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시 한 편

2021.11.24 07:21

어디로갈까 조회 수:619

1. 어제,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접하노라니 옛날 중국에는 다섯가지의 형벌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죽이는 '사형', 발을 자르는 '단족형', 코를 베어내는 '비절형', 몸(특히 얼굴에) 먹을 넣어 표를 하는 '입묵형', (남자)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궁형.'
그에게 한국은 아무 형도 실행하지 않고 90 장수를 누린 후 순조롭게 저세상으로 떠나게 해줬군요.  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회자된 농반진반의 운동인 9988234 -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만 아프고 죽자- 를 실천해낸 셈입니다. (먼산)

2. 고딩시절, 명절 식탁에서 아버지가 난생처음 제게 준 맥주 잔을 비우며 여쭤봤어요. 전두환을 주제로 한 정치인들의 한담이 TV에서 방송되고 있었거든요.
- 혁명과 구데타의 차이가 뭐예요?
"혁명이란 제도의 변혁이야. 왕정제를 공화제로 한다든가, 공산제를 자본제로 한다든가 하는 것. 현재의 법률을 그대로 승인하면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겠다고 자각/판단했을 때 쓰는 비합리적 수단인 셈이지.
구데타는 체제는 그대로 물려받고 권력만 강탈하는 거야. 헌법에 따라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데도, 임기가 끝나기 전에 빼앗아버리는 것. 헌법유린이지." 

- 어느 쪽이 애국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요." 
" 모든 국민의 첫의무는 헌법수호야. 엄청난 무력을 지닌 군대가 정부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구데타를 일으키면 그 비극은 국민이 다 감당해야 돼. 악을 선으로 알고 실천하는 것도 두렵지만 악을 악인 줄 알면서 행하는 자는 더 끔찍하지. 만인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니까."
-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나네요. '인간에 의한 짐승의 사고가 작동하는 상황이 정치다.'
"어이 따님, 독서목록에 좀 문제가 있는데?"

3. 전두환이 회고록에 자신은 화장된 후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있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다는 기사를 읽노라니, 시 한편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이차대전이 끝난 직후 황량한 폐허 위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남기지 않고 썼다는 글이에요.
노트에다 또박또박 기록하던 시절에 읽고 번역해뒀던 거니 미흡한 점은 감안하시기를.... 

- 그의 시체를 땅 위에 눕히지 말라
그의 죽음은 땅에서 쉴 수가 없다
그들의 시체는 관 속에 넣어 직립하게 하라
지상엔 그들의 무덤이 없다
지상엔 그들의 시체를 수용할 무덤이 없다

나는 지상의 죽음을 알고 있다
나는 지상의 죽음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도 그들의 죽음이 무덤을 차지한 예를 나는 알지 못한다
강물에 흘러가는 소녀의 시체, 사살된 작은 새의 피
그리고 학살된 자의 수많은 비명 소리가
지상으로부터 쫓겨나 망명자가 되는 것이다

지상엔 그들의 나라가 없다
지상엔 그들의 죽음에 합당한 가치를 가진 나라가 없다

그의 시체를 불태우지 말라
그들의 죽음은 불태워서 안 된다
그의 시체는 문명(역사) 속에 매달아 놓고 썩혀야만 한다
우리에겐 불이 없다
우리에겐 시체를 태울 불이 없다

나는 그들의 문명을 알고 있다
나는 사랑도 죽음도 없는 그들의 문명을 알고 있다
어느 집을 가봐도 그들은 가족과 함께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 어머니가 그를 낳은 기쁨의 고통도
마음의 모든 문제도 모른 채 쫓겨나
그들처럼 병든 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엔 사랑이 없다
세상엔 병든 자의 사랑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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