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30 13:38
구구절절 설명보단 그냥 짤로.
뭔가 80년대스럽게 옛스러운 느낌이 드는 가운데 다채로운 아이템이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 학생들의 방.
방에는 반드시 화사한 느낌으로 빛이 잘 들어야 합니다.
(함께 걸어갈 때 목 조르는 친구는 디폴트)
우정이 넘치고 온통 사랑이 꽃피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학교 생활.
다들 참 착하고 속 깊고 그러죠. 심지어 '심술궂은 장난꾸러기' 컨셉의 개그 캐릭터들마저도.
그리고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여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이쪽 세계관에 '속바지'라는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습...
자전거를 타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방과후 해질녘.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민들 다 어디갔어)
모든 게 다 깨끗하고 예뻐야 합니다. 사람도, 길거리도, 하늘도, 내리쬐는 빛들도.
심지어 대참사를 불러올 비극의 아이템조차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야 하죠.
덧붙여서
이런 건 좀 많이 깨서 언급하기 귀찮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일본 애니메이션 갬수성의 큰 축 중 하나죠.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짤이 죄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랑 '너의 이름은' 뿐인 건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잘 안 본지 오래돼서 그렇습니다.
그나마 본 게 이거 둘 뿐이라. ㅋㅋㅋ
뭔가 좀 놀리는 투로 글을 적긴 했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묘한 매력이 있어요.
어디 다른 데서 비슷한 걸 찾기 힘든 일본 아니메만의 개성이기도 하구요.
희한하게 한국과 중화권처럼 그럭저럭 문화 비슷한 동네 작품들을 봐도 어느 정도 비슷하긴 해도 딱 이 느낌은 죽어도 안 나죠.
겪어 본 적도 없고 애초에 겪어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환타지 10대 시절, 환타지 학창 시절인데도 어려서부터 봐 온 일본 만화책들 영향인지 보다보면 그냥 아련해지는 그런 느낌도 있구요.
여기에다가 이제 적절한 음악까지 하나 뿌려 주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클라이맥스 타임 리프 장면)
(제목 그대로, 곡에 맞춰 만든 편집 영상이네요. 당연히 스포일러 무더기!)
그 감성이 완성되는 것인데...
사실 전 이 두 작품 모두 별로 안 좋아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주인공이 아무리 봐도 진상 민폐 같아서 정이 안 가구요. (너 땜에 인생 망친 학생 끝가지 안 챙기기냐;;)
'너의 이름은'은 스토리상 너무 치명적인 반칙이 있어서 영 그랬고. 또 관동 대지진 피해자 위로 운운하면서 운석인지 혜성인지를 참으로 집요할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감독의 변태적 감수성도 부담스럽고. 뭐 그랬어요. ㅋㅋㅋ
하지만 위에서 길게 이야기한 그 특유의 감성.
그리고 위에 링크한 두 곡의 음악 때문에 계속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참 억울한 기분이지만, 그래서 넷플릭스에 '너의 이름은' 올라왔을 때 그 노래 나오는 장면만 다시 돌려 보고 그랬어요. ㅋㅋ
에...
뭐 결론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는 글이구요.
그냥 칙칙한 날씨에 갑자기 또 이 노래들 생각나서 적어본 뻘글입니다.
그래서 그냥 끝. ㅋㅋㅋ
+ 보너스로
너의 이름은!!? ㅋㅋㅋ
저 중간에 올려 놓은 포스터 이미지와 비교해보시면 재밌습니다.
분명 요 장소를 갖고 베껴 그려서 재현한 건데, 현실 디테일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면서도 결과물의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모델 때문이 아니구요
2021.04.30 14:25
2021.04.30 16:02
맞아요 계단. ㅋㅋㅋㅋ 계단 빼놓으면 안 되죠. 일본 작가들이 대체로 실제 배경을 활용하는 걸 좋아하니 실제로 일본에 그렇게 계단이 많아서 그러는 것 같긴 한데. 그걸 또 그렇게 집요하게 낭만적인 소재로 써먹는 게 신기하더라구요.
계단 말씀 때문에 생각나서 검색해봤는데, 지금 보니 작가 양반이 작년에 돌아가셨네요. 명복을.
2021.04.30 17:28
전 여름과 청춘할 때, 제게 떠오르는 느낌과 기억들의 다수가 실제 현실보다는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온 게 아닌가 싶어요. 현실 속 학생시절에는 딱히 이렇다 할 문화적 코드로 기억할만한게 없었어요. 그냥 도시, 아파트 촌, 학교, 학원, 독서실... 딱히 클럽활동이란 것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고요. 히사이시 조의 summer 같은 곡을 들을 때, 단순히 좋다, 이 수준이 아니라, 어떤 풍경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데, 막상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직접 경험한 풍경은 아니죠.
2021.04.30 18:02
저는 돌이켜보면 그 시절 대비 나름 드라마틱한 중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긴 했는데... 딱히 막 그렇게 돌이켜보면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확 하고 떠오른다든가 그런 건 아니구요. 말씀대로 일본 만화들에서 간접 경험한 이미지들이 오히려 실제 제 10대의 기억보다 먼저,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ㅋㅋ 이래서 문화 상품의 위력이라는 게... ㅠㅜ
좀 거리가 있는 얘기지만 그래서 예전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 때 좀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봐도 그 드라마의 기본 감성은 일본 만화책 감성이었거든요. 그게 디테일한 추억팔이 아이템들과 결합돼서 뭔가 집단적으로 착오(?)를 일으키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04.30 17:50
2021.04.30 18:05
옛날에 친구가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일본 만화가들이 왜 여름을 그런 식으로 그리는지 알겠어!" 라고 말하던 게 생각나네요. 그렇겠죠.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ㅋㅋ 그렇게보면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일관되게 삭막하고 군대 같으며 지옥 같은 풍경으로만 묘사되는 대한민국 학교는... (쿨럭;)
맞아요. 최소한 저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글 올려놓고 스스로 옛날 생각에 잠겨서 기껏 찾아본다는 게 오렌지 로드... 하하하;
2021.04.30 21:31
맞아요 일본만화들이 주입한 추억들도 꽤 있지요. ㅋㅋ 왠지 갑자원이라고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러는.
2021.04.30 18:04
'자전거를 타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방과후 해질녘'…언젠가 일산 신도시 호수공원에 잠시 들렀다가 한무리의 초등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을빛 속을 달리는 정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진짜 올려주신 짤들만큼 딱 그런 분위기의 풍경이었습니다. 초등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들이었는데 서로 웃고 떠들며 노을진 햇살 사이로 경사진 길들을 (바로 제 앞으로)활기차게 달려 가더군요. 벌써 20여년 정도 지난 일임에도 눈앞에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의 생동감이 정말 눈부셨죠. 순간 무슨 드라마나 영화속 한 장면에 내가 들어간 듯 했습니다.
일본 만화의 감수성은 바로 이런 일상의 어떤 순간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미지화 하는데 있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21.04.30 18:07
사실 해질녘의 강변이면 거기서 뭘 해도 멋지고 낭만적이겠죠. ㅋㅋ 어쩌다 퇴근 시간에 석양이 지면 퇴근길마저도 낭만적이더라구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풍경을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가 않은데, 빅캣님 말씀하신 풍경은 상상만해도 멋지겠단 생각이 들어요. 오래 기억하실만한 것 같습니다.
2021.05.04 11:04
해질녘 강변 풍경 지난해 코로나로 장기간 한국에 억류? 되어 있는동안 저는 매일 매일 실컷 즐겼어요.
아마 중고딩들 멱살 잡고 방과후에도 강제학습 시키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얼마든지 일상적인 풍경이 될 수 있을듯 싶네요.
한국에선 학생시절에는 미친 교육열 때문에,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는 미친 과로사회 시스템 때문에 저런 풍경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산들바람에 날리는 교복 치마자락, 활기 넘치는 학생들, 그 무거운 책가방을 한 손으로 핸드백처럼 들고 하늘을 보면 떠있는 뭉게구름, 실제로 오르라면 욕 나올 것 같은 긴 계단 뭐 이런 것들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