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물의 얼굴 '아쿠아렐라'

2022.10.02 17:10

thoma 조회 수:524

Aquarela, 2018

dbfa7ff1cbc441d5bfa01f653548cfac15407732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9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어쩌다 검색 중에 왓챠에서 이 영화를 발견해서 보았습니다. 2019년 환경영화제 개막작이라고 합니다. 

대사는 없고 주인공은 '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물은 얼음으로 시작해서 빙하의 형태가 되었다가 그것이 녹아든 바닷물, 폭우, 폭포로 등장합니다. 


'물' 좋아하시나요. 막연한 물음이네요. 저는 어릴 때 바닷가 동네에 잠시 살았고 산보다 바다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직장인 초짜일 때도 본의와 상관없이 바다를 낀 동네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때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서 이래저래 바다에 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바다가 직장 건물에서 멀리 보이긴 하지만 눈 앞에 바로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바닷가 동네라고 해도 별 생각없이 일상을 보내지만 어떤 골목을 돌면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나서 이 길 끝에 바다가 있구나 싶은 생각은 자주 했지요. 그곳에서 바다 관련한 특별한 기억은 태풍으로 파도가 제방을 치는 날 구경하러 나간 것? 같이 나간 사람은 무섭다고 갑자기 말이 없어지며 주저하는데 저는 뭔가 신나서 바다 가까이 다가갔던 것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는 거대한 물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압도적이고 그 예사롭지 않은 느낌 때문에 좋았는데 지금은 그만한 감흥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신기하고 압도적이고 무시무시한 바다를 만납니다. 


영화 초반에는 바이칼호가 나옵니다. 해빙 시기가 당겨졌음에도 예전의 비슷한 시기 생각을 하고 지나가던 차들이 자꾸 빠지는 사고가 나고 그 처리와 수습을 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그리고 북해의 거대한 빙하들이 녹고 '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장면, 바다에 잠긴 부분 얼음에 기포가 생기며 녹아들어가는 장면들... 한 마디 관련 대사는 없지만 기후 이상으로 생기는 변화들입니다.

영화가 절반 이상 진행될 쯤 폭풍급의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오래 찍어 보여 줍니다. 작은 배를 타고 찍은 것 같은데 무척 무서운 바다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 그 자체입니다. 마치 바다에 눈이 있는 걸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꿈틀거리고 뒤틀리고 곧 덮칠 듯한 거대한 파도들이 굴곡져 다가오는데 그 색상과 형상이 어떤 컴퓨터 작업으로도 흉내내기 어려운 압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컴퓨터 보정도 했겠죠?) 십 분 정도 동안 진행되는 바다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모험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미약까지 드실 필요는 없지만 멀미날 판인데, 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영화는 들끓는 바다에 이어 허리케인이 도시를 휩쓰는 장면,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의 모습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환경과 관련지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말은 제거되어 있고 영상만으로 웅변합니다. 이 영상은 인간이 보기 좋아하는, 즐길만하고 다룰만한 각도와 크기로 찍혀 있지 않습니다. 관광지 풍경 같은 경관이 아닙니다. 저는 바다가 나오는 중후반 장면이 최고였는데 포스터로 쓰인 거 외에 사진을 찾지 못 해 아쉽네요. 

가능한 tv로 소리도 키워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극장에서 봤다면 굉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래는 빠진 차를 건져내는 작업 사진.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요건 빙하를 멀리서 찍은 장면.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이렇게도 찍고요.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이렇게도 찍었나 봐요.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95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92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229
121162 '씬 시티' 아무말입니다. [18] thoma 2022.10.05 496
121161 [근조] 일러스트레이터 김정기 작가 [4] 영화처럼 2022.10.05 495
121160 페미니스트가 불편한 이유 [2] catgotmy 2022.10.05 731
121159 묘하게 위안을 주는 '말아' [8] LadyBird 2022.10.05 429
121158 프레임드 #208 [6] Lunagazer 2022.10.05 146
121157 얘가 누구죠 [4] 가끔영화 2022.10.05 409
121156 윤석열차 [3] 예상수 2022.10.05 721
121155 '나비잠' 보고 잡담입니다. [4] thoma 2022.10.05 298
12115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예매 오픈 했습니다. [3] 남산교장 2022.10.05 538
121153 [영화바낭] 분열된 '샤이닝' 팬들의 화합을 시도한 영화, '닥터 슬립'을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2.10.04 611
121152 침착맨 유튜브에 나온 이동진(feat. 주호민) [4] catgotmy 2022.10.04 812
121151 하우스 오브 드래곤 7회 바낭 [2] daviddain 2022.10.04 380
121150 에피소드 #5 [8] Lunagazer 2022.10.04 169
121149 프레임드 #207 [4] Lunagazer 2022.10.04 131
121148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 미스테리아43호 [1] thoma 2022.10.04 441
121147 와우를 시작하면서 (디아블로2 버그 해결) catgotmy 2022.10.04 240
121146 [왓챠바낭] 하는 김에 끝장을 보려고 '번지 점프를 하다'도 봤어요 [22] 로이배티 2022.10.03 881
121145 스탠드 - 스티븐 킹 catgotmy 2022.10.03 303
121144 [이블 데드 1]을 다시 봤습니다 [4] Sonny 2022.10.03 362
121143 핵전쟁이 결국 일어날까요 [4] 표정연습 2022.10.03 85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