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왔던 아일랜드 영화입니다. 배경만 아일랜드인 것이 아니라 사용된 언어도 90% 이상이 아이리쉬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간혹 해외에 알려지는 아일랜드 작품들도 당연히 일반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중 배경이 티나게 묘사되지 않으면 그냥 영국 영화로 대충 퉁쳐서 생각하게 되기 마련인지라 좀 더 진짜 아일랜드 영화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제를 강조하자면 <An Cailín Ciúin>



다만 내용 자체는 그렇게까지 지역적인 특성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구요. 세계 어느나라 관객이라도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안쓰러운 소녀 성장기'에 가깝습니다. 



오프닝 씬에서부터 우리의 주인공 카이트가 얼마나 암울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효율적이면서 강하게 와닿도록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굉장히 가난한 농가에서 자식이 한 명만 있어도 어려울 것 같은데 이미 한창 먹고 자라야할 네 자매에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엄마가 또 임신을 했습니다;; 사실상 자포자기를 한 상태로 딸들 아침을 차려준다던지 도시락을 싸준다던지 하는 것은 기대할 수조차 없고 무책임한 아빠는 이런 집안 현실을 애써 못 본 척 외면하고 밖에서 술과 도박에 매진하는데다가 더욱 나쁘고 무책임한 짓거리까지 하고다닌다는 것이 암시됩니다.



가족이 다들 힘들지만 그 중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에 자신의 감정을 꼭꼭 봉인해버린채로 버티고 있는 카이트는 당연히 학교 친구도 없으며 가족 안에서도 골칫거리, 짐짝 취급을 당하는 모양입니다. 결국 곧 태어날 아기와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엄마의 친척 부부의 집에 한동안 맡기기로 결정됩니다. 이들은 자식 없이 부부 둘이서 살아온 모양인데 카이트를 반갑게 환영해줍니다.(최소한 둘 중 한 명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종의 임시 입양아가 된 카이트와 이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비유하자면 일종의 아일랜드 버전 빨간머리 앤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막 명랑하게 집안, 학교,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고 친구들과 사귀어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냥 조용하고 소박한 농가에서 노부부와 함께하는 삶에 천천히 적응해나가는 소녀를 지켜봐야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친부모에게서조차 이렇다할 애정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아이가 조금씩 변해나가다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 정도로 감정이 요동치는 엔딩의 마지막 샷에 도달하면 이 작은 아일랜드 독립영화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훌륭하게 노리는 목표를 달성해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1.33:1의 화면비 안에 담긴 정갈하고 아름다운 아일랜드 시골 농장의 풍경과 벌레 소리, 바람 부는 소리마저 섬세하게 잡아낸 사운드 역시 뭔가 화려하고 강렬한 것만이 항상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주인공 카이트를 맡은 아역배우와 부부 역의 두 배우의 꾸밈없는 설득력 강한 연기도 심금을 울립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는데 아일랜드 영화계에서 최초로 올린 쾌거라고 합니다. 꼭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스페셜 프리미어 상영으로 봤는데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실 때 꼭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https://www.instagram.com/p/Cot66VQPcvZ/

현재 상영 스케쥴은 위 링크를 참고하시고 나중에 또 정식으로 개봉하려는지 아니면 VOD로만 공개될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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