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7 02:42
석 달 쯤 전에 플스4를 프로로 당근마켓을 통해 구했습니다(일 년 전 듀게에도 관련 글을 남겼는데, 리플로 게임기 추천해주셨던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 플스4는 제 인생의 두번째 게임기입니다. 첫번째 게임기는 초딩시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게임기인데(패미스타 시리즈를 했던 기억이 있네요), 부모님이 사주시고 한 달 만에 다시 뺏어간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게임기가 광과민성 증후군을 일으킨다는 뉴스와 함께 사라졌죠. 덕분에 평생 피시겜만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플스4를 샀고, 이후 [언차티드 4], [페르소나 5], [라스트 오브 어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를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라오어와 라오어2 사이에 [갓 오브 워]를 조금 했는데, 하다보니 라오어2가 궁금해서 일단 접고 넘어왔습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딱 한 달 남았는데, [레드 데드 리뎀션 2]도 해야해서, 남겨둔 갓오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지금까지 했던 게임들은 다 와 갓겜들은 갓겜인 이유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빠져서 했습니다. 십 년 쯤 전에 룸메가 가지고 있던 플스3로 언차티드2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언차티드4로 개시 했는데, 마치고 나니 시간 없는데, 언차티드3도 해야하나. 이런 생각만 드네요. 페르소나5 경우, 언차티드4를 한 후 바로 다음에 한 지라, 처음에는 이건 뭔 개똥 그래픽에, 개똥 로딩인가... 싶었는데 역시 명작은 사람을 낚는 요소가 있더군요. 그 길고 긴 플레이 시간과 반복되는 전투 패턴에도 불구하고, 지겹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한 턴 더 벌어서 능력치를 올리고, 인간 관계를 발전시키고, 돈 벌어서 페르소나 개방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후 라오어를 했는데 사실 스토리 자체야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는데, 그 스토리를 참 잘 구현했더라고요. 이제 엘리는 가슴으로 낳은 제 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어서 라오어2를 했는데, 이 게임이 왜 욕을 먹었는지 알겠더라고요. 라오어가 웰메이드라면, 라오어2는 확실히 실험입니다. 1편 주인공을 시작부터 (사실상)플레이어가 죽이게 만들고, 그 복수를 하러 나서더니, 중반부터는 복수 대상인 애비의 입장이 되서 플레이 합니다. 좋아요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심지어 뒤에는 애비로 엘리를 공격하는 장면도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1편과 2편 절반을 통해 완벽하게 감정 이입이 된 캐릭터를 플레이어 손으로 직접 사냥하게 시키다니. 그 부분을 플레이 하면서 와... 너티 독은 정말 미친 놈들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 너티 독이 이 욕을 훈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전시된 올랭피아를 우산으로 찍어버리려고 했다는 것이야 말로 마네의 최고 성취 아니겠습니까.
더해서 엘리와 애비의 조후 이후, 엘리의 후일담이 나올 때, 마치 적벽의 패배 이후 도망치던 화용도의 조조처럼 생각을 했습니다. 엘리 플레이를 죽 하고, 이어서 애비 플레이를 한 후 이렇게 바로 이야기를 끝내면 안 되지. 너티 독 녀석들 실험정신은 좋은 데 마무리가 부족하구만. 내가 스토리를 짰다면, 마무리는 다시 엘리로 플레이를 하게 끔 해서 이 모든 것을 엘리가 어떻게 받아드리는지를 플레이어가 직접 느끼게 했을텐데...
그런데 너티 독은 대단했습니다. 후일담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아직 엘리의 플레이가 남아있네요. 게임 상으로 전 이제 막 애비와 레브의 보트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대단원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 지 넘나 궁금하네요.
...
방금 엔딩을 봤습니다. 전 이 지점에서 이해가 안 가는게, 이 게임이 '복수는 나쁜 것'이라고 게이머에게 감히 가르치려고 했다는 식의 비난입니다. 아니, 왜 게임이 게이머를 가르치려들면 안 되는지(그게 소위 예술이 태초부터 해온 일인데)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이 게임에 복수에 대한 가치판단이 존재하나요? 마지막 처절한 격투 장면에서 엘리는 무슨 '복수의 순환은 중단되어 한다'는 윤리적 결단, 영웅적 의지, 도덕적 깨달음을 가지고 애비를 살려주기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차마 못 한거죠. 복수의 중단이 아니라, 복수의 실패입니다.
1편의 조엘은 자기의 의지로 엘리를 구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건 잭슨으로 돌아왔을 때 엘리를 대하는 조엘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드러납니다. 거기에는 어떤 후회, 아쉬움, 쓸쓸함 같은 것이 없어요. 자신의 결단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만이 있죠. 반면에 파트2에서 엘리가 다시 텅빈 농장으로 돌아와 기타를 칠 때 드러나는 건 아쉬움, 쓸쓸함, 후회, 그리움 등 복잡한 감정의 뭉치입니다. 이건 선택한 자의 정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죄책감에 복수에 나섰지만 마지막 순간에 차마 그걸 할 수 없었던, 실패했던 사람의 정서죠.
2021.07.17 02:50
2021.07.17 13:47
2021.07.17 14:14
2021.07.17 16:03
3편과 1편 리메이크를 일단 동시에 준비 중인 것 같더라고요.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리메이크를 하겠다는 건지;;
2021.07.17 16:50
애초에 첫 발매 13개월만에 리마스터판이 발매 되었던 게임이라 놀랍지도 않습니다. ㅋㅋㅋ 리마스터와 리메이크 상술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죠.
2021.07.17 04:45
"전 너티 독이 이 욕을 훈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격하게 동의합니다
2021.07.17 07:40
2021.07.17 08:12
너티 독의 대단히 파격적인 실험같지만 사실 수십년전 코지마가 이미 MGS2에서 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죠. '유저가 원치 않는 캐릭터를 플레이하게 하는 것'. 최고걸작이었던 MGS3의 판매량을 생각해 보면 라오어3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2021.07.17 08:21
2021.07.17 13:23
맞아요 전작은 웰메이드였지만 이야기만 뚝 떨어트려 요약해보면 좀 진부한 이야기였어요. 그걸 게임플레이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서 플레이어의 이입도를 높였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같이 백인남자 캐릭터에 이입못하는 사람만 제외하면요. ㅋㅋ 그런데 2편을 하고나서 다시1편을 해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아마도 제작진은 의도하지 않았던) 레이어가 생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편과 2편이 서로 존재를 북돋는 묘한 경우예요. 이 모든것이 너티독스튜디오의 디테일 집착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겁니다. 경험에는 클리쉐가 없지요. 그 디테일들이 게임체험을 극대화하였고 그러므로 조금 식상할수도 있었던 내러티브를 아주 생생하게(그것이 좋은의미든 나쁜의미든)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은것같아요.
2021.07.17 11:57
언차티드4 정말 재미있죠. 스토리야 그렇다 쳐도, 마다가스카에서 카체이스 장면 연출은 정말 소리지르면서 플레이한 비디오게임 최고의 어트랙션입니다. 언차티드3도 재미있는데, 2랑 4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시간이 없다면 굳이 해야하나 싶은?
언차티드4 엔딩에서 엘레나와 드레이크는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물론 세계도 몇 번 구했지만) 딸에게 그 모험을 즐겁게 들려줄 수 있는 특유의 블록버스터적 무신경함이 있지요. 라오어2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나온게 아닌가 싶어요. 1편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심지어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죽였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라오어2로 해소. 지금 후일담이라고 생각한게 생각보다 길어지셨죠. 아직 놀랄 구석이 남아있으세요. 누군가는 사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것보다 저는 그 넉넉한 볼륨에 감사합니다.
언급하신 게임들 중에선 레데리2를 제일 좋아해요 꼭 플레이하세요
2021.07.17 23:56
갓오브워를 한 번 더 밀어놓고 레데리2 하려고요.
2021.07.17 16:45
분야를 막론하고 스토리텔링이 들어가는 것들은 원래 거의 다 관객, 시청자, 독자, 유저 등에게 뭔가 교훈을 전달하거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싫어하는 방향성일 때만 왜 가르치려 하냐 영화는 영화로 순수하게 만들어라 이런 소리가 나오죠.
2021.07.17 20:52
블러드본 해보셨나요? 개인적으로 플4 독점작 중에서 '플레이하는' 재미만 따지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2021.07.17 21:45
여기 대략 열 다섯표 정도 더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플포로 했던 게임들 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무조건 블러드본입니다.
다만 게임 특성상 게이머 성향을 격하게... 너무 어렵죠. ㅋㅋ 진짜 기계 부숴버릴 것 같은 충동이 내내 드는데도 재밌어서 확장팩까지 다 깼네요.
2021.07.17 23:57
한달 남았는데 할 게임이 계속 늘어나네요. 과연 레데리2 하고 블러드본까지 넘어갈 수 있을지...
2021.07.18 01:35
말씀하신 게임들 중에 제가 안 해 본 건 라오어2 밖에 없는데...
어차피 스토리는 다 아는 입장에서 스포일러 없이 얘기하자면, 이거 결국 3부작 생각하고 짠 스토리겠더라구요.
그러니까 결국 2편은 제국의 역습 포지션이고 결국 3편에서 원래 (다수의) 팬들도 납득할만한 쪽으로 이야기를 맺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뭐 이 시리즈 담당 프로듀서가 HBO 드라마 만든다, 라오어가 아닌 새로운 작품 '기획' 중이다 그런 소식만 들려오는 걸 보니 아마 3편은 빨라야 3~4년 이후. 아마도 5~6년 이후에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