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송, 생각나는대로.

2022.01.23 01:01

잔인한오후 조회 수:501

볼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듀나님의 [영화 내내 은하가 얼마나 유능한 전문가인지를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라는 부분에 꽂혀서 시간이 나길래 봤습니다. 아쉽지 않게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 이 뒤로 영화 내용을 대부분 이야기 합니다. )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차량 액션은 크게 두 번 정도 나오고 한 번은 서사와 크게 연관되지 않는 초반에 나오더군요. 어떻게 잘 되었으면 클라이막스에서 차량 액션 3파전이 구성될 수도 있었는데, 재원이 부족했는지 국정원 팀이 늦게 도착해서 크게 하는 일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대신 클라이막스엔 몸을 쓰는 액션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광원을 잘 써먹으며 찍었더군요. 여성 원톱의 액션 영화는 가끔 물리적인 한계를 무시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주 크게 신경쓰진 않지만) 특송에서는 그런 것도 잘 살려서 좋았습니다.


박소담의 액션 연기는 좋았으나, 은하와 서원이 처음 대면할 때는 감정선이 아쉽더군요. 아빠가 된통 당한 상태에서 (이미 상대방의 차에 치임) 낯선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태고 대사도 그리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어떻게 바꿀 수 있었을지 싶어 아쉬웠습니다. ( 트림 농담은 특히 별로였어요. ) 엘레베이터에서 서로 양쪽 모서리에 기대고 있을 때부터 감정선이 풀리면서 그나마 따라갈 수 있더군요. 고양이 자랑도 좀 풀리고. ( 하지만 또 남자친구 타령부터는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남여 붙으면 꼭 그런 대사 넣어야 합니까... ) 아역이 여자아이였다면 시나리오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줌 씬은 바로 빠지지 않았을지.


눈여겨 보게 되었던건 송새벽의 악역 연기었습니다. 평이한 한국 영화의 악역을 맡았지만, 뭔가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첫 등장 씬에서 영화는 경필에게 친절하게 골프채를 쥐어줍니다. 한국영화에서 저런 희희낙락 모든걸 가볍다는듯 구는 캐릭터는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자신이 얼마나 괴팍한 존재인지 표현합니다. 아마 다른 영화였으면, 돈을 제대로 간수 못했단 사실을 알았을 때 갑자기 골프채로 여러 번 후려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필은 그런 식으로 굴지 않습니다. 골프채는 어느새 어딘가로 사라지고 의외의 행동을 하죠. 이후에도 대사 등에서 미묘하게 상대방을 동등하게 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독특한 느낌을 주더군요. 물리적인 폭력을 잔혹하게 휘두르거나 하지 않는 식으로 인물을 유지시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백사장의 고문신은 이상하리만큼 잔혹하게 튑니다. 과한 폭력을 맡은 두식이 퇴장하고 난 이후에도 왜 그렇게 잔인하게 다루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영화 클리셰로, 의자에 앉은 피해자라는 주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들 누군가를 의자에 앉히면 그렇게까지 내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만큼 다루는 것인지. 아무래도 꾀를 써서 묶인 손을 자유롭게 한 후에 샷건을 날린다는 논리적 흐름을 구성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굴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손가락을 잘라서 열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 그리고 분명 쇼부를 친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 맞은 것인지. )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게 극 후반까지 긴장감을 줬던 것은 은하와 서원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여성과 어린 남아가 던져졌는데, 설마 1. 집에서 어찌 어찌 데려다 기른다. (아, 안돼!... 그게 최선이야?) 2. 몰릴 때로 몰려서 둘 다 외국으로 도망가 같이 지낸다 (조금 예상외지만 1보다 더 나쁜데?) 3.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서로 알아서 지낸다. (괜찮군. 여성만 봤다 하면 매 번 돌봄을 떠올리는 생각 너무 지긋지긋... 이미 남자친구 운운이 나와서 3은 물 건너 갔나 싶었습니다) 이었는데 다행히 3으로 가더군요. 떠올려보면 국정원이 몰아 닥쳤는데 함께 말려 들어갈 필요는 없었겠죠. (생각해보니 4. 시간이 꽤 지나 서원이 한참 커서 은하 앞에서 차를 멋지게 훔쳐 운전 솜씨를 선 보이며... 으아악)


이 감독의 다음 액션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듀나님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같이 [쿨한] 캐릭터들을 유지해줬으면 싶네요. 한국에 신파는 있을만큼 있으니까. 감정선 부분도 좀 더 다듬었으면 좋겠군요.


P.S. 고양이 집사로의 묘사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 중에 가장 뛰어났습니다. 감자를 캐는 장면 같은건 없었지만.


P.S.2. 관련 인터뷰 기사들( 링크 )을 읽어보고 있는데.... 


Q - '특송2'가 기대되는 엔딩이다. 훌쩍 큰 '서원'과의 훗날 에피소드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박소담) - '특송2' 저도 너무 기대되는데요. '서원'이가 자란다면, '은하'가 자신을 지켜준 것처럼 멋진 모습으로 '은하'를 지켜주지 않을까요?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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