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3 21:49
- 2020년작이고 런닝타임은 90분. 장르는 코미디/로맨스 정도 되겠네요. 스포일러 없게 적을 게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라!! 라니 뭔가 참 불건전한 영화 같은 느낌이군요.)
- 나일스라는 남자가 침대에서 깨어납니다. 딱 봐도 별로 애정이 없어 보이는 여자 친구랑 뭘(?) 좀 하려다 말고 나가서 맥주를 마시며 늘어져요. 그 날은 여자 친구의 친구 결혼식이고 딱 봐도 sns 중독에 자기애만 철철 넘치는 여자 친구는 그 결혼식 사회까지 맡았네요. 나일스는 술이나 마시며 비비적대다가... 결혼식에서 갑작스런 활약을 시작합니다. 축사를 하겠다고 튀어나와서 신부의 아름다운 과거지사를 줄줄이 읊으며 사람들을 감동 시키고, 춤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뉴타입스런 능력을 발휘하며 멋진 춤을 선보이고. 탁월한 언변으로 우울증 직전처럼 보이는 신부의 언니를 위로하고 급기야 순탄한게 한 번 하려는(...) 순간, 어디서 화살이 날아오구요. 으악으악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옆에 있던 동굴(??)속으로 기어들어가는데. 그 안에는 이상하게 빛나는 뭔가가 있고, 거기로 빨려들어가는 순간!!! 어익후... 는 무슨, 넷플릭스 썸네일 소개글에도 다 적혀 있는 건데요. 침대에서 깨어납니다.
(제작자 겸 주연 배우란 것은 촬영장에서 어떤 느낌의 존재일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껄껄껄 너 해고!'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 그러니까 그 흔한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들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순간순간이 너무 힘들어 (왜 언제나 넌 내 맘 속에) 난 벗어나고 싶어' 장르의 영화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뭔가 기본 규칙을 비틀어 내는 아이디어가 있겠죠. 이 영화의 아이디어란 그 반복 속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입부의 나일스는 본의 아니게 신부의 언니 새라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후로는 타임루프 선후배가 콤비로 루프 속에서 몸부림 치고 드립을 치며 그 안에 적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서로 정도 들고 종국에는 탈출할 길을 찾아 나서고... 이런 식의 전개가 이어져요.
(전세계... 까진 모르겠고 제가 아는 배우 한정으론 눈 크기 탑5에 들어가실 분.)
- 사실 여기까지만으로는 특별하다 우기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러시아 인형처럼'이 깔끔하게 모범적으로 써먹은 아이디어잖아요. 둘이 함께 타임루프를 하고, 서로를 알게 되고, 돕고, 그러다 서로 가까워지고, 결국엔 각자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뭐 배경과 배우들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큰 그림은 거의 같은 패턴이에요.
그런데 뭐랄까, 각본이 의외로 상당히 영리합니다. 여기서 뭐 특별히 신선한 아이디어를 넣는 건 없는데, 대신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를 들어 '타임루프 선후배' 둘이서 가르침을 주고 받고 결국 둘 다 적응하는 과정을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재밌게 보여준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은근슬쩍 이 장르의 규칙을 갖고 농담을 하죠. "맞다, 그럼 이타적인 일을 하면 되겠군요!", "그럼 해 보시죠. 오늘 중에 완결돼서 확실하게 효과를 볼만한 이타적인 일이 뭐가 있어요?" 뭐 이런 식으로 소소한 드립들이 꽤 많아요.
(선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선배와 신입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신입. 캐스팅 참 잘 했습니다. 어차피 한 명은 제작자지만.)
-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타임루프를 다루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단 보면 주인공 둘 다 현시점의 인생이 참 별로인 사람들이고, 결국 돌고 돌고 미칠 듯한 뺑뺑이를 돌다가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져서 이걸 탈출할 건 뻔한 사실이거든요. 근데 대부분의 다른 타임 루프물들처럼 이걸 '신이 주신 기회'로 처리하지 않아요. 이들이 타임 루프에 걸려든 건 그냥 우연일 뿐이고, 그 둘의 인생이 갑갑했던 것도 역시 그냥 그렇게 된 것 뿐이에요. 타임 루프 덕에 이들이 전에 없던 깨달음과 희망을 얻게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에 저 높은 곳에 계신 보이지 않는 그 분께서 '이만 나가보거라' 하고 내보내주는 식은 아니라는 거죠. 탈출은 결국 셀프!!! 종교야 비켜라! 우리에겐 (야매) 과학이 있다!!!!
(도대체 이 분은 언제부터 할배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확인해보니 아직 일흔도 안 되셨네요.)
- 하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건 결국 기본적인 캐릭터 & 스토리였습니다.
일단 캐스팅이 좋아요. 찌질한 듯, 의뭉스러운 듯한 인상이면서도 씨익 웃을 땐 또 나름 순수하고 귀여워 보이는 앤디 샘버그와 그야말로 거대한 눈망울로 예민 불안 갬성을 뿜뿜하는 크리스틴 밀리오티는 각각 타임 루프 선배, 후배 역할에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별 거 안 하고 있어도 그림 자체가 귀엽고 웃깁니다.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공포의 할배 역할 J.K. 시몬스 할배도 무시무시 괴한에서 맘 좋은 할아버지 캐릭터까지 자연스럽게 잘 소화해 주고요.
또 이야기가 좀 뻔해진다... 싶은 타이밍마다 소소한 국면 전환들이 참 적절하게 터져주는데 그게 또 무리수 없이 오히려 자연스런 이야기 전개와 관계 발전에 활용되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잘 흐르고, 그에 따라 캐릭터와 관계들도 변화하고 그래요. 결국 마지막엔 정말 뻔한 전개, 뻔한 결말인데도 참 훈훈하고 기분 좋아지고 그러더라구요.
대사들도 은근 좋습니다. 그냥 가벼운 타임 루프 관련 드립처럼 흘러가는 대사들이 가만 생각해보면 '작가님 이 장르 참 좋아하시나보다' 싶게 일리가 있고 곱씹어볼만한 구석도 있고 그런 게 많아요. 그리고 로맨틱한 장면들에선 정말로 꽤 로맨틱한 대사들이 나옵니다. 제가 이런 영화를 워낙 안 봐서 그런지 참 낯간지럽고 좋더라구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당신'을 맡으셨던 그 분! 이 새라의 아빠 역으로 나오십니다.)
- 뭐 대충 정리하자면요.
특별한 아이디어 보다는 잘 짜여진 캐릭터와 드라마, 그리고 장르를 성실하게 공부한 티가 나는 드립들로 승부하는 타임 루프물입니다.
거기에다가 실력 있는 배우들을 캐릭터에 맞게 적절히 캐스팅해서 박아 놓으니 흠 잡을 데가 없어요. 특별히 대단할 건 없지만 그냥 전반적으로 훌륭한 장르물이랄까요.
레드 오션급으로 포화 상태인 장르를 캐더라도 이야기의 기본을 잘 갖춰 놓고 만들면 얼마든지 존재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작이었습니다.
게다가 은근 성장물로서도, 로맨스물로서도 준수해서 여러모로 보는 내내 즐겁고 다 보고난 후의 기분까지 좋아요. 이런 영화라면 그냥 고맙죠.
딱히 호불호를 탈만한 구석도 없는 순둥 무난 착하면서 재밌는 영화이니 다들 부담 없이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큰 기대만 안 하신다면!!
(로맨스도 은근 잘 먹힌다구요!!!)
+ 원래는 훌루 오리지널이었나 보더라구요. 이렇게 이 서비스에서 저 서비스로 옮겨다니는 컨텐츠들을 보면 좀 재밌습니다. 흠. 근데 이건 극장 개봉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2020년 작품이잖아요. 뭐 어쩔 수 없죠. 확인해보니 선댄스에서 공개된 후 훌루에서 냉큼 집어갔다고.
++ 영화 시작 직전에 뜨는 회사 이름을 보고 피식 웃었습니다. '더 론리아일랜드'라는 회사가... 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제작자 명단에 앤디 샘버그가 들어 있어요.
+++ 사전 정보 아무 것도 없이 이 영화를 재생한 건 사실 크리스틴 밀리오티 때문이었어요. '가버려라 2020년'과 '가 버려라 2021년'에서 이 분 캐릭터가 너무 맘에 들었... (쿨럭;) 사실 '블랙미러'의 'U.S.S. 칼리스터' 에피소드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자주 보고 싶었던 분이기도 하구요.
자꾸 하는 얘기지만 정말 그 에피소드는 캐스팅이 훌륭하기 그지 없었네요. 이후에 제가 호감을 갖게 된 배우들이 참 여럿 나와요. ㅋㅋ
2022.06.23 21:59
2022.06.23 22:01
얼마나 재밌냐가 문제이지 재미 없게 보시긴 힘들 겁니다. ㅋㅋ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2022.06.23 22:29
2022.06.23 22:32
신부엄마 어디서 봤지 고민했는데 보쉬의 베가형사였어요 ㅋㅋ
+출연진이 은근히 빵빵하군요.
2022.06.23 22:37
전 그 두 분은 몰랐고 당구 치는 아줌마 역할로 나온 데일 딕키를 보고 반가웠습니다.
뭔가 유명하진 않은데 여기저기 엄청 많이 나와서 괜찮은 연기 보여주는 분이죠. '윈터스 본', '흔적 없는 삶',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 등등.
2022.06.23 22:48
2022.06.23 23:51
그냥 얄팍한 사랑의 블랙홀 현대식으로 우려먹기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그렇다고 아주 깊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여주인공도 같이 루프에 빠진다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나름 신선하고 재밌는 그림 많이 뽑아넀던 것 같습니다. 여주 크리스틴 밀리오티 배우분은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역할로 나온 걸로 유명했죠. 눈 크기도 그렇고 되게 개성있고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페이스 같아요.
2022.06.24 00:10
2022.06.24 00:48
환상특급 ver. 2020에 다회차 플레이어가 빌런으로 나왔던 로맨스인 척하는 스릴러 생각이 나더라구요.
사실 그 에피소드가 지적했던 '타임 루프 주인공의 로맨스'의 허점(따지고 보면 당하는 입장에선 공포 스릴러!)을 이 영화도 깔끔하게 극복하진 못했는데. 그래도 그걸 감추지 않고 툭 까놓고 보여주면서 갈등까지 일으키는 걸 보면서 역시 루프물 공부 많이 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ㅋㅋ
2022.06.24 00:46
루프물의 설정 변형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를 매번 새로운 루프물을 볼 때마다 궁금해 합니다. ㅋㅋ 근데 이 영화는 큰 아이디어 없이 걍 기본기(?)로 잘 뽑아 먹은 사례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귀엽고 웃기니까.
전 이 분만 보면 '블루문 특급'의 눈 크고 소심한 비서 아그네스 생각이 나는데, 맨날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지금 확인해보니 전혀 안 닮았네요. 그냥 눈이 크다는 것 외엔 전혀... 역시 기억이란!
2022.06.24 11:39
생각났는데 아마존 모던 러브 1시즌 1화에서 주인공으로도 나왔었죠. 시즌 전체에서도 참 맘에 들었던 에피소드... 시즌 2는 아직 시도를 못했네요. 1보다 못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2022.06.24 12:26
네 맞아요. 벨보이... 가 아니라 관리인이었든가? 암튼 그 아저씨랑 애틋한 인연 이야기였죠.
시즌 2는 제가 첫 에피소드 보다가 껐습니다. 시즌 1도 고르게 좋았던 건 아닌데 그 중 가장 별로였던 것보다 별로라는 느낌이더라구요. 시작부터... ㅋㅋㅋㅋ
2022.06.24 12:39
2022.06.24 14:23
정확히는 제작입니다만. 감독보다 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리죠. ㅋㅋ 요즘 헐리웃 배우들 보면 이렇게 자기가 출연하고 싶은 거 발견하면 직접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역시 헐리웃이랄까...
2022.06.24 13:56
앤디 샘버그는 왜 늙지 않는 거죠? 저에겐 나인나인 때문에 좀 밉상인 배우라.. 오피스의 짐처럼 괜히 주는 거 없이 얄미운 느낌이요. 그래도 재밌어 보이니 봐야겠네요.
2022.06.24 14:24
저도 이 분 나오는 영화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맨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에요. 왜 안 늙는 건데. ㅋㅋㅋㅋ
네 영화는 재밌어요. 여기서도 살짝 얄미운 짓들 하는데 그래도 결론적으론 귀엽습니다. 한 번 보시길!
오 저도 지금 막 플레이 버튼 눌렀습니다.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앤디 샘버그 영화 좀 많이 들어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