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돌봄의 정치

2021.07.04 14:18

Sonny 조회 수:983

20210703-110537.jpg


동생 집에 가서 조카랑 놀아주고 왔습니다. 처음 보니 조카가 무척 귀엽더군요. 아이들의 뽀송뽀송함은 아직 인간의 사진기술이 담아내기에 역부족인가 봅니다. 아기의 볼은 만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 있습니다. 계속 뽁뽁 찌르고 쓰다듬고 놀았습니다. 아기가 아직 어려서 아주 가끔 우에우에 하는 소리 내는 거 말고는 달리 의사소통도 할 줄 몰라요. 저, 저희 부모님 이렇게 난생 처음 보는 거인들이 자기를 보면서 마구 얼굴을 만져대니 귀찮았을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감정은 금새 지나갔습니다. 이 아기를 달래고 챙기기 위해 제 동생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데 보고 있는 제가 다 피곤해졌으니까요. 모유 수유하랴, 수유 다하면 안고 도닥여줘, 그 와중에 아기가 게워내면 그거 닦아줘, 그리고 새 턱받이 갈아줘, 기저귀 갈아줘, 적당히 놀아주고 재울 시간 됐으면 자장가 불러줘, 그리고 거실에 있는 티비로 캠 연결해서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 


저보고 좀 안아달라고 하는데도 이게 은근히 노동이더군요. 은근히란 말을 쓸 필요가 없을려나요. 약 6kg의 아기를 한팔로 안고 계속 들고 있으니 힘이 부쳤습니다. 거기다가 들고 있는 게 상자나 그냥 짐덩이면 상관없는데, 살아 움직이는 아기라서 더욱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기가 아직 목근육이 발달이 안되어있어서 뒷목을 부조건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더군요. 거기다가 이 아기가 저한테 안겨있는 게 편한 상태인지 어쩐지 모르니까 동생한테 수시로 체크를... 안겨있는 채로 수시로 아둥바둥대는데 혹시 불편해서 그러는건가 싶어서 몇번이나 긴장했습니다. 물론 동생은 원래 그래~ 라면서 태연하게...


지금 자란 성인들은 모두 이렇게 타인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요구하면서 자랐다는 게 좀 사회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약자이고 어른이자 부모인 강자로부터의 끝없는 이해와 포용과 돌봄을 받으면서 하나의 사회적 개체로 자라나는 거겠죠. 하나의 사회는 수천 수만의 약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그 약자가 죽지 않게끔 하는 상대적 강자들의 나눔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닌지. 사회가 반드시 혈육관계의 부모 노릇을 할 책무는 없습니다만 약육강식 약자도태 같은 룰을 따르는 건 더더욱 안되겠죠. 약자를 외면하는 순간 사회는 거의 망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약자인 시절을 거쳐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강자가 되고, 그 강자가 되지 못한 존재를 외면하는 사회는 단순한 야만이나 야생의 생태계가 아니라 사회 본연의 법칙을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알아서 크거나 강해지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조카를 보면서 제가 얼떨결에 가지고 있는 신체적, 사회적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좀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동이 과연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생률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한쪽이 지는 부담은 많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99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11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519
116513 티빙오리지널,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1] 메피스토 2021.07.22 421
116512 최초의 이별 [7] Sonny 2021.07.22 661
116511 거리두기 잡담... (폭식, 폐허, 결혼) [3] 여은성 2021.07.22 630
116510 넋두리 [7] 어디로갈까 2021.07.22 618
116509 태어나서 첨봐요 [3] 가끔영화 2021.07.22 363
116508 안지마 무서워-2편(시간) [3] 사팍 2021.07.22 299
116507 올림픽 개막식 디렉터가 홀로코스트 조롱 [1] 사팍 2021.07.22 547
116506 남자가 사랑할 때 (2014) [3] catgotmy 2021.07.22 378
116505 [강력스포일러] 새벽의 '피어 스트리트 파트1 : 1994' 단문 바낭 [26] 로이배티 2021.07.22 550
116504 커플룩 할머니 [2] 가끔영화 2021.07.22 411
116503 피어 스트리트 3은 빨리 나왔네요. [2] 미래 2021.07.22 297
116502 미나리 감독 "너의 이름은" 실사화 하차 [1] 사팍 2021.07.22 805
116501 왜 오해살만한 말을 해가지고... [4] 사팍 2021.07.21 863
116500 예전에 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어느 분께 제 전재산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2] 무무무 2021.07.21 1064
116499 코로나는 다들 어디서 그렇게 걸리는건지.. [3] 고요 2021.07.21 786
116498 민주당 재집권에 대한 혐오와 공포. [42] ND 2021.07.21 1267
116497 일본에 대한 궁금증 [12] 하워드휴즈 2021.07.21 776
116496 바낭) 정신과 이야기 [6] 하워드휴즈 2021.07.21 453
116495 심심해서 알아본 오늘 세계 주요도시 최고 온도 [10] tom_of 2021.07.21 732
116494 무뢰한 (2015) [5] catgotmy 2021.07.21 43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