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1 14:50
- 워낙 위대하신(?) 영화라서 기본 스펙 설명이 뭔 의미가 있나 싶네요. 결말이 매우 뻔해서 스포일러가 없다고 하긴 힘든데... 설마 안 보신 분이 저 말고도 계실까요? 그리고 이런 영화에 '스포일러'라는 게 의미가 있기는 할까요. ㅋㅋㅋ
(이미지는 제 취향이 아니지만 그래도 '밝고 경쾌하다'라는 영화 컨셉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좋네요)
- 또 워낙 히트한 영화이다 보니 스토리 설명을 적을 의욕도 안 생깁니다만...
뭐 간단히 말해서 좀 거칠고 모자란 구석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본인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가진 소시민 경찰님들께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외치며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죠. 그 소시민 히어로는 황정민. 메인 빌런은 다들 아시다시피 재벌 일가의 못난 자식으로 자라다가 도덕 관념을 상실하고 심각하게 삐뚤어져버린 코리언 시네마틱 사이코패스 유아인. 그 둘을 엮어주는 건 하청의 하청의 하청 구조로 착취당하다 월급까지 떼일 위기에 처해 해결해달라고 유아인을 찾아갔다가 두들겨 맞고 자살 시도(?)를 해버린 불쌍한 가장 정웅인이구요. 음... 이만 할게요.
(쏴나이!! vs 나쁜 놈. 소시민 vs 악덕 재벌... 뭐 대략 그러합니다)
- 일단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건... 그 '투박함'이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되게 투박한 느낌이 들어요. 원래 류승완 감독이 그렇게 막 21세기적으로 세련되고 매끈한 느낌의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건 좀 격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도입부부터 그런 느낌이 팍팍 오는데, 예를 들어 황정민이 자동차 되팔이들 두들겨패는 장면도 보면 액션 연출은 매우 좋지만 그냥 그 스타일 자체가 투박해요. '자자~ 한국식 코믹 액션 들어갑니다~~' 라고 영화가 스스로 외치는 느낌이랄까요.
캐릭터들 설정도 정말 단순 무식합니다. 가난하고 인생 피곤하며 적당히 세상 때도 묻었지만 악의 없고 선량하며 자기 일엔 최선을 다하는 경찰들. 그냥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한 맥시멈으로 폭주하며 '나는 나쁜 놈이드아!!!!!'라고 외쳐대는 재벌가 사람들과 그 시종들. 보면 캐릭터들이 죄다 중간이 없고 회색이 없이 선명하게 구분이 되며 딱 '그런 캐릭터'들이 할 법한 일만 골라서 합니다.
그리고 뭣보다 이 영화의 투박함의 절정은 메시지 전달이에요. 그 절정을 이루는 황정민 아내의 경찰서 방문 장면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도 사람이고 여자야!!!!" 같은 대사를 2015년 영화에서 듣게 되다니 신선한 충격이었... (쿨럭;)
(우리 서민들의 다정한 벗이라면 짜장면 한 번은 먹어주는 게 국룰 아니겠습니까. 깔끔 떨지 말고 터프하게 팍팍 입에 넣기!)
- 근데 중요한 건, 그 투박함이 결과적으로 아주 잘 먹힌다는 겁니다.
못 만들었는데 얻어 걸렸다, 이런 게 아니구요. 애초에 설계를 그렇게 해 놓은 거고 그 설계 퀄이 좋아서 나온 결과겠죠.
그러니까 '투박' 운운했지만 디테일이 좋습니다. 모든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디테일이 좋아요.
황정민의 소시민 히어로 캐릭터도 되게 현실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좋은 부분, 안 좋은 부분들까지 캐릭터 디테일을 잘 살려 놨고 동료들 또한 그러해서 보다보면 쉽게 받아들이고 공감하게 됩니다. 게다가 배우가 황정민이잖아요. 소시민 캐릭터 최적화로 이름을 날리는 데다가 연기력도 좋은.
유아인과 그 집안 사람들이 하는 짓들도 대체로 신문 사회면에서 드문드문 접하게 되는 재벌집 자식들의 사건 사고 소식들 비슷한 내용으로 알차게 꾸며 놓았구요.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상상(?)들을 잔뜩 집어 넣어서 참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왠지 가능도 할 것 같은 느낌으로 살리는 가운데 참으로 잘 캐스팅 된 배우가 열일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스토리는 이미 잘 검증된 '왕도'를 단계별로 착실히 밟으면서 단단하게 흘러가고, 중요한 장면마다 '명대사'를 노리고 만들어진 좀 남사스럽지만 그만큰 또 효과적인 포인트 대사들이 콕콕 박혀주니... '알면서도 속는다'라는 게 딱 적절하겠네요. 의도가 뻔하고 메시지를 단순하게 질러대는데도 어느샌가 납득이 되고 몰입이 됩니다. 잘 만든 영화에요.
(와 연기 되게 잘 한다!! 라기 보단 그냥 캐스팅 자체가 넘나 적절했다는 느낌. 물론 연기도 잘 했어요.)
- 그리고 또 한 가지 현명했던 게 뭐냐면 영화의 톤입니다. 정웅인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침울해지고 다운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밝고 경쾌한 코믹 영화이고. 그래서 이런 칙칙한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져서 보는 사람 불쾌하게 만들지 않아요. 유아인이 아무리 극악무도한 짓들을 벌여도, 영화 톤을 보면 쟤가 결국 막판에 황정민과 친구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감옥 가게될 게 뻔하거든요. 그러니 그까이 거 잠시 참아주고, 쌓인 스트레스는 마지막에 얻게 될 후련한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걸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도 거기에 맞춰서 적절해요. 온갖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만 잘 보면 그게 딱 선을 넘지 않는 선으로 통제가 되거든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보기 싫은 악행들은 정말로 영화 감상이 끝난 후에 찝찝한 기분이 한 점도 남지 않을 선에서만 벌어져요. 다 보고 나면 그래서 좀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ㅋㅋㅋ
(재벌들은 이러고도 놀겠지!!? 라는 서민 환타지를 열심히 구현해서 보여줍니다.)
- 그리고 뭐... 류승완 감독 영화답게 액션이 좋습니다. 성룡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드는 도입부 황정민의 현장 소도구 액션도 재밌었고, 소장 잡으러 간 집과 그 동네 지붕들에서 벌어지는 액션도 아기자기하게 잘 짰구요. 마지막에 벌어지는 1 vs 1 대결도 단순하나마 둘의 캐릭터를 잘 살려서 관객들의 쾌감을 고양시키는 쪽으로 잘 연출돼 있었습니다.
- 더 길게 얘기할 건 없겠고.
암튼 '천만 관객!' 꼬리표를 달아도 부끄럼이 없을만치 잘 만들어진 대중 오락물이었네요.
솔직히 제 입장에선 그게 그렇게 칭찬은 아닙니다만, '흥행 대박'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이 영화만큼 그걸 정확하게 노리고 구현해낸 작품은 드물죠. 그러니 그렇게 칭찬은 아니어도 칭찬은 맞습니다(?)
뭔가 '분하다!'는 느낌을 안고 재밌게 봤어요. ㅋㅋ 혹시 저처럼 아직도 안 보신 분이 있다면 한 번 보셔도 괜찮을 듯.
+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결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후에 유아인이 그렇게 본인 죗값을 제대로 치렀을 것 같지 않거든요. 따지고 보면 그 상무 녀석은 이러나 저러나 결국 끝까지 충성을 다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확증이 없어 남에게 넘길 수 있는 걸 죄다 넘길 거라는 가정을 하고 보면... 또 어떤 결정적 증거들은 그 수집 방법에서 법적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이래저래 살살 빠져나가다 보면 결국 마약 먹고 취해서 난동 부린 부분 정도가 가장 큰 죄로 남을 것 같은데 그것도 '난동' 부분은 심신 미약으로 어떻게든 감형 받지 않을까요. ㅋㅋ
뭐 결국 아빠에게 상속 받을 부분이 거의 안 남을 거고 그게 유아인 캐릭터에겐 최대의 형벌이겠습니다만. 그래봤자 나보다 잘 살테니 뭐(...)
++ 박소담이 나오죠. 정말 말 그대로 나오기만 합니다. ㅋㅋ 역할이 클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이렇게 작을 줄도 몰랐네요. 맡은 캐릭터는 이름도 없이 '앳된 막내'라고만 적혀 있고... 하긴 그나마 박소담이 이름을 널리 알린 '검은 사제들'이 이거랑 같은 해에 더 늦게 나왔으니 그럴만도 하네요.
(앳된 막내!)
+++ 드디어 저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와 '어이가 없네?'를 실제로 보았습니다. 사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이 영화 대사인 줄도 몰랐어요. ㅋㅋㅋ 암튼 그래서 좀 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 이제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와 '쏴라인네~' 정도만 보면 한국인 자격 90% 정도는 충전 가능할 듯.
++++ 이걸 2021년에 보다 보니 좀 재밌었던 게. 그 유명한 버닝썬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가 이 시국에 개봉했다면 그 사건이랑 연결해서 얘기가 많았을 것 같아요. 되게 비슷하진 않지만 마치 그 사건에서 차용해서 고쳐 넣은 것 같은 상황들이 종종 나옵니다. 당시에 봤음 그냥 '재벌과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상상력'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미 그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밝혀져서 난리를 겪고 난 후이니...;
+++++ 사실 본지 며칠 된 영홥니다. '메이저 그롬'을 보고 나서 이 영화의 레퍼런스는 리쎌웨폰일까 베테랑일까... 라는 쓸 데 없는 궁금증이 생겨서 해소 차원에서 봤죠. 결론은 뭐 그냥 리쎌웨폰인 걸로. ㅋㅋ 그래서 리쎌웨폰이 조금 더 보고 싶어졌다는 슬픈 결론이. 정발판 블루레이 원합니다... ㅠㅜ 영국 아마존 배송은 너무 비싸요...
2021.07.31 15:03
2021.07.31 15:44
아마 제가 안 본 한국 영화들 리스트를 정리하다 보면 한국 영화의 흥행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ㅋㅋ 한국형 신파와 한국 범죄물 특유의 톤을 별로 안 좋아해서 어지간하면 스킵하거든요. 부산행은 신파 얘기 듣고, 이 영화는 범죄물이라서... 뭐 그랬구요.
모가디슈는 이런 영화가 개봉한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찾아보니 말씀대로 평이 되게 좋네요.
리쎌웨폰... 뭐 닮긴 했습니다. 경찰서 풍경 묘사라든가 손을 대선 안 될 높으신 분을 똘끼 하나로 극복해서 결국 쥐어패고야 마는 전개라든가. 그런데 리쎌웨폰 같은 류의 재미를 주기엔 류승완은 너무 '한국적'이에요. 언젠가 리쎌웨폰보다 훨씬 훌륭하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을지 몰라도, 리쎌웨폰과 같은 류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는 아마 영원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2021.07.31 16:09
'우리가 가오~ '는 '내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등으로 응용해서 잘 써먹고 있습니다.
2021.07.31 18:42
보통은 가오도 없는데 돈이 많이 부족... ㅠㅜ
2021.07.31 16:30
2021.07.31 18:43
네. 그런 사례들을 이미 너무 많이 봐서 이 영화의 결말이 그다지 시원하지 않더라구요. ㅋㅋ
2021.07.31 17:09
저는 극장에서 봤던 것 같아요. 같이 간 분들 세대도 성별도 제각각이었는데 모두 즐겁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소담이 나왔던 건 처음 알았네요 ㅎㅎ
대부분 실제 있었던 일들을 참조했다는 것이 아주 씁쓸하지요. 그분들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계신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렇게 대서특필되고 대중에게 노출된 사건의 당사자도 별 지장없이 사는데 그렇지 않은 음지의 일들을 생각하면 분한 마음 뿐입니다. 빨리 그날이 와야.
2021.07.31 18:44
내용이 큰 부담이 없고 영화가 좀 올드한 코드도 있어서 나이든 분들도 즐기기 좋았을 것 같아요.
그 날이라면 역시 피 흘리며 떠난 그 분들이... (쿨럭;)
부산행도 최근에 보고 글 올리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국내에서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이면 거의 챙겨봤을 한국영화 중에서 스킵한게 꽤 되시는 것 같네요 부당거래도 ㅎㅎㅎ
말씀처럼 투박하고 약간 심하면 촌스럽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톤이지만 이런 영화가 재미있고 히트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제대로 딱딱 살린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군함도는 정말 왜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능력있는 감독이라도 가끔 미끄러진다지만 부당거래 - 베를린 - 베테랑으로 팍팍 상승세를 타던 사람이라서 좀 충격이었죠. 최근 개봉한 모가디슈는 그래도 다시 원래 폼으로 돌아왔다는 평이 많아서 곧 보러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개봉 당시 인터뷰를 보면 한국의 다이하드, 리쎌웨폰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막상 결과물은 제가 보기엔 그런 타입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재밌기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