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13:46
http://www.djuna.kr/xe/board/13927435 에 대한 답글입니다.
0. 들어가기 전에 드릴 말씀은, 앞 글에서 굳이 왜 잠재적 범죄자라는 표현을 빼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가 썼던 모든 글들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개념과 논의가 사용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이전 글의 제목도 "왜 잠재적 범죄적 개념은 잘못되었으며 위험한가?"죠. 그런 상황에서 잠재적 범죄자 개념을 쓰지 않으시면 저와 Sonny님 사이의 대립지점이 애매해 집니다.
1. Sonny님은 "실질적 주체인 남성을 평가하는 것은 항상 금기"이며, 실례로 이번 선거가 성별이 배제된 체 "20대 청년"이라는 세대론으로만 분석"되었다고 쓰셨습니다. 이 주장을 도입부터 꺼내신 것은 제 글 역시 그 금기에 따랐기에, 근본적으로 오류라는 주장을 하시기 위해서겠죠. Sonny님의 글에서 핵심적인 문장입니다.
그러나 제시하신 실례가 사실인가요? 듀게에서만 하더라도 선거 날 이후 적지 않은 글이 20대 남성의 투표행태 및 그들의 성격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사검색에서 20대 남성과 보궐선거를 키워드로 검색해도 기사가 쏟아집니다. 심지어 진중권은 20대녀가 아닌 20대남에 대한 언급만 있는 지금의 행태가 성차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검색 몇 번 만으로도 부정될 오류가 글 초두부터 나왔습니다. 이건 성별불평등을 바라보는 Sonny님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태도란 Sonny님이 성별불평등을 귀납적인 것이 아니라 연역적인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앞 글에서 전칭 평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분이 있는데, 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연역적이라는 말은 Sonny님이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결과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현실을 거기에 맞춰 해석하거나 취사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질적 주체인 남성을 평가하는 것은 항상 금기'라고 결론지어놓고 상황을 보시니 저런 오류가 나온 것이죠. 그리고 저는 저 문장에서의 핵심은 '항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순한 강조 표현이 아닙니다. 확고한 전제로부터 이미 정해진 결과를 도출하는 Sonny님의 논리의 핵심이죠. 이 논리는 놀랍게도 계속 반복됩니다.
2. "국적, 지역, 학력, 경제적 성취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사람들은 어떤 집단으로 구분되고 그 집단만의 특이성은 도출됩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 사람에게만 관측되는 무엇이 있고 중국 사람에게는 중국 사람에게만 관측되는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사람의 특성, 중국사람의 특성을 추론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서베이가 활용됩니다. 서베이의 핵심은 단순무작위추출법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집단을 전수조사 할 수 없는 이상 샘플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샘플은 모집단을 잘 대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샘플 선정이 무작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무작위성은 인과를 밝히는 핵심 방법론인 실험에도 마찬가지로 활용됩니다. 통제집단과 실험집단에 누가 배정될지는 무작위로 이루어져야 하죠. 무작위야말로 편향(bias)를 제거하는 확실한 길입니다.
자, Sonny님이 가져오셨던 통계의 범죄자 집단은 모집단인 한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샘플입니까? 우리는 범죄자에 대한 통계를 얻음으로써 모집단의 성격을 추론할 수 있습니까? 여성범죄자의 특성을 잘 살피면 한국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까? 대표성을 갖지 못한 샘플로는 모집단을 추론할 수 없습니다. 범죄자 샘플에 대한 분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건 인구전체로 일반화되지 않습니다. Sonny님은 계속 남성집단을 평가하는 것은 금기, 남성이라는 집단은 평가할 수 없다... 고 제가 본다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남성집단은 평가되어야 하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평가되어 왔지만, 더 많이 평가되어야 하죠. 제 문제제기는 다만 Sonny님과 같은 방식으로는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남성집단 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집단도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집단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일본인은 너무 xx해, 중국인은 너무 yy해. 저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괄호쳐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 의견으로는), (내가 보기에는) 다시 말해 이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이라는 겁니다. 당연하지만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든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고, 특히 그 규정이 부정적이라면 엄격한 절차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Sonny님에게는 이런 과정과 절차가 없습니다. Sonny님에게는 그 집단의 특이성이 이미 확고하게 결론 지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모든 여성이 남성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건 왜 그렇습니까?" 같은 문장이 가능해집니다. 모든이라고요? Sonny님은 이 문장을 쓰기 위해서 실제로 여성이 남성에게 얼마나 불안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자료조사는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세상에 '모든'이라는 표현을 가능케하는 자료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러한 확고한 문장을 쓰실 수 있는 것은, Sonny님에게 이미 '모든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이며 여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Sonny님은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라고 주장하기 위해 여성의 '불안'이라는 새로운 논의를 도입합니다. 불안은 그 자체로 중요하기에 주의깊게 분석되어야 할 변수입니다. 그러나 불안이 곧 범죄의 지표는 아니며, 그것이 곧 잠재적 범죄성을 설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걸 보여주는 논문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Wilson과 Kelling(1982)이 쓴 Broken Windows라는 글로, 한 번 쯤 들어보셨을수도 있는 깨진 창 이론을 도입한 글 입니다. http://illinois-online.org/krassa/ps410/Readings/Wilson%20and%20Kelling%20Broken%20Windows.pdf
이 글에서 저자들은 뉴저지에서 경찰들에게 있었던 조치가 가져온 변화를 보여줍니다. 새로운 행정조치가 내려오면서 경찰차를 타고 했던 순찰했던 경찰들이 이제는 도보로 순찰을 하게 됩니다. 5년이 지난 이후, 도보순찰이 이루어졌던 지역의 거주민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의 거주민들에 비해 자신들은 더 안전하고 동네의 범죄는 줄어들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네의 실제 범죄율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유지되었을 뿐이죠. 이 사례는 불안이 곧 범죄의 지표일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맥락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범죄율과는 별도로 불안 자체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불안 자체가 개인과 사회에게 낳는 폐해가 너무 크니까요. 그러나 잠재적 범재자 논의는 불안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키우는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언급하신 후아레즈 사례도 불안과 잠재적 범재자 논의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맞습니다. 후아레즈의 대다수의 사람은 선량한 시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아레즈에 사는 것은 불안한 일입니다. 거주자 분들도 후아레즈가 안전하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후아레즈 시민들은 잠재적 범죄자군요, 라는 말에도 그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까요?
4. "흑인과 백인의 범죄율 차이는 한국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범죄율 차이보다 훨씬 더 작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직접 통계를 들어서 확인해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Sonny님의 연역적인 논리전개 방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게 통계를 들어서 확인시켜달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아직 흑인과 백인의 범죄율 차이를 확인하시지 않으신 것이겠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Sonny님은 '훨씬' 더 작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역시 성이 범죄에 있어 모든 다른 변수를 압도하는 절대적인 변수라는 결론을 이미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겠죠.
https://ucr.fbi.gov/crime-in-the-u.s/2019/crime-in-the-u.s.-2019/tables/expanded-homicide-data-table-3.xls
FBI의 2019년 미국 범죄자 통계입니다. 모든 범죄율을 다 다룰수는 없으니, 살인사건 통계만 보겠습니다(링크된 경로로 가셔서 찾아보시면 다른 범죄 통계도 있으니 궁금하시면 직접 구해보시면 됩니다). 살인사건은 가장 큰 범죄이고, 그런만큼 법정에서 가장 엄격하게 다루어집니다. 따라서 인종에 따른 편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란 점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한국통계를 보겠습니다. 2019년 한국에서 여성 살인범은 155명, 남성은 759명 입니다. 한국의 성비는 100.4이니까 굳이 보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따라서 남성 살인범죄자는은 759/155 = 4.90, 즉 여성보다 4.9배 더 많습니다. 반면 2019년 한 해 미국에서 백인(히스패닉 포함) 살인 범죄자는 4,728명 입니다. 흑인은 6,425명이니 흑인이 1.36배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종비는 2019년 기준 백인 76.3%, 흑인 13.4%로 백인이 5.69배 많습니다. 이를 고려해서 계산하면 살인범죄는 백인에 비해 흑인이 7.74배 많이 저지릅니다. Sonny님의 예상과 다릅니다.
5. "집단내 대다수의 무고한 사람은 어떤 범죄나 폭려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그냥 당연한 전제이지 결정적인 근거가 아닙니다. 흑인의 범죄율이 높다고 흑인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의 범죄율보다 높이 집계되는 차별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범죄율 자체가 객관적이지 못하며 흑인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범죄율이 더 높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주장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집단 내 다수가 무고하다는 사실에 있는 게 아니라, 집계의 차별적 요소에 있다는 Sonny님의 주장 말입니다.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보겠습니다. 21xx년, AI가 사법시스템에 전면 도입됨에 따라 범죄율 집계에서 차별적 요소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범죄율은 여전히 백인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도 됩니까? 당연히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여전히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에 비해 높더라도, 흑인의 다수는 범죄자가 아니니까요. 집단 내 범죄율은 그 자체로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Sonny님은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10%? 20%? 25000/25000000 은 확률로 1/1000입니다. 2500만 중에 2만 5천밖에 가해자가 안되니까 그 정도면 남자는 괜찮은 집단입니까? 혹은 남성 전체를 비판하기에는 부족한 비율입니까?"
당연히 집단 내 비율은 중요합니다. 저 범죄율을 무시하면 한 사회의 안전성/위험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범죄자 비율이 0.1%인 사회보다 1%인 사회가, 1%인 사회보다는 10%인 사회가 더 위험합니다. 남성 열 명 중 한 명이 범죄자인 사회보다, 백 명 중 한 명인 사회가, 만 명 중 한 명인 사회가 상대적으로 더 안전합니다.
그런데 Sonny님은 저런 비율을 고려하지 않은 체, 범죄율을 본인에게 편리한 방식으로만 취사선택해서 활용하고 있으십니다. 오직 남성과 여성 간의 강력범죄율 차이를 비교할 때만 사용하시죠. 그래야만 남성이 여성에 비해 범죄율이 높다는 사실로부터 남자를 잠재적 범재자라는 범주에 집어넣는 판단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단 내 비율을 고려하면 OX와 같은 범주적 판단이 아니라, 얼마나 라는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죠. A국가의 강력범죄율은 남성 1%, 여성 0.1% 입니다. 반면 B국가의 강력범죄율은 남성 5%, 여성 3%입니다. 이 경우, 범죄자의 성비만을 중시하는 Sonny님 논리에서는 여성에 비해 남성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1.7배인 B국가보다 10배인 A국가의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일 겁니다. 그러나 막상 A국가의 남성과 B국가의 남성을 비교해보면 B국가의 남성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5배 높습니다.
6. 아마도 이런 답변에 Sonny님은 골목길 여성의 사례를 들고오실 겁니다. "여성이 골목길을 걷다가 뒤에서 남자 발걸음이 들리면 그걸 확률 계산하고 있을 것 같나요? 미안하지만 헛소리에 가깝습니다"라고요. 미안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누구도 저런 상황에서 확률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하지 않습니다. 가용한 몇 가지 범주 중에 타인을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판단합니다." "(잠재적 범죄자)논의는 한 개인을 쉽게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 개인 대 개인의 일대일의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효율적일수도 있습니다. 즉각적인 판단을 가능케 해주니까요."
"인간의 두뇌는 외부 자극을 범주화해서 이해하며 진화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사자와 호랑이를 봤을 때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험이 반복되면서, 사자와 비슷한 생명체를 봤을 때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맹수라 분류하고 위험한 동물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도망치거나 싸우는 행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이 빠를수록, 또 무의식적 수준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간 두뇌에 깊이 새겨진 고정관념과 그에 기반한 편견이 활성화되는 과정은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외부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해온 과정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첫 번째 인용은 제가 처음 쓴 글이고, 두 번째 인용은 Sonny님이 링크를 다신 시사인 기사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흥미롭게도 Sonny님이 제 글을 반박하기 위해서 링크를 단 시사인 기사는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암묵적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요. 암묵적 편견은 특정 상황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상대를 충분한 정보와 시간없이 판단해야할 때. 실제로 우리가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시켜온 특성이니까요. Sonny님이 말씀하신 사례는 암묵적 편견이 효과적으로 작동한 사례입니다. 다만 백인 역시 자신의 암묵적 편견에 기초하여 골목길의 흑인을 피해가면서 이건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그 결과가 너무 치명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제가 쓴 댓글에서 인용을 하겠습니다.
"여성 VIP 고객과 남성 주차 안내 직원의 경우를 보죠. 이 둘이 낮에 백화점에서 만날 경우, 권력관계는 전자>후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밤에 골목길에서 둘이 만날 경우 전자<후자겠죠. 이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특성인 성, 직업, 계급, 범죄가 발생한 상황인 시간, 장소, 제3자 존재 여부, 사회의 특성인 주변 시민의 신고의지, 범죄에 대한 사회의 태도 등등 등 수많은 변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단 하나의 변수로는 설명이 어렵죠.
위의 VIP 여성이 주차 안내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상황은 밤의 골목길이라는 특정 상황에서는 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낮의 백화점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이 모든 권력관계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라서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면, '잠재적 범죄자'는 언제나 효율적일수는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만, 현대사회에서 권력관계를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는 상황은 존재하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여성이 특정 상황에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판단한다는 것과 그러니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다라고 '사회적으로 공언'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입니다. Sonny님은 이 둘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계십니다.
7. Sonny님은 글 전반에서 "피해자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과 안전과 존엄" 등의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가치를 계속 언급하시면서 마치 Sonny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저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글을 쓰십니다. 저는 이게 이견 자체를 틀어막는 매우 부적절한 논지전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범죄자 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피해자 인권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며, 생명과 안전과 존엄을 무시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 가치에 동의하기에, 더 적절한 방식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범죄는 모두에게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그 중요성과 민감함으로 인해 누구도 쉽사리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이정재와 임화수를 사형시켰고, 전두화는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운영하였고,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독재자가 사라진 지금에도, 자국인의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저 논리는 외국인, 특히나 조선족에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8. "강간은 성차별로만 있씁니까? 강간을 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사회적 현상은 현상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현상에 책임이 있는 실질적 주체들을 통제하고 변수를 차단해서 그 현상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강간이라는 성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은? 강간하는 사람을 처벌하고 그에게 사회적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강간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강간하는 사람을 처벌하고 사회적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 적도 없고요. 다만, 어떤 한 사람이 성별이 남성이고, 그 남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다고 하여, 그를 잠재적 강간범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연쇄 살인범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고 해서, 모든 남성은 잠재적 연쇄살인범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예를 드신 조두순 사건을 봅시다. 그것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두순이 남성 노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성 노인들만을 표적삼아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Sonny님은 범죄를 설명함에 있어 성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 기반해서 누군가를 잠재적 범죄자를 지목하려는 논의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논하지 말자는 주장과 잘못 등치시키고 있습니다.
9. "여성을 향한 강력범죄는 인간 모두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닙니다. 남성만이 독점적으로 여성에게 저지르는 범죄죠. 여성도 남성에게 저지르고, 여성도 여성에게 저지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Sonny님의 주장의 핵심은 이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통계는 인용하신 "강력범죄는 약 25000건이었고, 남자 가해자는 약 24000명, 여자 가해자는 약 1000명이었습니다."일 것이고요.
저는 이 주장은 성이 결정적 변수라면 그렇다면 대다수의 남성은 왜 강력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 잠재적 범재성을 만들어내는 성이라는 변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남성들이 강력범죄를 일으키지 않게 만드는 기제는 무엇인가? 성은 이 억제기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 대다수의 남성이 강력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범죄에 있어 성보다 억제기제의 설명력이 더 큰 것이 아닌가? 등의 질문에 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처음에도 언급한 것처럼 범죄자의 특성으로 전체 인구집단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Sonny님 주장의 핵심 근거인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의 범죄율은 과연 합당한지, 다시 한 번 강력범죄에 대한 최근자료를 통해 범죄별 성비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자료출처는 2019년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입니다.
| 남 | 여 | 여성 비율(%) |
살인 | 759 | 155 | 17.0 |
강도 | 1,221 | 168 | 12.1 |
방화 | 1,079 | 211 | 16.4 |
성폭력 | 32,256 | 1,154 | 3.5 |
폭행 | 175,399 | 40,739 | 18.8 |
상해 | 48,952 | 10,497 | 17.7 |
협박 | 20,195 | 3,046 | 13.1 |
공갈 | 4,486 | 800 | 15.1 |
약취와 유인 | 245 | 118 | 32.5 |
체포와 감금 | 1,927 | 526 | 21.4 |
폭력행위(손괴, 강요, 주거침임 등) | 2,396 | 780 | 24.6 |
폭력행위(단체 등의 구성, 활동) | 436 | 61 | 12.3 |
계 | 289,351 | 58,256 | 16.8 |
보시다싶이 여전히 강력범죄는 여성에 비해 남성이 다수 저지릅니다. 여성은 전체 강력범죄 중 16.8%를 저질렀습니다(모든 범죄 기준으로는 21%). 그러나 Sonny님이 제시하신 통계의 비율인 4%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과연 이 수치를 두고 "(강력범죄는) 여성도 여성에게 저지르지 않습니다" 라는 주장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저 주장은 여성 범죄자의 존재를 지워버림으로써, 그들이 왜 범죄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그들의 교정 및 재사회화 과정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필수적인 문제제기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그 여성 범죄자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존재 역시 지워버립니다. 여성 강력범죄자가 58,256명이니 그들에 의한 피해자는 그 이상이겠죠. 참고로 여권의 신장과 함께 여성범죄는 증가하고 있고, 페미니즘 범죄학은 여성의 범죄를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숫자놀음은 단한명도 더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사건의 특성을 무시한, 지극히 집단을 우선시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건 Sonny님 본인의 말씀입니다.
10. "어떤 여성도 이 글에 공감하지 않는데 남성들만이 이 글이 옳다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공감이 편향되는 글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제 글에 다신 Sonny님의 댓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보자마자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 Sonny님은 제 글에 댓글을 다신 분들의 성별을 어떻게 알고 계신겁니까? 둘, Sonny님은 어떻게 그 글을 읽은 어떤 여성도 공감하지 않았다고 확신하시는겁니까?
저는 제가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어떤 여성도 이 글에 공감을 표하지 않는데"라고 쓰신 줄 알았죠. 그렇다면, 제가 모르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 Sonny님이 제 글에 댓글을 다신 분들의 성별을 알고 있고 따라서 공감을 표한 댓글 중에 여성이 쓰신 것은 없다는 것도 아시는구나 할 수 있겠죠. 그런데 Sonny님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어떤 여성도 공감하지 않는데 라고 쓰셨습니다.
물론, 제 글 댓글에 공감을 표한 분들은 남성일 가능성이 더 높고, 여성분들이 공감하지 못하실 확률이 더 높겠죠. 저도 그건 압니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과 그렇다는 확언은 전혀 다른 이야기 입니다. 이건 계속 지적해온 Sonny님의 논리의 반복의 결과입니다.
11. “우리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리고 그다음에 본다.”
Sonny님이 직접 링크를 거신 세계일보 기사에 나온 암묵적 편견의 정의입니다. 전 이 문장이 정확히 Sonny님이 구사하시는 연역적 논리를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2021.04.19 16:08
2021.04.19 16:27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의 '~ 에는 동의합니다', '~는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부분을 꼼꼼히 읽었으면 싶군요. 특히 지난 글의 이 부분을 다시 인용해드리고 싶습니다. (MELM님의 글을 통쾌하게 느끼시는 분들 중 이 뒷 인용문의 무서운 의미를 간과하는 분들이 있는 듯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원인은 그런 실제하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범죄성 같은 것이 아니라, 양성 간의 권력 차에서 기초합니다. 잠재적 범죄자주의자 분들이 보시기에는 그게 그거 아니냐 하실 수 있겠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단지 성별 만이 문제지만, 후자는 권력 차이를 가진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논의인 동시에 그 권력차에 대한 분석에 기반해서 여러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도 이미 언급하셨지만, 저는 저 명제를 성별 분류상의 고유한 범죄성 추출보다는, 6번에서 언급하신 실용적 편견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명제는 정치적 선언이기도 하죠.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라는 캐치프라이즈와 함께 생존적 태세로 말이예요. 리부트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현재까지의 운동의 추동 요인도 실지적 변경을 요청하는 과정이었죠. 한국 안전의 재평가로 인한 불안의 증가와, 그 해소를 위한 법제적 방향성도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길거리 흡연은 살인 행위입니다'와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이 시리즈의 첫 글을 읽었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듀게가 그나마 교차로처럼 대화가 엇갈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질문과 어떤 답을 이끌어내는게 생산적인 것일까 라는 거죠. 저는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보고 싶군요.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귀납적으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되는가?'
(P.S. 일신을 구속하는 잠재적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 치료가 신설되지 않을 때까지는 안심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2021.04.20 17:15
말씀하신 이 글의 '~ 에는 동의합니다', '~는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부분이 어딘지 구체적으로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와 잠재적 범죄자 논의가 같이 묶얼 수 없다고 봅니다. 잠재적 범죄자 논의를 정치적 구호로 활용하는 것에도 회의적입니다. 이 개념은 그 출현부터 인종적 편견에 기초했고, 현재도 그런 방식으로 너무나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잠재적 범죄자 개념의 좋은 활용과 나쁜 활용을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없어져야할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 어디로 가야할지는 너무 큰 질문이라 추상적 대답 밖에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2021.04.19 17:01
지금까지 논쟁하신 분들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편견 발화'가 허용되는 상황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소수자 일방이 공론장에서 위계적/제도적 수단을 통해 배제되는 등의 이유로, 통상적 합리성을 통해서는 생존권과 행복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억압과 차별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죠. 물론 주어진 위협과 해결수단의 비례성이 적절한지 고려해야 하겠지만요.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에는 이런 조건이 성립되었기에 시위 참여자의 '편견 발화'에 도덕적 문제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여성의 '무작위로 죽을 가능성'이나 '강간당할 가능성'은 사회가 합리적 수단으로는 아주 오랫동안 시정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편견 발화' 정도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한 비례성을 갖춘 것처럼 보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페미니스트의 합리성이 위계적, 제도적으로, 예전처럼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 같습니다. 혐오를 정제하여 합리적 발화로 만드는 것이 더 실용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다만 상황의 변화에 관한 판단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제 직관이라서, 다르게 이해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04.19 18:01
2021.04.19 18:35
얼마만에 듣는 '연역적'인가
감사합니다
2021.04.19 20:43
본문이 길어서 안 읽으려다가 댓글들을 보고 읽었습니다.
술술 읽히게 잘 쓰셨고, 상당한 수고가 느껴지네요.
좋은 글이라고 인정해 주신 Sonny님의 댓글에도 좋아요 눌러주고 싶네요.
아마도, 다른 방식의 논리를 찾고 계실 것 같기는해요. 그것도 좋아요.
2021.04.19 22:46
.
2021.04.20 18:08
외부세력에 의한 활용가능성 때문에 문제제기를 내적/외적으로 검열해왔던 많은 운동들이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여성의 실재하는 피해 경험들이 올바르게 다루어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잠재적 범죄자 논의가 그 과정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인권과 존엄"이란 가치에 동의"한다고, 당장의 논의에서 "피해자의 인권가 존엄"이 중심 소재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가해행위를 인지하는 남성은 왜 극소수인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만, 그것은 잠재적 범재자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21.04.19 23:11
2021.04.19 23:28
최근에 그냥 모니터 화면을 잠깐 확인하고 지나가는 남자 스태프의 모습을 가지고 이건 그 앞에 있는 여자 아이돌 치마 속을 불법촬영 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하며 그 남자분의 신상정보를 캐내고, 악플을 달고, 트위터 등에서 조리돌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그저 악의적인 선동으로 밝혀졌으며, 진상이 밝혀진 후 자칭 페미니스트 타칭 악플러들은 계정삭제를 하고 도망치거나 구구절절한 사과문을 써가며 고소만은 참아달라고 읍소중입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버젓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바로 앞에서 잠깐 멈춰섰다가 지나간 남성 스태프가 아이돌 치마 속을 찍는다고 쉽게 생각할리도 없고,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 다짜고짜 누명부터 씌우고 신상정보를 퍼나르며 범죄자 낙인부터 찍을 리가 없지요. "남자=잠재적 범죄자"라는, 아예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주장이 어떤 이들에게는 일리있는 이야기마냥 받아들여지고, 또 누군가는 그걸 내면화하니까 이런 황당하기 짝이 없는 횡포와 폭력도 정의구현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발생합니다. (아닌 밤중에 거하게 똥물을 맞은 해당 남성 스태프에게 위로를.)
해당 사건의 가해자 중 일부는 모든 진상이 밝혀진 후에도 "사실 몰카를 찍은게 맞는데, 회사와 스태프가 모종의 이유로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속으로 결론은 다 내 놓고서 거기에 자신 바깥의 세계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걸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가끔은 흉측해지기도 하죠. 위 댓글의 singlefacer 님 말씀처럼 여성 대 남성의 문제도 아니고, 공감 대 비공감의 문제도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해당 이슈에서 이 정도의 생각과 자료가 담긴 글 읽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1.04.19 23:57
2021.04.20 08:49
와 이런게 진짜 토론 아닐까요?
간만에 트집잡고 꼬리잡는 진흙탕 싸움이 아닌 제대로 된 논쟁 글을 봐서 좋네요
인정하실걸 인정하는 Sonny님 답글도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