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3 13:24
- 2019년 작품이고 런닝타임은 2시간 11분. 장르는 뭐 막 뒤섞여 있는데 일단 가장 큰 덩어리는 스릴러구요. 스포일러 없을 겁니다.
(브라질 마약 카르텔...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구요.)
- 영화가 시작되면 쌩뚱맞게 우주가 보입니다. 그러다 궤도에 떠 있는 인공위성도 보이고, 지구도 보이고, 브라질 땅이 보이고... 하다가 장면이 바뀌면 낡아빠진 트럭에 탄 남녀의 모습이 보여요. 지명수배된 자기들 친구 얘길 주절주절하다가 도로에 널부러진 빈 관짝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뭐... 암튼 이들의 목적지는 '바쿠라우'라는 외딴 마을이고 그 마을의 족장쯤 되는 할매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겁니다. 남녀 중에서 여자 쪽이 손녀인 듯 하구요.
이 마을의 상태는... 참 희한합니다. 학교도 있고 핸드폰도 터지고 학교 선생은 태블릿으로 수업도 합니다. 애들은 아디다스 옷 입고 뛰어다니구요. 그런데도 동네 분위기는 21세기 근미래(시작할 때 '몇 년 후'라고 나옵니다)는 커녕 무슨 아마존 깊숙한 곳에 숨어 사는 부족들 느낌. 할매 할배들 중엔 정말 문자 그대로 누드로 돌아다니는 양반들도 있어요. 할아버지 고추도 나오고 막(...) 젊은이들은 그래도 요즘 사람들 같지만 그 중간 연령대 분들은 또 20세기 중반쯤 되는 느낌이구요.
'황폐하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느낌이 많이 달라요. 대체로 황폐한 게 맞긴 한데 사람들은 그냥 멀쩡히 버티며 살고 있어요. 근처의 댐을 차지한 나쁜 놈들이 물 공급을 끊어 버려서 한참 먼 곳에서 트럭으로 물을 실어다 날라야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삽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되게 분위기도 좋아요. 누가 대장 행세하고 이웃들 갈구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있는 거 나눠 먹으면서 화목하게 잘 사네요. 어쩌다 가끔 들르는 외부인들에게도 친절하구요.
그런데 갑자기 마법처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구글 지도에서 이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핸드폰이 안 터지네요? 하늘엔 아담스키 UFO처럼 생긴 드론이 붕붕 날아다니고. 한밤중에 인근 목장의 말들이 뛰쳐나와 마을을 달리구요. 그 시국에 문득 굉장히 수상쩍은 바이커 커플이 나타나 어슬렁거리구요. 그러다 결국에는 잔혹하게 살해된 주민의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 사실 이 마을 사람들이 처한 위기가 어떤 것인지는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 소개글이나 리뷰에서 언급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영화에서 그게 구체적으로 밝혀지는데 50분이나 소요가 되고, 그래서 그 동안은 알쏭달쏭 궁금함으로 보내는 편이 훨씬 재밌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글에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시작은 무슨 브라질 민속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느낌입니다만.)
- 기본적으로는 웨스턴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을 갑자기 나타난 악의 무리들이 위협하고. 결국엔 마을 사람들 중 그나마 젊고 능력 되는 애들 중심으로 그에 맞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뭐 그런 스토리구요. 목장도 나오고 말도 나오고 총도 나오고 최후의 결전도 나와요. 다만 현지색이 엄청 강한 브라질 깡촌 버전 웨스턴이랄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브라질 깡촌 버전'이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전반부 거의 한 시간 정도는 브라질 오지의 부족민들을 탐사하는 다큐멘터리 보는 느낌으로 느긋~하게 이 동네 풍경, 동네 사람들을 보여줘요. 결국 이 또한 아주 서서히 시동을 거는 이야기인 것이구요.
동시에 사회/정치 풍자극인데요. 기본적으로 '압제자 vs 민중'의 대결 구도로 가는데 그게 그냥 보편적인 세팅이 아니라 역시 브라질 색채가 강해요. 전 무식해서 브라질 현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대충 주워들은 내용들이나 영화 속 디테일 같은 걸 감안할 때 실제 브라질 민중들의 역사나 현실을 상당히 많이 반영한 이야기라고 짐작을 하게 되더라구요.
(갑자기 분위기는 전원 SF??)
- 다만 여기에 비현실, 초현실적 분위기가 강하게 들어갑니다. 대표적인 게 UFO 드론이죠. 진짜 UFO는 아니지만 생긴 게 정말 너무 그럴싸한 UFO라서 이게 등장해서 붕붕 날아다닐 때마다 '부족' 갬성 낭낭한 바쿠라우의 풍경과 어우러져 괴상한 분위기를 조성해요. 현대인인 듯 원시 부족민인 듯 뭔가 마구 뒤섞인 주민들 풍경도 생경하구요. 거기다가 나중에 등장하는 빌런들도 희한합니다. 그들의 정체나 목적 같은 건 B급 장르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인데, 이들의 묘사가 전형적이지 않거든요. 되게 살벌한데 동시에 대놓고 모자라고... 그런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집단 또한 브라질 현실에 대한 비유가 아니었나 싶구요.
암튼 영화가 뭔가 시작부터 끝까지 '혼돈의 도가니탕'입니다. 얼개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뻔한 이야기인데 그걸 갖은 디테일과 양념을 쳐서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상한 볼거리로 만들어내는 거죠. 그리고 그 볼거리가 상당히 매혹적입니다. 보다보면 '뭔진 모르겠지만 빠져드네'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ㅋㅋㅋ
(전반부만 넘기면 화끈한 장르물의 재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렇게 희한한 볼거리이지만 동시에 장르물이구요. 장르물로서 해야할 일은 또 다 잘 해 줍니다. 우리의 선량한(?) 바쿠라우 주민들은 결국 항전을 결심하고, 막판에 정말 화끈하게 반격을 해줘요. 거의 두 시간 동안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 그리고 그때 쯤에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정치적 메시지가 선명하게 들어가는데 이게 참 잘 섞여들어가서 마지막 액션의 쾌감을 더해주고는 이어지는 마무리 단계에서 살짝 울컥하는 감동 비스무리한 것까지 느끼게 해줍니다. 두 시간을 보면서도 그런 류의 기분이 들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막판에 갑자기. 굉장히 기억에 남는 멋진 결말이었어요.
(주인공입니다. 정말로 특별한 주인공 없이 이 동네 주민 집단을 주인공으로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에요. 파워 투 더 피플!!)
- 스포일링을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 하자니 정말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영화가 좀 소화하기 버거운 감도 있고 해서 대충 마무리하겠습니다.
영화 홍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라 문구들 중 하나가 '이전에 없었던!!!' 이잖아요. 진짜로 그런 기분이 들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평범한 B급 감성 장르물에 브라질의 정치, 사회, 전통 문화와 역사 등등 온갖 브라질스런(...) 것들을 다 때려박고 쉐킷쉐킷해서 결과적으로 아주 독특한 물건을 만들었구요.
보통 이렇게 독특함으로 승부하는 영화들의 경우엔 정작 자기가 선택한 장르의 재미를 살짝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환 양쪽 다 잘 챙겨내서 재미도 좋습니다.
덧붙여서 거의 선동에 가까운 결말의 장면들은 참 갑작스럽지만 감동적이기까지 했다는 거. ㅋㅋㅋ
의도치 않게(?) 되게 재밌게 봤어요. 아주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보다보면 대부분 적응해서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 싶고. 좀 튀는 영화 즐기시는 분들에게 강권(?)해드립니다.
(보시다보면 상당히 당황하게될 장면. 이게 뭐지? 싶은데 이런 식의 장면이 계속 나와요. ㅋㅋㅋ)
+ 넷플릭스 한달 값보다 비싼 올레티비 부가 서비스가 던져준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 한 달에 서넛만 걸려도 그 돈 안 아깝긴 합니다만. 당연히도 이런 영화는 흔치가 않은 것이라 서비스 유지 여부를 상당히 자주 고민하곤 합니다.
++ 특히 맘에 들었던 건 빌런이 이 마을 박물관에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전부터 주민들이 자꾸 박물관 박물관 거리면서 자랑스러워하길래 도대체 뭐가 있나 했더니만... ㅋㅋㅋㅋ
2021.11.13 13:43
2021.11.13 13:57
본인 내키는 것만 보고 살아도 시간이 모자랄만큼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니까요. 내키지 않으신다면 안 보셔도 돼요. 하지만 이 영화 재밌습니... ㅋㅋㅋㅋ
2021.11.13 13:45
++ 그러게 친절한 시골 사람들이 뭔가 권하면 한 번 가보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죠 ㅋㅋㅋ
19년 당시 기생충, 타여초 등의 다른 화제작 등에 묻혀서 상대적으로 좀 덜 알려졌었지만 상당한 문제작이었죠. 저도 올해 보고나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구요. 장르 여러개 섞는 것도 이정도 솜씨로 해야 제대로 하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초중반까지는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는 내용인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만들다가 중간부터 대충 감이 잡힌 뒤로는 마을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걸 관객입장에서 알게 되면서 참 이래저래 똥줄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클라이막스에 터뜨리는게 대단했어요.
동네 의사 역할(그게 숙취란닼ㅋㅋ)로 나오신 분이 과거에 유명했던 소니아 브라가라는 분이시던데 전 잘 몰랐습니다. 나이도 많이 드셨고 거의 쌩얼로 나오는데도 왕년 미모와 포스가 살아계시더군요. 초반 분위기 엄한 씬에서 도대체 왜그러시나 싶었는데 ㅎ
이분도 참 반가웠어요. 칸 영화제 프리미어 당시 기립박수 받고 우셨다던데
2021.11.13 14:06
그러게요.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며 그렇게 열심히 추천을 해줬으면 잠깐 스치기라도 했어야죠. 다 자업자득... ㅋㅋㅋㅋ
되게 무심하게, 장르 영화 아닌 척하면서 은근슬쩍 챙길 걸 다 챙겨가다가 막판에 쏟아 내니 진짜 무슨 에너지 대폭발! 느낌이었죠. 클라이맥스 액션이 사실 되게 짧은데 허망하단 느낌이 안 들었을 정도로.
소냐 브라가는 이름이 이상하게 익숙해서 찾아보니 '거미 여인의 키스' 에서 거미 여인으로 나오셨던 분이더라구요. 이 영화도 하도 오래돼서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관계로 떠오르는 추억은 없습니다만. ㅋㅋ 그리고 조카가 요즘 헐리웃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시네요. 최근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나오셨고 제가 본 '뉴 뮤턴트'에서 나아쁜 의사 선생님이셨고...
우도 키에르도 참 장수 배우죠.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인데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이 뜸할 틈이 없네요.
2021.11.13 13:54
김혜리 기자가 '둘이 보다가 하나가 없어져도 모르는 재미'라고 평해서 관심갖고 있었던 영화입니다.
역시나 좋은가 봅니다. 얼른 보고 싶네요.
2021.11.13 14:00
2021.11.13 14:08
괴상하고 낯설지만 또 결말까지 보고 나면 삐뚤어진(?) 영화는 아니고 그렇습니다. 한 번 보세요. 장르 영화지만 마냥 장르물 분위기로 가질 않고 담고 있는 떡밥들도 많아서 좀 건질만한 알맹이를 추구하는 분들도 재밌게 보실 수 있는 영화에요.
2021.11.13 19:28
2021.11.13 19:30
2021.11.13 22:00
아 전 그 악당들 걍 캐릭터 자체가 허접하길래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안 하면서 봤어요. 원래 외국인들 연기 잘 구분 못하기도 하구요. 그게 발연기라 더 허접해 보였던 건가 보네요. ㅋㅋ
2021.11.14 00:53
애초에 저분 제외하고는 비싼 배우들 데려올 처지가 안되서 일부러 약간 캐리커쳐처럼 디렉팅을 한 것 같기도 해요. 뜬금없이 ㅅㅅ하는 씬도 그렇고 ㅋ
2021.11.14 02:53
싹 다 퇴장도 허무할 정도로 심플했던 걸 생각하면 말씀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ㅋㅋㅋ 맡은 역할들이 역할들이다 보니 딱히 존중해 줄 필요도 없고 뭐!!
2021.11.13 22:15
티비에서 검색해봤어요.
무료일때 보겠습니다.
2021.11.14 02:53
네. 뭐 저도 추가금 없이 구독 서비스의 컨텐츠로 그냥 본 거에요. ㅋㅋ
2021.11.13 23:02
2021.11.14 02:57
영화 보고 나서 좀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 만든 감독이 원래 브라질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장르 영화들을 주로 만들던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확실히 뭘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훨씬 이해가 쉬워지고 재미도 더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