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1 15:29
밑에 글에 댓글로 달까 하다가 좀 길어질 수도 있고, 글의 본문이랑은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따로 글로 남깁니다
종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어딘가는 사람을 끊임없이 가르쳐서 인류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가진 종교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우리가 흔하게 아는 주류 종교들은 그렇지는 않지요. 뭐 잘 모르는 분야 넘겨짚고 싶지는 않으니 개신교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모하메드도 부처도 예수도 가르침을 주던 사람들이고, 당대에 자신을 선생님으로 모시던 제자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던 건 맞아요. 그런데 이게 종교화 되는 과정에서는 좀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배우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거든요. 기독교는 특히 그래요. 일종의 선각자, 선지자인 모하메드와 부처와 달리 예수는 곧 신이죠.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주 소수 종파도 역사적으로 꾸준히 있어왔긴 하지만 주로 이단시 되기 십상이고, 그래서 제거되어 왔으니 그런 예외는 잠시 내려놓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예수를 중심으로 모인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건 가르치는 게 아니고 가르침을 받드는 일이 되는 겁니다.
아 물론 종교 초심자에게 어느 정도의 기본은 가르쳐야겠지요. 우리 종교가 어떤 전통을 가졌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그 종교인이라고 칭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이건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취미 생활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학습의 단계가 선행되고(이를테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거나 게임의 룰을 익히는 등), 어느 정도 습득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취미로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거랑 비슷한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그 자체가 본질은 결코 아닌 거지요.
근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혼동합니다. 종교 외부에서 잘 모르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래요. 이건 왜냐하면 초기에 학습 단계에서 머물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를테면 개신교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예식에 마음을 들여 참여한다는 거거든요. 예배를 드리는 주체는 집례자가 아닌 각 개인이 됩니다. 근데 많은 한국의 개신교도들은 설교 안 졸고 잘 들었으면 예배 잘 들은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목사님 설교 참 감동적이었다. 좋은 예배였다. 이렇게 가요. 아주 잘못된 거죠. 각 개인의 주체성을 상실한 종교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시대 한국 개신교의 각종 만행을 통해 듀게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여간.
그렇다면 바이블(경전)을 원어로 읽고자 하는 노력은 이 종교의 수행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밑에 글에는 친절하게 가톨릭의 사례를 댓글로 설명해주신 분이 계시긴 한데, 일반적인 개신교의 상황은 그거랑은 또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게, 교황청 중심의 일괄적 해석에 반기를 들고 종교인 각 개인이 각자의 신앙을 각자의 언어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프로테스탄티즘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각 개인이 원하면 원전 찾아보면 됩니다. 어느 정도는 개인적 해석을 할 수도 있고요.
물론 개신교라고 해서 천태만상이 다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종교개혁 이후로 또 수백년이 지났고, 여러 종파가 형성된 데에는 그 종파 안에서 공유되는 나름의 신학적 논리들이 있는 법이거든요. 남들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데도 그 안에서는 이단이니 아니니 머리채 잡고 싸우는 것도 결국 그런 맥락인 거고요. 이를테면 한국 개신교의 가장 대표적 교단인 장로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건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기장 교단이나 보수꼴통으로 악명 높은 예장합동이나 동일해요. 그걸 벗어나면 더 이상 장로회적 전통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성경을 좋아하고 종교적 신심이 돈독한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학습을 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 하는 사람들은 해요. 꼭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우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반 교인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끝까지 성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도를 하는 사람은 의외로 조금만 둘러보면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나머지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죠. 대다수는 거기에 관심이 없으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요.
유럽 고전 문학의 예를 드셨는데, 맞아요. 관심이 있어서 읽고 연구하다보면 원전도 찾아서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놓은 것들도 비교해서 읽어보고 할 수도 있죠. 근데 돈키호테를 17세기 스페인어로 읽을 수 있어야 돈키호테 팬이라고 할 수 있나요?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팬은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걸까요? 혹 그렇다 하더라도 뮤지컬 팬으로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면 그건 또 뭐가 문제죠?
2022.02.21 15:42
2022.02.21 15:46
2022.02.21 16:36
원어민처럼이 아니라 원어민이라서 원서를 오독없이 읽던 4세기 이전 초기 기독교인들도 박터지게 싸우긴 마찬가지였죠 ^^
예수의 원뜻이 뭐였든지간에 이미 빨라야 사후 70년 뒤, 혹은 200년 뒤에 그것도 예수가 썼던 아람어가 아닌 당시의 주류 언어로 쓰인 기록으로 보는 거 자체가 이미 원뜻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진 거 아닐까요. ㅎㅎㅎ
저도 공부가 필요없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입문 과정에서는 필수적인 측면도 있지요. 다만 그게 종교의 목적이나 핵심은 아니라는 것뿐
2022.02.21 16:42
2022.02.21 15:50
2022.02.21 15:55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면서 성경을 보려고 노력을 하는 분들은 결국 교회를 안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라틴어를 배워서 성경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중세 농노의 운명과 비슷하달까요. ㅋ 지금 교회들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한창 열성신도이던 시절에 저희 담임목사님께서는 "성서를 지나치게 공부하면 시험에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더랬습니다. 제가 그래서 시험에 들었고 교회를 안 다니게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2022.02.21 16:39
에고…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사실 전근대 사회의 산물인 종교를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대로 믿는데는 기타 여러 장벽들이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여튼 저 성경 원전 읽기에 대한 논쟁을 보다 보니 문득 16세기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 원서 번역 열풍이 떠오릅니다. 마침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본도 발명된 터라 지식인이 맘먹고 번역한 독일어 성서, 불어 성서, 영어 성서, 네덜란드어 성서 등등이 책으로 나와 농노들에게 읽히기 시작했고…결국 유럽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면, 불바다가…아, 아닙니다 ㅎㅎ
2022.02.21 16:46
제가 그래서 시험에 들었고 교회를 안 다니게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웃으면 안 되는 일인데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네요. 그 사정 너무 잘 알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기성교회를 계속 다닐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요즘은 그래서 기독교인에게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2022.02.21 16:51
2022.02.21 16:08
많은 개신교인들이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학습을 하지 않는 건 동네 피자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 구태어 이탈리아 정통 레시피를 찾아보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원전, 원론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냥 (본인들 듣기에) 좋은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게 목적이라면.. 그게 꼭 원조 정통 레시피여야하는 건 아니니까요ㅎ
2022.02.21 16:14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원어를 공부해서 원전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별로 없지 않을까. 노력을 많이 들일수록, 파고들수록 궁극에는 a본과 b본 사이의 차이와 유사점을 논하게 되는 고문서학과 같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2022.02.21 17:47
2022.02.21 18:18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원본이 궁금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네요. 예를 들어, 에제키엘서(에스겔서)를 보면 하느님이 비행접시 같은 것을 타고 등장하는데, 과연 원문이 어떻게 쓰여있길래 저렇게 표현했을까하는 궁금증... 그러다가 그걸 위해 언어를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에 포기. 그냥 영문으로 된 것만 보고 마는 정도랄까요.
희랍어 같은 경우는 주석성경을 쓴다면 자주 눈에 띄기도하고 코이노니아라든가 디아스포라 같은 단어는 어쩐지 멋져보여서 어떻게 읽는지 알아내기위해 지루한 설교시간에 열심히 성서를 뒤적거렸던 기억이 나요. ㅎㅎ 원류에 가까운 알파벳이라 히브리어에 비하면 금세 배울수있어서 재미있었지요. 진지하게 고대희랍어나 히브리어들을 익히신 분들이 보면 가소롭겠지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