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에다 적어 놓은 2008년은 극중 배경 시간이고 영화는 올해 6월에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런닝타임 87분이고 스포일러... 랄 게 없는 영화인 것인데요. 어쨌든 결말을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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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 영화 포스터에 큰 걸 바라진 않지만 좌측 하단의 거대한 '19'는 진심 지우고 싶습니다)



 - 주인공 소정은 사는 게 참 팍팍한 특성화고 학생입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삼이라 취업해야 하는데요. 아직 딱히 좋은 일자리를 찾지는 못했고 보아하니 성적이든 뭐든 훌륭할 게 없어서 좋은 일자리는 그냥 못 찾을 것 같구요. 또 집안 꼴이 개판이에요. 옛날부터 가정 폭력을 휘두르던 빌런 아빠는 사라졌지만 아직 죽지도 않아서 다시 돌아올까 두렵구요. 반평생을 그런 아빠에게 휘둘렸던 엄마는 정신도 몸도 완전히 폐인 모드라서 오히려 본인이 엄마를 돌봐야 합니다. 당연히 경제 사정은 최악이고 눈꼽만한 정부 지원금 빼면 어디 도움 받을 데도 없죠. 그래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다가 한탄하듯 '자유롭게 음악이나 하며 살고 싶다'고 글 적으면 또 나쁘고 부지런한 놈이 들어와서 익명으로 '돈은 어쩔 건데?ㅋㅋ'라고 비웃는 댓글이나 달고 말입니다.


 그러던 소정이 결국 어떻게든 박봉에 최저 임금도 안 챙겨주는 일자리나마 하나 구해서 용돈 벌이라도 시작하고, 그러다 우연히 엮인 보기보다 성격 좋은 남자애랑 썸도 타고, 함께 음악 공부도 시작하고. 이러면서 조금씩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딱 하나만 빼구요. 사실 엄마가 결국 죽어버렸는데 이거 알려지면 폭력 아빠 밑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겁나서 욕조에 옮겨 놓고 문을 청테이프로 발라 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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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주인공 소정양이 교복 안에 입고 있는 저 티셔츠는 어디 것일까요. 라는 퀴즈를 내면 많이들 쉽게 맞히실 듯.)



 - 청춘물. 성장물. 제가 이런 거 참 안 좋아합니다만. 굳이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다들 짐작하시겠죠. 줄거리 소개의 마지막 문장 설정 때문입니다. 뭔가 흥미롭잖아요. 엄마의 시체를 숨기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청춘물이라니. ㅋㅋㅋ


 근데 뭐 보면서도 예상했지만 이게 막 스릴러 같은 분위기로 가질 않습니다. 전혀. 중간중간 주인공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부분들이 나오긴 하는데 역시 장르물 분위기는 아니구요. 뭐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제가 기대를 잘못한 거죠. 그렇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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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는 좋았는데 주인공 앉아 있는 구도나 폼이 너무 갬성 터지지 않나요.)



 - 음. 뭐랄까. 이런 영화는 대체로 둘 중 하나잖아요. 주인공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아주 '날것 그대로 느낌'(이 표현 정말 식상하지 않습니까 ㅋㅋ)으로 강렬하게 보여주면서 꿈도 희망도 없게 몰아가거나. 아니면 그냥 좀 뽀송뽀송하게 진행하며 희망을 주거나. 이 영화는 그 중에서 후자입니다. 


 시작부터 그래요. 싸이 갬성 낭낭한 배경 음악과 함께 주인공들 생각을 자막으로 띄워보는 연출부터 그렇구요. 사는 게 아무리 팍팍하고 빡세도 이어폰 귀에 꽂고 버스 창가에 앉아 고개를 45도로 꺾고 상념에 젖은 표정 좀 지어주면 어떻게든 다 해결될 것 같은 느낌... 뭐 이런 게 좀 많아요. 그렇다고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가볍게 그리는 건 아닌데, 그걸 극복해내려는 정서는 살짝 싸이 갬성이...


 근데 이런 뽀송뽀송한 분위기랑 욕실에서 썩어가는 엄마 시체라는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잘 맞지가 않습니다. 뭐 '이렇게라도 평생 처음으로 자유를 느껴보는 게 너무 좋았어!'라는 절규로 어느 정도 합리화를 하긴 하지만, 그거야 주인공 사정이고 영화의 톤은 그거랑 좀 달랐어야 하지 않나 싶었네요. 아주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골라 놨는데, 수습을 잘 한 것 같단 느낌은 안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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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송뽀송!!)



 - 좋은 점도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일단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분이 좋아요. 연기도 좋고 마스크도 역할에 잘 어울리구요. 보다보면 캐릭터가 무리해서 불쌍한 척을 안 하는 데도 어이구 저 딱한 것을 어쩔꼬...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친구역을 맡은 배우분도 괜찮았구요. 둘 다 적당히 현실적인 느낌이 묻어 있어서 영화와 잘 맞았습니다.


 제작비도 모자랐을 텐데 2008년이라는 어중간한 과거 배경도 잘 살렸어요. 보다보면 그냥 괜히 웃음이 나오는 디테일들이 많습니다. 주인공들 옷차림도 그렇고 미키 마우스 mp3라든가 싸이월드, 캔모아의 생크림 찍어 먹는 토스트 등등. 


 그리고 그 샤방함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주인공의 암담한 처지는 잘 와닿는 편입니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착한 남자애랑 엮여서 그렇지 정말 밑도 끝도 없고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는 건 충분히 보여지고, 연출도 준수한 데다가 또 배우가 잘 해내 주니까요. 어찌보면 '극한까지 밀어붙이자!'는 식의 부담스러움이 없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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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벌새' 생각이 나더라구요. 과거 배경 10대 여학생의 성장담이란 걸 제외하면 공통점은 전혀 없습니다만.)



 -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를 각잡고 하기엔 영화가 좀 과하게 착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알겠는데, 그래도 막판에 갈등과 위기들이 좀 너무 쉽게 풀리는 느낌이어서요.

 좀 많이 어두운 티비용 청소년의 날 특집극 느낌이랄까. 뭐 제가 박화영, 꿈의 제인 같은 류의 살벌한 청소년 영화들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때깔도 좋고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당도(?)가 제겐 좀 높았어요. 특히나 그 살벌한 설정에 비해서 말이죠.

 어쩌면 감독 의도대로 2008년에 십대의 마지막을 보냈던 분들에게는 좀 더 와닿을 수도 있겠죠. 전 그때 이미 30을 훌쩍 넘겨버린 아저씨라 그런지 별로 그 시절 감성에 취해지지가 않더라구요. 하하;


 ...적고 보니 이게 결론이겠네요. 그래서 이걸로 마무리.




 +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니 '젊은이들 얘길 하고 싶었는데 내가 요즘 젊은이가 아니라 최신 감성은 표현 못할 것 같아서 내가 그 나이였던 시절로 2008년을 골랐다'라고 하네요. 왠지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선택이기도 하죠. 일단 자기가 잘 아는 것부터 잘 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감독님 장편 데뷔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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