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업무 때문에 여러 지식인들과 이런저런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지식인엔 두 유형이 있죠. 지식이라는 영양을 듬뿍 섭취하여 한 인간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과 그 사회에 유용한 사물로 작용하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가진 사람. 전자는 지혜, 후자는 전문지식으로 구분됩니다. 지혜만 있고 전문지식이 없으면 탈속한 사람이 되는 거고, 전문지식만 있고 지혜에 못 이르면 그 분야 기술자로서의 인간만 남습니다. 지혜와 전문지식이 잘 맞물려 있어야 한 시대 지식인으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꽃을 꺾듯이 지식을 꺾어 와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꽃의 생명은 짧으니까 예쁜 화병에 담아 놓아 봐야 곧 시들기 마련이죠. 그러면 또 다른 꽃을 꺾어오지만 결국 같은 운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피어 있는 꽃만 따라다니니까 꽃을 피울 수 있는 원리와 법칙은 끝내 알지 못할 수밖에요.

지식을 얻는 건 나무를 심는 마음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요.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캐낸 후 나의 땅에 심을 때는 좀더 깊고 크게 파서 심어야 합니다. 뿌리는 지상에 나타나 있는 크기와 대칭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큰/많은 지식을 소화하자면 나무의 지름과 높이, 원기둥의 부피와 나무줄기의 부피의 비율을 고려한 대내적인 작업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지식은 곧 시들어요. 어린 신동에서 출발해 십대엔 천재였다가 삼십 이전에 평범한 사람이 된 이들을 뉴스로 접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재능/지식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사자성어를 큰 인물은 늦게 완성된다는 뜻으로 쓰던데, 이 말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몇 백년을 거쳐서 자란다는 이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튼 지식인들일수록 의외로 허약한 데가 있다는 걸 실감한 한 주였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사고/마음의 구조를 어떻게 셋팅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 것 같아서 좀 놀랐습니다. 라캉이 유행하면 라캉을, 폴 크루먼이 강조되면 폴을, 한스 로스링이 부각되면 한스를 탐독하는 식이라서요. 공부는 하면 할수록 파고 들어가게 되어 있죠. 그런데 적절한 수준에서 획득한 깊이는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면서 넓이를 확보해야 합니다. 폭과 깊이가 서로 관련을 맺지 못한 채 깊이 파고 들어가기만 하면 외톨이가 되기 쉬우니까요.

덧: 오래전, 가족에게 '살면서 만나본  인상 깊었던 한국지식인은 누구였어요?'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식물학자이자 원예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 짧고 얄팍한 인연이었을 뿐이나, 후광을 띤 사람을 육안으로 본 건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로인해 내면/인격의 빛이 그처럼 형이상학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할머니/ 니 할부지. ㅋ
아버지/ 최인훈. 사회 전반에 관한 관심과 통찰이 대단했으며,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각성하게 해준 선배였다.
어머니/ 노 코멘트. 너희들이 지식인이 어떤 존재인지 내게 보여주는 사람으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하며, 노발리스의 한 말씀을 강조하마.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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