 찍어놨는데 나 안 도와주면 이거 경찰에게 바로 전송할 거다. 근데 도와주면 비트코인 가득한 내 계좌 키를 usb째로 넘겨주마! 그 대가로 니가 저 놈을 죽여라!!! 부들부들 떨던 찬우가 결국 시체남을 진짜 시체로 만들기로 결심하는 순간, 계속되는 소음 때문에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문을 두드려대고. 그러다 시체남은 또 정신 차리고 일어나고. 난장 of the 난장 속에서 어쩌다 그 시체남과 여자는 둘 다 사망. 찬우는 부들부들 떨며 증거 인멸하고 바깥 창을 통해 자기 방으로 귀환하고 데드 라인을 몇 십초 남겨 놓고 경찰 시험 응시에 성공합니다. ㅋㅋ
사건은 결국 남녀의 치정극으로 마무리되고. 혼자 밥 먹던 찬우가 문득 여자가 줬던 usb가 생각나서 노트북에 꽂아보는데. 검은 크레딧 화면이 흐르는 가운데 '둥!' 하는 윈도우 에러 소리. 그리고 찬우의 맥빠진 '엥?' 소리와 함께 끝입니다.
++ 일부러 끝까지 그 남녀의 사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주진 않습니다만. 대략의 정황과 무심하게 흘러가던 사소한 대사, 단어들로 미루어 볼 때 이 여자분은 아마도 술장사 업계에 계시던 분인 모양이고. 시체남은 이 여자가 낚은 갑부 젊은이였구요. 근데 여자가 남자를 뒷통수 치고 돈만 빼먹고 튀려던 찰나에 들통이 나서 몸싸움을 하다가 이렇게 상황이 흘러간 듯 합니다. 로또니 가상 화폐니 하는 건 다 여자가 그때 그때 지어낸 구라였던 걸로.
2023.04.11 21:26
2023.04.12 00:04
덕택에 원래는 미뤄두려고 했던 영화,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ㅋㅋ
진짜 연기 재밌게 찰지게 잘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이건 각본의 영역이지만 괜히 욕설로 대사 도배하며 거친 캐릭터 흉내내지 않는 것도 좋았구요. 참 찌질한 캐릭터인데 어쩜 그리 정이 가던지... ㅋㅋㅋ
2023.04.11 21:28
2023.04.12 00:08
포스터 귀엽죠. ㅋㅋㅋ 누적 관객 4,778명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넷플릭스 덕에 입소문 타고 많은 분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감독님도 힘 내서 & 투자 받아서 차기작도 만들고!!
2023.04.12 00:59
이런 국내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글제목부터 그렇고 꽤나 강력히 추천하시는 것 같아서 일단 찜을 해놓겠습니다 ㅋㅋ 평론가들도 제법 호평이었네요. 최근 국내영화 중 재밌게 본 작품이 잘 없었는데 반갑습니다. 의미가 있거나(다음소희), 감성이 좋은(소울메이트) 작품들은 있었는데요.
2023.04.12 11:31
근데 정말 소소한 코믹 스릴러라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ㅋㅋ 그냥 이렇게 심플하면서 단단한 장르물이 (특히 한국 영화들 중에) 원체 드물어서 반가운 마음에 살짝 오버해봤습니다. 하하.
음하하하하핳ㅎㅎㅎㅎㅎㅎㅎㅎㅎ
즐겁게 감상하셨다니 너무 뿌듯합니드아...ㅎㅎㅎㅎㅎㅎㅎㅎ
오동민씨 연기 진짜 대박이었어요. 라임 맞추는 랩 따라 부르고 싶을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