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가는 것도 인연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집트 미라 전시회를 갔어야했지만 사람이 정말 너무 많았던 관계로 이미 구매했던 표를 포기하고 다른 전시회를 보러 갔다. 평소에 남서울 전시관을 가보고 싶다고 친구가 말하길래 어떤 전시회가 열리는지도 모르고 갔다.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렇게 접하게 되니 이 전시회는 더욱 더 우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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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김윤신 작가의 조각들이 전시되어있는 상태)


남서울 전시관은 건물 자체로도 방문할만한 곳이다. 벨기에 영사관을 개조했다는 이 건물은 외관부터 역사적 흔적이 느껴진다. 기존의 건물이 그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고 한번 재건축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라도 보존이 되어서 옛 건물의 형식을 후세에 전달하고 있는 게 다행스러웠다. 기둥 양식이나 벽돌의 색부터 현대 건물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부분들은 흥미로웠다. 한국에서 이렇게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 몇이나 있을지...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된 복도나 계단들에서도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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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의 연혁을 보면서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령이셔서 나이가 잘못 표기된 줄 알았다. 올해 88세가 되시는 작가님께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활발하게 판화와 조각들을 만들고 계셨다. 예술가의 장수는 한 사람 안에서 나오는 작품의 세계가 더 깊고 다양해진다는 의미에서도 축복할 일이다. 작가님이 직접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는 현장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조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작품의 만짊새뿐만 아니라 사람이 근육을 써서 세계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피지컬하다고 느꼈다. 작가의 육신과 함께 작품은 계속해서 갱신되고 재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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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멕시코에 체류하면서 오닉스를 가공해 만든 조각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조각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매우 선명한 형태와 문양이었다. 이 조각들은 겉면은 가공하기 전의 오닉스를 채취한 상태 그대로 두고 다른 면만 맨질맨질하게 세공해서 그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면은 우둘투둘한 돌덩이였지만 세공한 면은 그 돌의 내부를 이루는 원소들이나 이 돌이 만들어질 때의 용암 혹은 축적된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겉과 안을 다 보여준다는 것, 겉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내부에 숨겨져있다는 그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꼭 미추의 개념적 대비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보존의 대비로 더 다가왔다. 조금씩 풍화되어가는 겉면 안에는 태초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렇다고 겉면은 그냥 껍질로, 내부는 "진짜"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둘 다 본질이다. 다만 한 쪽이 감춰져있을 뿐이다. 이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환원한다면 과거에서 현재로 변했거나 변질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하나의 존재에 담겨있다는 뜻일 것이다. 시간은 양립한다. 과거는 기억이나 흔적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그 자체로 깃들어있다. 최초의 순간을 있는 그 자체로 담아놓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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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코끼리 같은 형태의 조각은 최초와 최초 사이의 현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적 개념들은 형태로 구분되어있다. 그리고 이 조각의 측면은 정면과 같은 형태로 최초와 최초 사이의 현재의 양식을 반복하고 있다. 어디서 봐도 해당 형태를 유지하는 이 조각품은 현재를 최초와 최초 사이로 인식하게끔 한다. 우주를 담은 것 같다는 김윤신 작가의 말처럼 이 조각은 양 옆으로 그 태초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현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한다. 우리의 현재는 그냥 그 순간일 뿐인가. 그것조차도 우주의 기원과 연결된 시간은 아닌가.


이 오닉스들은 분명히 그 자체의 덩어리였을텐데 작가의 세공을 받고나자 어떤 운동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갈라져나오려는 듯이, 혹은 자연에서 추상으로 변하려고 뒤틀리려는 듯이. 그것은 자연의 원초적인 모습을 탈피해 우주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처럼도 보인다. 마치 운석 한덩이가 우주공간 속에서 어떤 힘에 비해 계속해서 마찰되어 지금의 형태를 이룬 것처럼, 조각의 외부는 또 다른 힘을 상상케 만든다. 만약 이것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면, 이 형태는 어떤 힘과 의지로 만들어낸 결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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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가 나무를 가지고 만든 조각들도 같으면서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무라는 소재가 품은 나이테라는 문양과 그 겉과 속의 다름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았다. 나무 내부의 결과 겉에 거친 결이 각기 나타내는 이 이미지의 충돌은 자연스레 원래 나무의 거대한 몸통이 아니라 네모난 덩어리들이 스스로 솟아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원본의 이미지를 초월해 던지는 질문, 원래 둘이었던 것이 하나가 되고 하나였던 것이 둘이 된다는 이 질문에 다른 질문들을 꼬리처럼 이어갔다. 하나라는 개념은 우리의 착각이 아닌가. 양면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하나의 개인이라는 단위는 과연 정확한 것인가. 안과 밖, 한 덩어리와 두 덩어리라는 이 이분법을 통해서만 최초의 하나와 연결된 하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역설. 쪼개져야 하나로 합쳐짐이 보인다는 김윤신 작가의 이상한 깨달음.


하나라는 개념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단일함이라는 개념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둘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구분짓고 나눠놓고 싶어하는 어리석은 습성일지도 모른다. 조각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거나 다른지만을 보던 내 눈에 보다 깊은 질문을 던져준 김윤신 작가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가 계속해서 다른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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