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텔지어와 데자뷔

2021.06.29 10:13

어디로갈까 조회 수:540

미술작업 하는 선배가 메일로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그의 고단함에 대한 토로를 접하면서 느끼는 건,  그쪽 분야는 데자뷔보다는 노스탤지어를 하나의 사이버네틱스 메소돌로지로 생각하고 작업한다는 것이에요. 
노스탤지어라는 것은 무엇보다 회전력이 있죠. 하나의 소용돌이vortex로서 상승기류를 만들어내는 힘 같은 것.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 용, 용솟음의 다이내믹스가 느껴집니다. 노스탤지어라고 하면 흔히 과거회귀, 벤야민의 멜랑콜리, 그 회억하는 것의 풍요로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전혀 다른 궤도진입을 읽어요. 그렇다고 현대의 미술작업인들이 벤야민의 미디움medium개념에서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개념적 기원에서 '언어의 마법성'이라는 것은 빈 공간이 어떻게 공명으로부터 새로운 생성을 자아내는가 하는, 마치 우주물리 같기도 하고 마르키온파 그노시스 같기도 한 미디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니까요. 노스탤지어 역시 하나의 빈 공간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는 여전히 마법적인 기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나이 때문인지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과거의 어느 타이밍을 유토피아의 전미래 시제로, 이미 지나갔지만, 미래화하는 과정의 사후재구성 작업의 토대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타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뭔가 논리적 구축보다는 길을 재촉하면서 가로질러 가는 쪽을 좋아하는 편이랄까요.

아무튼 노스탤지어가 데자뷔를 능가한다는 것은 오른나사 모양의 회전이 왼나사 모양의 회전보다 앞선다는 것이고, 그것은 과거로 뚫고 들어가는 동시에 미래로 뚫고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회전력은 지켜보노라면 꽤 재미있어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웜홀을 뚫는 것처럼. 
과거라는 시제와 미래라는 시제 사이의 양자얽힘을 살펴보자면, 양자라는 개념에 비춰볼 때, 과거도 시간 입자가 되고 미래도 시간 입자가 됩니다. 동시에 과거는 시간 파동이 되고 미래도 시간 파동이 되는 거고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싱크로나이즈드 댄스가 발생하는 거죠. 시간의 춤입니다. 저는 인간을 맴맴 돌게 하는 시간의 춤을 종종 느껴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대학을 다닌 뒤에 주로 베를린이나 뉴욕에서 살았던 백남준 씨가 한 말 중에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한국인은 수렵민적인 성향이라서 사냥감이 있으면 어디든 따라가며 산다"고. 
사냥감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 그것을 찾아 이동하기 마련이지만 일본인은 어민적인 성향이라고 할까, 원양어업에 나서기는 해도 자신의 포구,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고 애쓴다고... 

유목민의 노스탤지어란 무엇일까요.  수렵민은 기원전 사만년 전에도 이미 1년에 3,000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고, 바다 건너 대륙에 당도했습니다.  호주까지 대양을 건너서 여행한 것에 대해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달에 간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크나큰 역사였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미 일만 년 전에 인류는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는 것이죠.  물론 느슨한 천라지망의 형태였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하늘과 땅을 그물망으로 짠 셈입니다.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은 그때 이미 신화라는 드림타임dreamtime의 비전으로 생겨나서 그 천라지망을 아울렀던 것입니다.


덧: 보스가 이번 주까지는 출근하지 말라는 특명을 내려서 탱자탱자 놀아보려고요. he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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