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잡담

2023.03.31 22:01

thoma 조회 수:410

집단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미국의 대공황 이후에 실업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농민들의 대규모 이동이나 서부 이동 후의 극빈한 노동자 생활은 잘 알지 못했어요. 작품이 발표된 다음에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로 착취당하고 이렇게 떠돌이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두고 소동이 일었다고 합니다. 은행이나 지주를 적대시했다고, 자본주의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금서가 되기도 했다네요.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1925년 작입니다. 이 소설은 1939년에 출간되었고요. 아무리 대공황을 겪었다 한들 미국 사회가 이런 모습인 것인가 당황했나 봅니다. 존 스타인벡이 실제로 오클라호마 이주민들 사이에 끼어 서부로 간 경험을 토대로 썼다고 합니다. 땅을 잃고 도시빈민이 되는 사람들 이야기가 우리 20-40년대 소설을 떠올리게도 했어요. 


'전쟁과 평화'나 '감정교육'도 주인공 개별 사연 사이사이에 역사적 사건, 전체 사회상이 전지적 작가의 설명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엔 작가의 전체상 설명이 없는 게 나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앞에 톨스토이나 플로베르 소설을 읽을 때는 역사적 세부를 읽는 의미가 있는데 비해 이 작품의 배경은 비교적 가까운 시대이고 워낙 익숙한 자본의 횡포라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어요. 좀 부연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보니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엔 다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기 사회의 모습이었다니 객관적 부연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어요.


2권 초반에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는 조드 집안이야. 우린 아무도 우러러 보지 않아.---'이런 말을 하는데 무슨 집안 내세우는 거 들으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드문 경험을 합니다. 이 집안 사람들의 중심인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훌륭한 애'라고 하는 둘째 아들 톰 조드는 참 완성된 인격체입니다. 그게 멀리 뚝 떨어진 위대함 같은 것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더 이상의 모범이 있을까 싶게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톰은 소설 시작 부분에서는 긴가민가 위태로움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남의 차를 얻어타고 가는 중에 자기가 만만찮은 놈인 걸 보이려고 공연히 메뚜기를 눌러 죽입니다. 그런데 소설 후반에 가면 운전하며 일부러 뱀을 치어죽이는 동생에게 그럴 필요 있냐,라고 합니다. 점점 발전하다가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전직 목사 케이시라는 인물과 톰의 개안도 조금 얘기하면, 소설 초반에 황야(광야)에서 혼자 돌아다니던 케이시는 예수같고 톰은 그의 수제자같아요. 톰은 수제자일 뿐 아니라 소설 후반에는 어머니와 이별하는 장면에서 어머니를 달래며 마치 자신이 예수인양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 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이 장면에서 톰이 하는 말이 해설에서도 인용되고 있었습니다. 뭐 얼마나 많은 분석과 해석과 연구가 있겠습니까. 제가 뭘 덧붙이는 것이 이상합니다만 어쨌든 일반 독자가 봐도 너무 눈에 띄었습니다. 


3월의 마지막 계획도 달성했습니다. 이번에도 널널하게 잡아서 ㅎ. 다음 책은 뭐로 할까.. 아직 안 정했어요.

내일 4월이 시작되네요. 잔인한 달, 아니고 재미있는 농담으로 시작하셔서 즐거운 달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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