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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밥을 먹이는 도중 찍은 사진입니다. 눈이 몽롱해지면서 숨소리만 쌕쌕 내고 젖병을 정신없이 빠는 게 너무 귀엽더라구요. 사실 말이 "빠는 거"지 조카 입장에서는 거의 들이킨다에 가까웠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먹길래 혹시 자기 의지랑 상관없이 들어오는 분유를 허겁지겁 삼키는 건 아닌가 싶어 젖병을 살짝 빼려고 하니까 입으로 쭉 당기면서 안놔줍니다. 동생이 말하길 그냥 알아서 먹으니까 젖병을 입에서 빼진 말라고... 만약 먹고 싶은데 젖병을 입에서 억지로 빼면 정말 헬게이트를 보게 된답니다. ^^; 다 먹을 때쯤이면 젖볍에 분유가 남아있어도 먹질 않고 혀로 밀어내더군요. 그렇게 먹고 트림할 때까지 눕혀서 등을 토닥이면 뭐가 또 마음에 안드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다가 울 기미를 보입니다. 끄흑, 하고 트림을 하면 그 때는 놀게 놔두는데 혼자 낑낑대며 오른쪽으로 돌려다가 몇번씩이나 토하고 그래요. 


누군가는 어렸을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다 케어를 해주던 기억만 있으니까 확실히 편했던 것 같기도 하죠. 이것저것 칭얼대고 심지어 요구사항을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려도 집에 있는 사람들이 다 조카를 달래주러 신경을 기울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또 왕자가 따로 없는데, 조카가 노는 걸 보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그의 울음과 그를 향한 케어는 오히려 그의 부자유를 반증하는 반응들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제 조카는 정말이지 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저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목을 못가눠서 늘 목을 지탱해줘야 했어요.


낑낑대면서 오른쪽으로 돌려고 하는 조카를 보니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근육이 다 자라지도 않아서 제 조카는 몸도 못가누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기한테 편한게 산다는 말은 엄청난 실례일 수도 있겠죠. 그는 몸을 움직이는데만 해도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들, 팔을 들고, 엎어져있다가 옆으로 몸을 돌리고, 누워서 목을 들고, 팔을 허공에 뻗는 그런 액션들을 제 조카는 아둥바둥 해야합니다. 심지어 불가능한 행동들도 있어요. 그는 아직 일상으로 편입되기에 신체가 불완전합니다. 아직 말도 못하고 몸도 못움직이는 그에게 악조건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울면서 소리지르기밖에 없습니다.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아기인 조카에게 편할 리가 없겠죠. 당장 잘 때도 혼자서 빼랙빼랙 소리지르가다가 지쳐서 자는 걸요.


조카의 생활은 전적으로 그와 그의 몸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입니다.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든 상황을 단지 그의 성대라는 비상벨을 써서 해결해야 할 뿐입니다. 조카를 보고 있자니 새삼 우리의 존재와 몸 사이에 얼마나 간극이 있는지 곱씹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우리의 몸은 가동범위에 한계가 있고 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혹은 절대적으로 몸의 무권한과 부자유는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잠만 잘못 자도 우리의 몸은 금새 삐걱대고 팔이 저리거나 허리가 뻐근하거나 하루종일 찌뿌둥해야합니다. 어쩌면 모든 신체는 사실상 근본적으로 불수의근으로만 이루어져있는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신체는 언제나 오작동과 고장의 가능성을 생각보다 높게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20대가 지나가면 다들 척추에 기본적인 이상은 달고 있죠. 거북목이 아니고 허리가 튼튼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련지. 어른은 그냥 소리내지 않고 그 불량상태를 감내할 수 있을 뿐이죠.


조금 더 생각을 넓혀나가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몸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그 동사의 형태를 의심하게 됩니다. I move my body라는 문장은 정확한가요. 우리의 몸은 움직이거나 움직일 수 있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그런 목적어로만 그치는 것인지요. 제 조카는 자기 몸을 쓰고 움직이는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갓난아기인 제 조카가 자기 육신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호기심과 불안을 육체가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넘치는 생기는 그의 육체에 제한당합니다. 이렇게 보면 육체가 주어이고 나머지가 목적어죠. 안그래도 저는 얼마전에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서 한 삼일을 고생했습니다. 이 때 저는 제 폐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딸꾹거리는 제 몸에 제가 휘둘린 것일까요.


몸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오만할 수 있음을 인정해봅니다. 어쩌면 몸은 우리가 마징가처럼 머리 부분에 존재의 핵심이 내려앉아 나머지를 전부다 조종하는 그런 개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척수는 머리부터 허리 쪽까지 쭉 뻗어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조종신호를 보내기 위한 체내의 선일까요. 저는 이 척수가 몸에 내린 뿌리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뿌리내린 하나의 터전이자 공간에 더 가깝진 않을까요. 어떤 인간도 자기 마음대로 금새 땅의 질을 바꾸며 모래로, 흙으로, 자갈밭으로, 쉽사리 갈아엎지 못합니다. 지난한 시간과 여러 명의 도움을 통해 기존의 땅을 자신이 원하는 땅에 가깝게 만들 수 있죠. 땅을 움직이거나 축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원래 그러한 땅에 인간이 적응하고 맞춰갈 뿐이죠. 인간의 의지에 따른 땅의 변화도 절대 쉽고 편한 선택은 아닙니다. 제 조카가 자라나는 근육을 계속 토해가며 무의식적으로 훈련해나가듯이, 우리도 습관을 통해 우리의 몸에 맞춰나가는 거죠.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잡이인대로, 왼손잡이가 왼손잡이인대로. 우리의 몸이 우리의 몸의 결대로 자라나고 습관대로 뻗어나가듯이.


이 오만은 우리가 "장애"라고 부르는 개념에도 맞닿아있습니다.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못하는" 이라는 합의되는 이 사회적 개념은 몸을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그 몸을 통제할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으로 나누면서 정도의 차이를 하나의 계급으로 환산합니다. 이것을 땅으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땅을 유용함의 기준으로만 나눌 수 있을까요. 비옥한 땅과 그렇지 못한 땅, 흙이 많이 깔린 땅과 메마른 모래가 많은 땅, 지하수가 솟아나는 땅과 그렇지 않은 땅 등으로만 나누고 그것의 우열을 가리는 게 맞을까요.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편의로 따져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땅은 땅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 혹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유용함의 기준으로 따지면 해변의 백사장이나 뻘은 지독하게 안좋고 나쁜 땅입니다. 거기에는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육지식물도 나지 않고 물이 계속 드나들며 그 물은 인간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떄문입니다. 그럼에도 바닷가는 그냥 바닷가로 존재합니다.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의 몸도 그러할 것입니다. 어떤 몸은 의식이 자리잡고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데 대단히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몸이 그렇기에 부정당해야 하고 동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죠. 그냥 그런 땅이 있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서로의 몸을 의식 속에서 스쳐지나가고 눈으로 밟아나갑니다. 세로 2미터가 되지 않는 땅들은 각각의 풍경 혹은 발자국을 약속한 곳으로 서로 통과해나갑니다. 


타인의 몸을 감히 교정하거나 나누려하지 않듯, 우리가 가진 몸을 몸대로 인정하면 조금 편해집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정말 마르고 싶었고 그래서 제 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고요.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이었는지 지금 압니다. 인간과 몸의 관계를 따지기 전에 인간이 땅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친구가 되는 것이겠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어도 완벽한 변형이 불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자리잡기란 개념을 잊어선 안되는 그 기본적인 관계맺기 말입니다. 만약 친구를 이래라 저래라 이게 맞는 거다 하면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어떤 즐거움도 다 포기하게 한다면 그 친구는 당연히 힘들어서 저를 떠나겠죠. 아무리 거름을 많이 주고 밤낮 땅을 갈아엎어도 땅이 그 의지에 항복하며 뿌리내린 제 의식에 맞춰주진 않을 것입니다. 지금 있는 몸은 저와 몸과 오랫동안 쌓은 관계의 결과물이니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혹은 재활을 위해 노력한다 해도 기다리는 시간은 필요할 것이고요.


최근 1년간 살이 엄청나게 쪘습니다. 일단 야채를 먹는 버릇을 들이고 잠을 푹 자는 습관부터 들이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갑자기 다 끊고 양배추와 닭가슴살로 2달에 10킬로를 빼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때는 그렇게 탄력을 받을 수 있었고 제가 제 몸에 질려서 그랬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저는 그렇게까진 독하진 못하니까요. 제 조카는 분유를 피와 뼈와 살로 바꿔가며 금새 우렁차게 자라겠지만 저는 조금 더 느긋해야 할 겁니다. 뜻하지 않게 기름진 땅이 되버린 제 몸을 어떻게 한번에 산뜻한 밭이나 들판으로 뒤집어엎을 수 있겠어요. 조카를 보면서 저는 제 몸과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몸에 열이 안나고 잠이 안오는 그 지독한 나날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입니다. 모든 분들이 자기 몸과 더 돈독한 관계를 맺고 몸을 존중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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