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00:37
- 올해 나온 영국 드라마입니다. 에피소드 6개에 편당 45분 정도라 금방 봤네요. 추리물 얘길 하면서 스포일러를 넣으면 나쁜 놈이겠죠.
('브릿박스 오리지널'이라니 이건 또 무슨... OTT 정말 많아도 너무 많지요. ㅠㅜ)
- 한 추리소설 작가의 작업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맥파이 살인사건' 이라고 제목을 적어 놓고 숱한 창작의 고통의 시간을 보내죠. 정 아이디어가 막힐 땐 아가사 크리스티를 펴들고 표절도 시도하고요. 그러다 결국 작품을 완성!!!
장면이 바뀌면 우리 맨빌 여사님이 도서 박람회에 참석을 하네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하고 있고, 이 양반의 일생 가장 큰 히트작이 바로 처음에 보인 그 작가의 '명탐정 아티쿠스 푼트' 시리즈입니다. 이제 신작의 집필이 완료되었다니 아주 방방 뜨는 기분이죠. 그런데...
일단 그 소설가가 죽습니다. 유서도 있으니 경찰은 자살이라고 보지만 맨빌 여사님은 '유서가 전혀 그답지 않다'라는 이유로 의심을 품고요.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더 큰 문제는 소설입니다. 완성된 소설 원고를 전해 받아서 다 읽었는데, 범인이 밝혀지는 최종장이 빠졌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출판사의 인수 합병 문제로 이 소설은 반드시 출판되어야 하는데...
결국 우리의 편집자님은 원고의 최종장을 찾아 작가가 죽은 시골 동네로 가서 팔자에 없는 탐정 놀이를 시작합니다.
(현대 파트의 피해자이자 가장 강렼한 빌런, 우리 소시오패스 베스트셀러 작가님이십니다. 사실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영국맛이 들어가니 상당히 그럴싸!)
- 위의 도입부 소개에 귀찮아서(...) 생략한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이 드라마는 사실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 진행됩니다... 라고 하면 뭔지 아시겠죠? 원고의 마지막 장을 찾아 헤매며 어쩌다 보니 작가의 죽음까지 파헤치게 되는 편집자 수잔(=맨빌 여사님)의 이야기가 첫 번째구요. 결말이 사라져 버린 그 추리 소설, 1950년대에서 활약하는 명탐정 아티쿠스 푼트의 이야기가 두 번째겠죠.
그리고 이렇게 두 이야기를 '그냥' 병행 전개하면 좀 이상할 테니 당연히 현실 세계와 소설 속 세계는 접점을 갖습니다. 우리의 작가님께서는 참 전형적인 성격 파탄 예술가이신데, 그래서 자기 주변 사람들을 소설 속에 등장 시켜서 놀리고 조롱하고 구박하는 게 삶의 낙이셨어요. 그런데 우리 작가님을 죽였을 용의자들은 당연히 죄다 작가님의 주변 사람들이니 소설의 내용이 현실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조가 되죠... 라는 게 핵심이구요.
덤으로 이 구조를 통해 최대한 재미를 뽑아내려 노력합니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니 그냥 한 명의 배우가 현실 & 소설 세계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아 1인 2역들을 해주시고요. 이걸 또 교차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면서 재밌는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 내구요. 심지어 아티쿠스 푼트가 수잔의 환상으로 자꾸만 현실 세계에 왕림해서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 두 사람이 또 그럴싸하게 잘 어울리고 보기 좋아요.
(탐정님 역할 배우분 생김새가 되게 독특하더라구요. 옛날 신문 삽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오신 느낌.)
- 사실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만 뚝 떼어 놓고 평가하자면 그렇게 훌륭하다... 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사건들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개성 있거나 참신한 구석은 없구요. 추리 과정은 내내 막막함 속을 헤매다가 막판에 너무 쉽게, 한 방에 풀려 버리는 감이 있어요. 특히나 현실 파트의 경우엔 범인을 눈치 채기가 너무 쉽더군요. '쟤 아님?'으로 시작해서 '쟤 맞는 것 같은데?'로 이어지다가 '응, 쟤 맞네'로 끝나요.
다만 그게 그렇게 나쁘지도 않습니다. 범인 때려 맞추기가 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게 나름 페어플레이를 하려다가 그렇게 된 거라 (힌트를 충분히 제공해주거든요) 정상을 참작해줄 구석이 있구요. 또 마지막에 두 탐정이 옛날 추리소설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장면은 요 장르 특유의 전통적인 쾌감이 있어요. 게다가 두 개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며 병행 전개가 되니 각각의 아쉬운 구석들이 은근슬쩍 묻히는 효과도 있구요. 덤으로 그렇게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의 드라마가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괜찮아서 종합적으로는 썩 괜찮은 걸 본 듯한 기분을 안겨 줍니다.
(사건의 발단을 맡으신 '의뢰인' 커플. 1995년 영국에선 흑백 커플이 이렇게 큰 부담이 없었... 을 것 같진 않은데요.)
- 그리고 뭣보다 영국 드라마잖아요. ㅋㅋ 영국맛, 영국뽕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상당히 안 부담스럽게 추천할만한 드라마입니다.
일단 구성부터가 그래요. 현대와 50년대를 오가는 설정 덕에 두 가지 버전의 영국뽕을 선사하죠. 현대 영국에서 기 세고 똑똑한 전문직 싱글 할매님이 씩씩하게 난관을 헤쳐나가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있구요. 옛날 영국을 배경으로 대저택, 정원사, 하녀에다가 명탐정 신사까지 총출동하는 구식 추리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구요.
또 잘 만든 영국 드라마들이 거의 모두 다 그렇듯 배우들도 좋습니다... 만 뭐 다 됐고 우리 맨빌 여사님께서 언제나 그렇듯 확실하게 먹어주시는 것인데요. '명연기' 같은 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그 대신에, 풀파워로 매력 발산을 해주십니다. ㅋㅋㅋ 기본적으로 폼이 나면서 자꾸만 귀엽고 그러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캐릭터인데, 딱히 힘을 빡 주거나 그런 거 없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잘 소화해서 보다보면 '원래 저런 사람일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 팬심이 마구 생기는 기분. 맨빌 여사님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냥 한 번 보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실 겁니다. ㅋㅋ
(1956년생께서 넘나 깜찍하신 것...)
-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이 있긴 합니다. 이게 출판사 사람들과 추리 소설 작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장르 문학계에 대한 업계 내부자들 수다 같은 것도 조금씩 나오고, 또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고찰 같은 게 조금씩 나와요. 그리고 그게 짭짤한 재미를 주는데... 정말 조금씩만 나오다가 맙니다. ㅋㅋㅋ
근데 이게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거든요.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검색을 좀 해 보니 원작에선 이런 부분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더라구요. 그래서 일종의 메타 뭐시기적인 재미를 주는 게 포인트였던 소설 같은데, 드라마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들이 대부분 칼질 당한 것 같아요. 이해는 합니다. 원작에서 그런 부분들은 대부분 등장 인물간의 대화나 주인공의 생각으로 처리된 것 같던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범인 안 잡고 계속 그런 잡담이나 하고 있으면 극의 호흡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어려웠겠죠.
그렇게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아쉽더라구요. 뭐 이미 국내 출간도 되어 있는 원작을 찾아 읽으면 될 일이겠지만 추리 소설을 범인까지 다 알고서 굳이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지는 않... (쿨럭;)
(600 페이지가 넘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ㅋㅋ)
- 그러니까 종합하자면요.
본격 추리물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쉬움이 적지 않겠으나, 그런 약점을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 구성으로 잘 덮어내고 퍼즐 미스테리물의 기본적 재미는 준수하게 전달해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요즘에 이런 장르의 드라마가 많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그 리그 안에선 수작... 이든 말든 장르 팬분들이라면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작품이었구요.
영상미나 배우들 연기나 연출이나 뭐 하나 딱히 떨어지는 구석 없이 잘 뽑아낸 웰메이드 드라마이면서 강력한 영국뽕을 장전하고 있으니 영국맛 팬분들도 보실만 할 거에요.
그리고 뭣보다 힘 빼고 즐겁게 연기하는 맨빌 여사님의 본격 매력 발산 시리즈인 것입니다. 여사님들 팬분들은 꼭 보셔야해요. 그렇긴 한데, 사실 이 드라마에는 위에서 언급 안 한 강력한 단점이 하나 있으니...
"OTT seezn(시즌)이 지난 2월 영국에서 첫 방송한 드라마 시리즈 ‘맥파이 살인사건’을 1년간 국내 독점 서비스한다."
...그러합니다. 4월 1일에 등록됐으니 최소한 내년 4월이 되어야 다른 서비스로 풀리겠죠. 엄... 차마 이거 하나 보시라고 시즌 가입을 권유하진 못 하겠네요. 하하;;
+ 기왕 이런 게 나왔으니 맨빌 여사님 캐릭터가 활약하는 속편을 기대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었습니다만. 역시 검색을 좀 해 보니 아쉽게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더라구요. 일단 그런 역할을 할 소설이 나온 게 없구요. 원작자님 차기작은 지금 집필 중인데 역시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근데 이번엔 작가 본인을 작품 속에 등장 시킬 예정이라니 이런 메타 소설 쓰기에 재미를 들리신 모양.
(사실 요 탐정&조수 콤비도 꽤 괜찮았지만 어차피 내용상 1회용 캐릭터분들이라 아깝...)
++ 짤막한 시리즈이긴 하지만 한국식 나이 67세의 배우가 이런 폼 나는 역으로 주인공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참 좋구나... 싶었구요.
(그러니까 원작자님하 맨빌님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속편 좀... ㅠㅜ)
+++ 영국인들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맨유'라고 줄여서 부르는군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제가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괜히 친숙함에 웃었습니다. ㅋㅋ
++++ 이 드라마와 전혀 관계 없는 뻘소리입니다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2!!! 가 내일!!! 공개됩니다. 하하.
더도 덜도 말고 시즌 1만큼만 볼만해도 만족하겠어요.
2022.04.19 05:28
2022.04.19 09:00
같은 추리물이어도 영국산은 뭔가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게 있죠. ㅋㅋ 가끔 하나씩은 섭취해줘야 하는 느낌.
러시아 인형처럼은 웃기고 훈훈한 타임루프 성장물인데요. 주인공의 막 사는 캐릭터랑 배우가 취향에 맞으면 아주 재밌습니다. 배우님이 매력 폭발이시더라구요.
2022.04.19 05:55
2022.04.19 09:01
'렛 힘 고'에서 보여준 지옥에서 기어 나온 듯한 할매 캐릭터라든가,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맡았던 인생 불안 진상 캐릭터 등등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실은 제가 본 게 그거라서요. 하하;
2022.04.19 08:50
아... 시즌 들어갈때마다 팝업 광고로 밀어주고 있는 드라마라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2022.04.19 09:12
시즌도 가끔씩 괜찮은 거 하나씩 독점으로 잡고 홍보하고 그러더라구요.
근데 기왕 그럴 거면 좀 더 팍팍 쓰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대기업인데 '적극적인 푸쉬'라고 하기엔 애매한 느낌. ㅋㅋ
2022.04.19 08:50
오 제시카의 추리극장처럼 여주인공탐정이 할머니시군요.(할머니라니 기분나쁘실까요) 비주얼도 맘에 드네요 ^^
2022.04.19 09:29
실제 나이를 보면 딱히 기분 나빠하진 않으실...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 멋진 배우님이십니다! 연기만 잘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보다보니 매력도 출중하세요.
2022.04.19 11:59
정말 별의별 OTT가 다 있군요. 맨빌 여사님은 저도 뒤늦게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발견하긴 했는데 소화 못하는 배역이 없는 넓은 스펙트럼에 항상 감탄하는 중입니다.
2022.04.19 12:59
보니깐 '넷플릭스 게섯거라!'라는 목적으로 BBC랑 ITV가 합작해서 만든 서비스더라구요. 듣도 보도... 가 전혀 아니었던. ㅋㅋ
맨빌 여사님 훌륭하시죠. 그동안 쭉 무거운 연기들만 봤는데 이렇게 좀 가벼운 연기를 하셔도 참 잘 하세요. 뭘 해도 원래 그런 사람 같은 느낌!
2022.04.19 14:50
책을 재미있게 읽은데다 시즌 앱 사용 중인데 챙겨봐야겠네요! 궁금했던 점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2022.04.19 16:18
이미 시즌 이용 중인 분들에겐 좀 강하게 추천해드리고 싶... 지만 이미 원작을 읽으셨군요. ㅋㅋ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