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5년 전에 이 사람에 대한 글을 쓴 것 같은데, 원래 제가 한이야기 또 하고 또하는 사람이라서요 


밑에 로이배티님의 슬램덩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저한테는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몰랐지만 마지막이었던 그날 저녁, 왜였는 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대학로에서 만나고 (집도 학교도 대학로와는 전혀 관계없는데, 거기다가 공연을 봤다는 기억도 없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좌석버스에서 오빠가 슬램덩크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요즘 자신이 아주 재미있게 보는 만화라고.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발전을 안해, 그냥 그 성격 드대로야, 원래 스포츠 만화 보면 막 애들이 변하잖아'. 그날 일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딱 그 순간만요. 아마 오빠랑 둘이 킥킥 거리면서 웃어서, 집에 돌아와서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살던 이모네 사촌 동생 책장에서 그 다음날부터 슬램덩크를 읽어서 이겠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겨울 방학에 만난 오빠는 정말 오빠 였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보고 스웨덴에 왔다 연락이 끊어졌어도 별 걱정없었어요. 둘이 아는 사람이 있어서 언젠가 마음 먹으면 다시 만나겠지 했거든요. 정말 오빠가 아빠가 되고 내가 엄마가 되어서 애들이랑 다 같이 만나야지 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다 그 지인분께 오빠 어떻게 지내요? 라고 물었을 때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답을 들었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은 참 컸습니다. (그는 화학자였어요. 그런데 전공지식을 사용하다니 하고 화를 냈던 기억이) 15년전에도 썼는 데 엄마랑 동생이, 사람이 좀 어두웠다고 말했을 때 화도 많이 났고요. 제가 오빠를 기억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늘 4월 어느날 해가 잘 들어오던 제 방에서 어깨를 대고 앉아 조근 조근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그의 말이 맞았어요) 말해주던 모습이거든요. 얼떨결에 동생하겠다고 한 아이가 영화보러가자고 하면 정말 본인은 별로인 영화도 같이 보러가 주고 (너 보여줄려고 온 영화니 니가 좋았다면 좋네) .


그 소식을 듣고 한참 오빠를 기억하던 시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한참을 같이 있었는데 오빠가 이제 갈 시간입니다. 저는 급하게 오빠 손을 잡고 물어보죠. 오빠 저랑 결혼할래요? 우리 그렇게 함께 살래요? 오빠가 답을 하죠. 물어봐주어서 고마워 그런데 너도 알지,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 그래도 괜찮아.


사람이 기억나니 그 사람을 잊고 지내던 날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몇달, 어쩌면 몇년은 아무 생각 없었을 텐데도요. 기억의 시간에 와 있으니 그는 마치 항상 이 시간에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갑자기 깨닫습니다. 내가 그를 마지막 보았을 때 그는 아마 25살 이었겠구나. 나는 이제 50세의 중년인데 25살의 그를 아직도 오빠라고 기억하는 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울로프의 발이 침대밖에 나와있습니다. 그 발을 쓰다듬으면서 오빠도 살았더라면 누군가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대고, 발을 쓰다듬으며 살고 있다면, 그렇게 믿고 내가 갈 수 있었다면 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에프터선이 상여중이군요. 가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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