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7 04:35
http://www.djuna.kr/xe/board/13926336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성차별을 이야기할 때마다 참 흥미로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바로 남성에 대한 평가에 엄청난 반박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 유난히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관측이 되는데도 그 집단에 대한 분석이 이처럼 격렬하게 거부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얼마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오세훈 지지율이 특히 높았습니다. 그것은 동세대 여성과 비교해보면 더욱 더 대비되는 것이어서 20대 남성이 구분되어지는 어떤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요인은 "20대 청년"이라는 세대론으로만 분석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20대 여성은 20대 남성과 아주 다른 후보 지지율을 보였는데도요. 이런 여론을 보고 저는 분석이 아니라 분석하지 않기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각종 공개게시판에서의 안티 페미니즘 투표선언을 보고서도 이를 무시하거나 아예 모르는 채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요. 이런 현상이 갑자기 두드러진 것은 아닙니다. 리얼돌 수입 허용, 여성형 인공지능 성노예화 등의 이슈를 두고서도 그 실질적 주체인 남성을 평가하는 것은 항상 금기시되었으니까요. 왜 갑자기 시비를 거냐는, 항의의 주체인 여성만을 평가하듯이요.
"범죄자 중 한국남성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남성의 다수는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강도가 올라갈수록 범죄자 중 남성의 비율은 올라가지만, 동시에 남성 중 범죄자의 비율은 줄어듭니다."
국적, 지역, 학력, 경제적 성취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사람들은 어떤 집단으로 구분되고 그 집단만의 특이성은 도출됩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 사람에게만 관측되는 무엇이 있고 중국 사람에게는 중국 사람에게만 관측되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요소를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집합을 이루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집합에서만 유난히 더 강하거나 약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면 객관적인 현상조차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성별이라는 팩터가 무의미해지고 아주 보편적인 인간 모두의 실패로 환원되거나 애초에 다른 팩터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논의가 중단됩니다.
MELM님의 이 주장 역시도 이와 같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국 Not all men의 주장입니다. 숫자로만 보면 타당한 이론입니다. 100명 중의 한명이 이질적인 부류라면 99명은 그 무고함을 인정받아야겠죠. 그런데 결정적 문제가 있습니다. 확률을 적용하기에, 그 확률이 적용되는 결과가 너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남성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때 수많은 남성을 분모로 해서 범죄자 남자를 분자로 두는 이 확률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남성의 이 주장은 (무고한)남자와 (가해자)남자라는 남성의 주체로만 사건을 생각하지 그 사건 자체가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실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안전하니까 마주하는 모든 남자를 믿어라? 여자들도 그게 가능하면 그러고 살겠죠. 여자들이 뭐하러 불편을 감수하고 비논리적인 의심을 억지로 하겠습니까?
not all men의 논리에는 판돈이 되는 "여성의 생명"이 빠져있습니다.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괜히 독이 든 초코볼이나 밥그릇으로 예시를 드는 게 아닙니다. 맞췄을 때는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는데 틀리면 죽거나 최소한 그 날 하루를 엄청나게 망치는 불이익이 걸린 도박을 여자가 자처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번도 못본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칩시다. 이 때 여자의 현명한 선택은 무엇입니까? 2500만의 무고한 남자 분모에 25000의 강력범죄 가해자 남성의 분자를 계산해서 "틀릴" 확률을 확정하고 안심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 남자를 엘리베이터에 먼저 태워보내고 자기만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인가요? 지금 우리는 강력범죄와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확률계산이 빗나갔을 경우, 아주 재수없게도 그 작은 확률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경우 인생이 파탄납니다. 왜 생명과 안전의 위협에 관한 일을 여자는 도박에 맡겨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누구도 강력범죄를 당할 여지를 계산하고, 감수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보장을 갖고 살죠. 그런데 여성이라는 조건을 갖추면 이 보장이 매우 떨어지게 됩니다.
MELM님이 간과하는 것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판단을 오로지 분모와 분자로만 놓고 볼 것을 요구하지 그 판단으로 지켜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똑같은 확률이 적용되어도 이기면 백만원을 얻고 지면 백만원을 잃는다는 확률게임과 이기면 백만원을 얻고 지면 1억을 잃는다는 확률게임과 이기면 0원의 이익을 얻지만 지면 죽거나 크게 다친다는 확률게임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여성은 생명과 안전과 존엄에 대한 이 기본적인 판돈을 난데없이 잃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포함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여성은 단 한명도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성의 분모와 분자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일까요? 특정 집단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남성이라는 동일한 팩터를 가진 주체에게 동질한 권리침해를 받은 상황에서 확률계산이 과연 타당하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안저노가 생명에 대한 감각은 0 아니면 1입니다. 그 누구도 몇퍼센트의 확률을 두고 저울질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건 도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골목길을 걷다가 뒤에서 남자 발걸음이 들리면 그걸 확률 계산하고 있을 것 같나요? 미안하지만 헛소리에 가깝습니다.
"범죄자 중 흑인의 비율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흑인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도 전혀 틀린 주장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방성을 이야기했던 것인데 MELM님께서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집단내 대다수의 무고한 사람은 어떤 범죄나 폭려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그냥 당연한 전제이지 결정적인 근거가 아닙니다. 흑인의 범죄율이 높다고 흑인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의 범죄율보다 높이 집계되는 차별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01 )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129511524 )
즉 그 범죄율 자체가 객관적이지 못하며 흑인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범죄율이 더 높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MELM님 말대로 하면 세상 어느 집단도 다 안전하고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멕시코 후아레즈라고 과반수 넘는 사람들이 다 마약 판매하는 갱이고 사람 참수하는 조직원들이겠습니까? 아무리 범죄율이 높고 범죄자들이 많아도 대다수는 선량한 시민이고 가해자가 되기도 어렵습니다. 분모가 분자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은 모집단의 안전함을 추정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흑인과 백인의 범죄율 차이는 한국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범죄율 차이보다 훨씬 더 작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직접 통계를 들어서 확인해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집단의 위험성을 느끼는 것은 분자가 분모를 초월하는 형태가 나올 때가 아닙니다. 조두순 사건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 당시 아동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노인이 보도된 사례는 조두순 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이 난리가 났고 그 다음부터 아동의 안전권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단 한건으로도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충분합니다. 어떤 폭력은 단 한명의 피해자로도 사회 전체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이 실질적인 대처로 연결됩니다. 그것은 가해자 숫자나 비율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끔찍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어떤 주체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어떤 비율이 과반수나 특정지점을 돌파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계속 MELM님은 대다수의 비범죄자를 핵심논거로 쓰고 있습니다. 이 명제는 한 잡단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 집단은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몇퍼센트부터가 어느 집단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까요. 10%? 20%? 25000/25000000 은 확률로 1/1000입니다. 2500만 중에 2만 5천밖에 가해자가 안되니까 그 정도면 남자는 괜찮은 집단입니까? 혹은 남성 전체를 비판하기에는 부족한 비율입니까? 사회적인 분노란 그렇게 숫자놀음으로 단순히 정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숫자놀음은 단한명도 더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사건의 특성을 무시한, 지극히 집단을 우선시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에 가깝습니다. 어떤 사건은 단 한건만으로도 사회 전체의 공포나 분노의 임계점을 넘어섭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당하는 강력범죄는 집계된 것만 모아도 그런 종류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사건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생명과 안전과 존엄을 걸고 있는 이슈입니다.
숫자놀음이 얼마나 이상한 논리이냐면 어떤 강간범을 두고서도 저 남자는 딱 하루만 여자를 강간했고 그 나머지 날에는 단 한번도 강간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꿀 수 있습니다. 0과 1의 이진법적인 사건에서 폭력의 값이 1이 되는 사례가 모집단에서 계속 발생한다면 그 집단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란 인간의 신체와도 같아서 세포 하나만 썩었다든가 체온조절만 이상이 있고 나머진 다 정상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그러죠. 이것은 흔한 도덕적 일탈이나 실수가 아니라 강력범죄의 영역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는 충분히 유기적이고 그 악영향은 사회전체에 퍼집니다. 사건 하나, 가해자 한명 이렇게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인사건이 한명에게서 거듭될 때 그걸 "연쇄살인"이라고 규정합니다. 남성의 강력범죄는 여성의 강력범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연쇄주기가 짧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다수의 분모가 아니라, 특정 분모에서만 특히 높아지는 분자의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그것이 바로 일방성이고 고유성입니다. 특히나 여성주의에서의 남성폭력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이 남성의 "유별난" 폭력성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폭력성이 높다거나 범죄자 팔자를 띄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미신에 가까운 운명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재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뭔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결과로 남자라는 집단에서만 대단히 폭력적인 가해자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별을 팩터로 했을 때 남성의 범죄는 독점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죄는 남성이 더 많이 저지르고, 범죄의 강도가 올라갈수록 남성의 비율이 올라간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라는 문장은 부정확합니다. 그건 상대적으로 남자가 더 많이 저지른다는 비교급의 표현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에게 저지르는 강력범죄는 극히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아예 0은 아닙니다. 그런데 0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MELM님은 여자에게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보셨나요? 99.99%의 남성이 여성에게 강간당할 위험을 아예 상정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역강간'이라고 부르는 남성의 판타지는 있습니다) 여성한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한번도 안해보셨을 겁니다. 대다수 남잗르이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고유정이 아무리 악독해도 남성의 결혼율을 떨어트리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여자들만의 피해의식이 아니라 실제로 남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MELM님의 숫자놀음은 왜곡된 인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강력범죄 가해자 25000명은 딱 그 숫자만을 실패로 두고 나머지 모든 남자들의 결백과 무오함을 증명하나요? 전혀 아닙니다. 빼박 실형이지만 어떤 사정으로 고소는 못한 사건, 실형을 받기엔 아리까리한 사건, 분명 진실이지만 실형을 받게 할 수 없는 사건, 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나 명백한 폭력인 사건, 도덕적으로도 애매하지만 여성에게 불쾌를 안기는 사건... 남성 집단의 전체적인 실패는 단지 무슨 가해자 숫자만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가해자 숫자가 나오기까지 그보다 약할 뿐인 수많은 폭력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농도가 확실한 범죄에서 애매한 도덕적 오류로 그라데이션이 될 수록 남자 모집단의 실패자 숫자는 25000명에 9을 두개는 더 붙여야 할 겁니다. 범죄자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폭력을 사회적으로 학습해온 이들이기 떄문입니다. MELM님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회전체적인 현상입니다.
일베가 몇명일 것 같습니까? 일베만 안하는 남자의 숫자는 몇명일까요? 여자 일베가 있나요? 그나마 성별반전된 사례로 취급받는 워마드는 회원수가 초가집 수준입니다. 디시 인사이드의 이용자 수는 몇명일까요? 그에 해당될만한 여초 커뮤니티는 없습니다. N번방을 여성전용으로 만든 사례가 있나요? 합성으로 지인능욕을 한 여성들이 있나요? 그 어떤 종류의 폭력을 가지고 와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정도에서 그치는 건 없습니다. 남성의 폭력은 여성의 폭력을 상회하는 수준도 아니고, 그냥 압도합니다. 그 어떤 "남혐" 비제이도 남자 비제이의 주소를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며 실시간으로 방문하려했던 방송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문제를 두고서도 MELM님은 이게 강력범죄 가해자 25000명만 딱 도려내면 끝나는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대다수 남자들이 선량하고 문제없다는 일반화의 오류죠.
여성들이 이런 현상을 보고서도 모든 남성을 평가하지 말아야한다거나 경계심을 갖지 말아야한다면 그건 인지부조화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프레임 하나에 휩쓸려서 어떤 근거도 없이 남성 개개인을 찍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냥 온라인 게임하다가 여자 목소리만 듣고 xx년이라고 욕하는 경험을 하면서, 난데없이 성희롱 발언을 들어서, 염산 뿌리고 싶다는 악플을 받아서, 페미들 다 죽빵 갈겨야 된다는 소리를 길가다가 들어서 그렇습니다. 저 숫자만 딱 존재하는 현상이고 나머지 구체적인 정황은 어떤 것도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시면 그건 정말 틀린 해석입니다.
MELM님께서 이야기하는 대로 대다수 남자들이 가해자 남성과 구분되는 것을 이야기하려면 가해자남성과 안그런 남성이 확실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스카이 세개 대학에서 단톡방 여학우 성희롱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명문이라는 대학교들에서 예외없이 단톡방 성폭력 사건들이 터진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직업, 직군, 교육, 연령, 수입, 교양, 명성, 이런 거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남성이라는 성별을 팩터로 공유했을 시 모든 영역에서 성범죄 가해사실이 고루 관측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팬들의 돈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최정상급 남자 아이돌들이 특수강간과 도촬을 저지릅니다. 지상파 남자 아나운서가, 성범죄 피해자를 담당했던 인권변호사가, 지자체장이, 검사가, 어느 영역에서든 성범죄 가해사실이 드러납니다. 가해자 25000명만 빼면 나머지 남자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명백한 대표적 사회현상을 두고서도 숫자에만 치중한다는 것은 사건의 실체를 볼 뜻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편견의 원인에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성차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젠더이슈를 두고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화법이 바로 인간삭제의 화법입니다. 현상은 있는데 그 현상을 일으킨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논의는 추상적 관념으로만 빠집니다. 지금 남성이 여성에게 독점적으로 행하는 강력범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갑자기 그 이유는 뿌리깊은 성차별로만 지칭됩니다. 그러니까 그 성차별은 누가 합니까? 성차별이란 현상이 갑자기 생겨나서 여자한테 공기처럼 작용하고 사라지는 그런 건가요? 강력범죄 중의 하나가 강간입니다. 강간은 성차별로만 있씁니까? 강간을 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사회적 현상은 현상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현상에 책임이 있는 실질적 주체들을 통제하고 변수를 차단해서 그 현상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강간이라는 성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은? 강간하는 사람을 처벌하고 그에게 사회적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걸 지금 충분한 수준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시면 안됩니다. 그게 충분했으면 미투가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한국은 대한민국 검사도 자기가 당한 성추행을 고소하지 못하고 끙끙대다 인생을 걸고 손석희의 뉴스룸에 나가서 인터뷰를 해야하는 그런 곳입니다. 며칠 전 일어난 김태현 일가족 몰살사건? 집유를 몇번이나 받았던 범죄자입니다. 이 나라는 성차별에 대한 대응과 처벌이 전혀 합리적이지도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그마나 이제서야 조금씩 바뀌는 거죠.
"다만 나에 대한 가해자는 저기 있는데, 문제는 한국남자니까 저 가해자 말고 한국남자 모두를 미워하라거나, 지나가던 모르는 저 남자도 미워하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 말이 피해자에게 설득력 있고, 감수성 있게 들리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
이것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입니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과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그 피해자가 다른 기사의 다른 남성가해자와 여성피해자를 봤을 때 과연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지. 성폭력은 매일매일 일어납니다. 누가 누구한테 모든 남자를 미워하라거나 모르는 남자도 미워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신다는 게 이미 여성의 현실에 너무 무지하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임계점을 넘은 사건에 대해서는 단 몇건만 연속이 되어도 집단 전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크게 높아집니다. 한국에서는 이 임계점이 넘은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성의 훼손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울분이고 감각의 공유입니다. 한 집단이 꾸준히 보이는 폭력적 경향성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남자라는 집단이 보이는 경향성은 MELM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잔학합니다. 물론 이건 어떤 경험이 있어야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합니다. 다만 피해자가 무슨 선동에 휩쓸린다거나 남성 전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당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황망한 소리인지는 좀 상상을 해보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성이라는 게 아무것도 못느끼는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건 대단한 착가입니다. 여성인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MELM님의 주장에서 생략되어있는 것들은 여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남성과, 남성 때문에 여성이 처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묘사들입니다. 그걸 숫자로 압축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현실감각이 뒤틀려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성간의 권력차를 이야기하셨죠? 지금 MELM님께서 그 권력차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남성이라는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다른 남성들의 실패를 계속 답습하고 반복해도 남성이라는 집단을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것이 바로 권력입니다. 권력은 타인에게 평가를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평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입니다. 양성간의 권력 차이를 좁히고 남성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은 바로 남성이 집단 전체적으로는 무오하고 무고하다는 그 환상을 벗겨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성을 향한 강력범죄는 인간 모두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닙니다. 남성만이 독점적으로 여성에게 저지르는 범죄죠. 여성도 남성에게 저지르고, 여성도 여성에게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 모든 논의가 억울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남성을 볼 때 가져야 할 생각"이라고 글을 한번 써보십시오. 어떤 글이 나올 수 있을지. 제가 왜 이렇게 마무리를 하냐면 MELM님께서 남성으로서 평가당하는 남성의 억울함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떤 집단에서만 독점적으로 발생하는 실패는 그 집단의 특수성을 재고하게 하는 기준이 됩니다. 현재 한국남성이라는 집단의 실패횟수는 손정우사이트와 N번방을 넘어서 아직도 연쇄되고 있습니다.
2021.04.17 06:47
2021.04.17 07:25
2021.04.17 06:53
2021.04.1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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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07:37
2021.04.17 08:05
2021.04.17 09:11
흑인의 범죄율이 미국내 타인종 범죄율보다 훨씬 더 높은 이유에 편견이 포함되지만 편견이 높은 범죄율의 주요한 원인이거나 편견이 해소되면 흑인의 범죄율이 타인종과 유사한 비율이 될거라고 추정되지는 않습니다. 흑인의 자산이 백인의 1/10이라거나 교육수준이 낮다거나 혹은 70%이상이 결손가정이거나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환경때문이라고 보는게 상식적이라고 봅니다.
흑인과 백인이 비슷한 비율로 마리화나를 피우지만 흑인의 마리화나 소지 검거율이 백인의 4배 이상인 이유는 인종적 편견보다는 백인이 구매자로서 안전한 자택에서 피우는 반면 흑인은 판매자로서 길거리에서 소지해서 체포되는 경제적 격차때문입니다.
인종이나 성별같은 요소를 범죄의 팩터로 두는 경우 통계적으로 백인남성은 흑인여성의 잠재적 성폭행 가해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흑인의 압도적인 잠재적 살해자는 흑인이라는 결과를 도출합니다.
2021.04.17 13:45
네 저는 그것을 스켈링톤님이 한국남성과 한국여성의 관계에 적용해보시길 바랍니다.
2021.04.17 14:16
2021.04.17 17:29
맨 처음에 동질한 사례로 예를 든 건 제가 아니라 melm님입니다.
2021.04.17 18:48
melm님의 주장이 틀렸다는건 본인 주장입니다. 범죄에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시면서 동시에 흑인범죄율같은 자료를 아전인수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2021.04.17 09:51
2021.04.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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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4:42
교차적 정체성을 지닌 모든 사람이 고유한 장르의 폭력을 경험합니다. 여성도 마찬가지고요. 여성이 다양한 교차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서 교차적 폭력의 수행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폭력의 주체는 폭력을 수행하는 주체로 상정하면 됩니다. 본문의 남자라는 집단은 잔학하다는 명제를,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잔학해지고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고치면 됩니다.
2021.04.1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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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9:19
(일부 내용을 오독해서 댓글을 수정했습니다.)
sonny님은 "남성은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자다"라는 표현을 쓰고 "남자라는 집단이 보이는 경향성은 MELM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잔학합니다."라는 말로 남성 집단의 경향성을 한데 묶어 말하고 있죠. 이것은 논점이 되는 "사례"를 명확히 제한하는 주장과는 다릅니다. 이런 호명은 남성 안에, 집단 안에 존재하는 소수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리면서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피해자성을 지우고, 여성 집단을 가해자성에서 면죄시킵니다. (집계되는 강력범죄 통계는 사회적 폭력의 가해자성/피해자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도 아니고, 소수자의 피해를 충분히 가시화 할 수 있는 지표도 아닙니다.)
2021.04.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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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9:51
구두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논점이 조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sonny님의 "이러저러한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예시하고 있고 여름님은 sonny님의 "문제가 없는 발언에는 이러저러한 것이 있다"라고 예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름님의 '문제 없는 발언'에 대한 규정에 제가 동의하는 반면, 여름님은 제가 '이런 것이 문제다'라고 하는 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지요. 이 논점은 결국 sonny님과의 논쟁으로만 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논점에 관한한 의견을 여름님께 드리는 건 같은 맥락을 빙빙 돌 것 같습니다. 여름님이 답변을 주시지 않아도 괜찮고, 제가 더 답변을 드리지 않아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1.04.17 13:36
여름님께서도 짚어주셨으니 짧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정체성이 하나만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정체성마저도 다 압도할 만큼 범죄에 있어서 성별이 큰 팩터로 작동한다는 걸 설명한 겁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서 장애인은 상대적 약자이지만 남성장애인과 여성비장애인의 경우 그 권력은 뒤집힙니다. 교사와 학생, 승객과 택시기사, 군대 간부와 병사 같은 관계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당연히 언제나 모든 관계에서 성별이 최우선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이 성별이라는 요소에 압도되는 경우는 아주 허다합니다.
저는 무결한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설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거야말로 가장 안티페미니즘적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설정하신 논리야말로 여성의 취약성을 증명합니다. 이주 노동자 남성들을 착취하는 여성 사장의 예를 들어봅시다. 이 여성사장은 이주 노동자 남성들의 성적 모욕과 폭력을 통제하거나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계급적 권력과 무관하게 성별이라는 요소는 여성을 약자의 위치에 놓는다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여성이 약자라는 이야기는 여성의 도덕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귤토피아님이 저에게 적용하는 인신공격의 비판에 대해서 한마디 드릴 수 밖에 없네요. 지금 귤토피아님이 저에게 보이고 계시는 태도는 이중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당하는 무례는 제가 알아서 무시하면 되는 일이지만 제가 저질렀다고 평가받는 무례는 제가 귤토피아님에게 그 영향력을 행사받아야 할까요. 저는 뭐 크게 신경은 쓰진 않습니다만 귤토피아님이 저에게 적용하는 기준은 좀 신경이 쓰이네요. 제가 당한 무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되 제가 저질렀다 평가받는 무례는 제가 직접 공론장 조성의 대의를 위해 지적받고 수정해야 하는 부분일까요? 스스로 "말할 가치도 없는 부류"를 정해놓으신 것처럼 저도 제가 화를 내거나 공격할 대상을 추리고는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귤토피아님이 저에게만 적용하는 이 잣대가 제가 다루는 이슈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저는 논의의 예의를 잘 지키는 이준석이 아주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언어는 형식과 무관하게 담고 있는 의미에서 이미 무례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2021.04.17 14:51
저는 젠더가 주요한 사회적 폭력의 팩터라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어요. 젠더의 위계에서 여성이 일반적으로 약자라는 사실도 부정한 적이 없고요. 그런데 그 사실이 다른 약자성과 소수성을 향한 폭력의 라이센스가 되지는 못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걸 전혀 반론하지 않으셨고요. (sonny님은 '여성이 약자임은 여성의 계급성에 의해 부인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것을 부정한 적 없어요-다만 모든 교차적 소수성을 지닌 존재자들이 각자의 고유성대로 약자이고 소수자일 뿐이죠. 여성처럼요. sonny님은 "다른 요소들이 성별이라는 요소에 압도되는 경우는 아주 허다합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을 부정한 적도 없어요. sonny님은 "여성이 취약하다"고 하셨지만 이것을 부정한 적도 없어요. 돌려주신 주장들이 대개 허수아비 때리기로 보여요.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에 대한 반론인지 부연이 필요해요.)
저는 윗댓글의 인신공격자들을 말할 가치도 없다고 평가했어요. 이것이 나름대로 sonny님을 저열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금지와 배제의 메시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sonny님이 알아서 하라"라는 메시지로 이해하셨다면 이 부분에서 더 드릴 말씀이 없겠네요.
2021.04.17 17:34
"그런데 그 사실이 다른 약자성과 소수성을 향한 폭력의 라이센스가 되지는 못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걸 전혀 반론하지 않으셨고요. "
제가 언제 다른 약자성과 소수자성을 향해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했나요? 이야말로 허수아비입니다.
2021.04.17 18:32
2021.04.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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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9:47
말씀하신 대로 저는 개별적 존재를 한 정체성에 대입시켜 분석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씀을 sonny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자다"라는 발언, "남자라는 집단이 보이는 경향성은... 잔학하고 심각하다"라는 규정적 평가 없이도 정체성의 정치적 분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책 추천은 감사합니다. 기억해두고 시간이 날 때 찾아보겠습니다만, 정체성 분석의 가능성 자체는 문제가 되는 논점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자기성찰과 자기가해자성의 분석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당연히 가능한 일이니까요. sonny님은 이 기본적인 자기가해자성 분석을 빠뜨린 채, 국가통계상의 범죄지표라는 단일 지표에 잡히지 않는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로, 남성 집단을 가해자 주체로 호명하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적인 것이고요.
2021.04.17 20:25
"sonny님은 이 기본적인 자기가해자성 분석을 빠뜨린 채, 국가통계상의 범죄지표라는 단일 지표에 잡히지 않는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로, 남성 집단을 가해자 주체로 호명하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적인 것이고요."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2021.04.17 20:16
평가에 대한 권력의 이야기는 어떤 대상에게도 어떤 평가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평가를 할 수 있는 순간에 평가가 불가하게 하는 것, 혹은 평가를 할 수 없는 순간에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현상이 권력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귤토피아님이 만약 한국남성이라는 집단을 평가가 불가한 집단으로 인식하시거나 다른 맥락을 전제하신다면 그것을 따로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한국남자, 한국여자, 일본남자, 일본여자, 20세기 사람, 19세기 사람, 남아메리카의 거주민 등 모든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평가 자체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집단은 어떤 성향을 띄고 있으며 우리는 각각의 성향에 상호영향을 받습니다.
남성이니까 가해자다, 라는 게 아니라 남성으로서 가해자다 라는 주장입니다. 정체성은 교차합니다. 교차하는 정체성이 전부다 모욕을 당하거나 폄하를 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체성을 끌고 와도 무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남성들이 늘 끌고 오는 변론의 주된 논리이기도 합니다. 남자는 희생자다, 남자는 군대에 2년간 끌려가는 피해자다, 남자는 가정의 부양자다... 가해자성과 소수자성은 다면적으로 공존합니다. 그리고 이 현실은 늘 지워지고 있습니다. 남성의 가해자성이라는 아주 큰 측면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약자성 혹은 다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돌아옵니다. 한국남자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사람이고, 부모님 선물 걱정하는 아들이며, 여자친구 데이트 기대하는 연인이고, 게임 좋아하는 덕후이며, 더민주를 비토하는 정치적 세력입니다. 이와 같은 다면성이 어떤 성폭력 가해자의 정체성을, 혹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성폭력 옹호론자들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일까요? 이 게시판에서도 일어났던 일인데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이것은 듀게 회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까요?
따라서 저는 다른 약자성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제 문장이 한국남성이 갖고 있는 가해자성이라는 속성에 대해 다소 부정확했던 점은 인정합니다.
2021.04.17 20:27
저는 한국 남성이라는 집단을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바로 위의 여름님과의 대화에서 관련된 제 입장을 충분히 썼고, 할 이야기도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꼼꼼히 읽고 생각하되 댓글은 이만 달도록 하겠습니다.
2021.04.17 10:00
빈도주의와 베이지안의 논쟁과 흡사하네요. 저는 어떤 기시감을 느껴요, 현재 한국에 정치적 "라제"가 개봉한거죠. 다음에 뭐가 개봉될진 모르겠지만,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이 일치할 일은 없을겁니다.
빈도주의 관점을 들을 때마다 흥미로운 의문이 있어요. 한국 남초 커뮤에서 이걸 반대로 광범위하게 동의하고 있을 것이 기독교의 "일부입니다" 반박일 거거든요. "전체가 일부보다 적다", "서로가 서로에게 일부다" 등의 밈으로 가열차게 비난하죠. 빈도주의 관점의 핵심적 아이러니는 "왜 내부적 소수가 잘못되었다면 이들을 적대적으로 외부 집단과 연대하지 않는가"죠. 보통 이런 관점으로 자신들을 가정하면 그 다음 나왔어야 할 말은 "자정"이나 "개혁" 아닐까요?
사실 양쪽의 이야기에서 제 마지막 질문으로 유추될 수 있는 사실은 범죄자의 정의가 매우 중요한 추처럼 작용하고 있다는거죠. 잠재적 범죄자까진 아니다, 잠재적 여성혐오자일수는 있지만 이랄까요. 내가 속한 내집단의 (범죄까지는 아닌) 잘못이 어느 수준으로 명명백백하다고 생각되고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다수라면 나머지를 축출하는게 논리적으로 옳은 그림이겠지만, 너무 어렵군요.
(P.S. 그리고 솔직한 심경으로 너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습니다. 원래 선거 이후 정치적 판도가 바뀔 때, 역전될 것을 예측한 분들의 솔직담박한 글들이 올라오는걸 자주 봐왔고, 선거 직전에 예측으로 쓰지 않는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보다 이 보궐 선거가 촉발된 이유가 명백한 성범죄와 그 결과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는 그나마 거기가 더 낫다고 여성들이 더 지지하고, 그 결과에서는 페미니즘이 실패의 요인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 거대한 부조리극은 대체 뭐랍니까.)
2021.04.17 10:25
2021.04.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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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1:59
노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어제 오늘 한정, '남성의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잠재적 범죄자론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옹호라고 단정지어 버리니
지금까지의 이야기 되었던것이 그냥 시간낭비처럼 되어 버리는 군요. 뭐,,이전부터 항상 그래왔지만요...
2021.04.17 13:40
저는 잔오님의 이 의견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잠안자고 쓰려니 생략했던 부분인데, 일반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이 그렇게 확고히 구분된다면 그 현상은 필연적으로 집단 내에서의 배제와 축출로 이어집니다.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는 남자들이 박원순을 맹렬히 공격했던 것이 그렇고 김성준을 "남페미"로 구분한다음 공격했던 것이 바로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대다수 남초 여론은 "남페미"의 범죄를 공격하는데는 열을 올리지만 "남"의 범죄를 공격하는데는 열을 올리지 않습니다.
전 이걸 개인적으로는 '멘바고'라고 부릅니다. 아주 자동적으로 남자들의 여성을 향한 규칙위반에는 침묵을 하는 현상이죠.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친부모는 잠재적 자식 살해자로 분류되어야겠네요. 아동 살해는 압도적으로 부모에 의해 실행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친부모가 양부모보다 월등하게 자식 살해 비율이 높죠. 뭐, 부모에게 살해당하지는 않더라도 학대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자식들도 아주아주 많고요. 이러고 보니 한남과 부모는 참 비슷한 구석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