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3 20:40
보통의 공포 영화들이 남자 살인마가 여자 희생자들을 쫓아다니는 구도라면 이 영화는 여자들에게 남자가 쫓기는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부분에서 여자들이 악령들에게 쫓기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죠. 그러나 [이블 데드]의 주인공이 애쉬이고 그가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는 결국 남자가 여자에게 쫓기는 영화로 봐야할 것 같아요. 애쉬의 남성친구 스캇도 마지막쯤에야 악령에 들려서 돌변하니까요. 애쉬는 영화 내내 여자들과 싸웁니다.
어떤 점에서는 집 안의 여성들을 지켜내지 못한 남성의 죄악감을 그리고 있는 영화처럼도 보입니다. 애쉬가 싸우는 여자들은 악령에 공격을 당한 피해자들이고, 이들은 그 후 돌변해서 애쉬를 괴롭히죠. 특히나 제일 흉측하게 변한 셰릴이 지하실에서 자꾸 나오려고 하는 것은 애쉬의 이성이 누르고 있는 내면의 죄의식이 튀어나려고 하는 모양같지 않나요. 셰릴은 악령들린 나무에게 강간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그의 여자친구 린다는 눈이 하얗게 뒤집어져서 애쉬를 계속 해서 놀립니다. 그를 육체적으로 해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를 심리적으로 몰아세우는 그 행위가 독특하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쫓고 쫓기는 피지컬 추격적이라기보다는 집 안에서 자꾸 자신의 나약함을 자극하는 심리적 요인들에 대한 반응 그 자체입니다.
집 바깥에는 뭔가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종종 집이나 집에 살고 있는 여성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옵니다. 이걸 물리치기 위해 애쉬는 지하실에서 엽총을 꺼내옵니다. 그렇지만 집안에 쳐들어오는 것은 나뭇가지를 제외하면 다른 외부적인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애쉬를 괴롭히는 건 전부 다 자기와 함께 있던 여자들이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젊은 가부장이 여성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실패하는 이야기같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무덤에 묻었는데 되살아나오다니! 그야말로 죄책감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애쉬는 아침에 악령과 맞닥트리고 마는 거겠죠.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정면으로 찾아올테니까요.
이블 데드 시리즈는 워낙 좋아해서 수십번을 봤는데도 1편을 보면 볼 때마다 놀랍니다. 아 맞다, 이거 진지한 호러였지. ㅋㅋ 2편과 3편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자꾸 원조의 내용이 기억에서 왜곡이 돼요. ㅋ
뻘플이지만 샘 레이미 초기작으로 '크라임 웨이브'를 다시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네요. 샘 레이미 감독에 코엔 형제 각본(!)으로 만든 막장 코미디라는 나름 레어템인데. 제발 누가 좀...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