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9 18:37
많은 이들이 칭찬하는 이 영화에 왜 이렇게 공감되지 못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아마 삶을 삶의 감각 자체로 만족하라는 초정치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꼭 꿈을 이루지 않아도, 그저 하루하루 적당히 살아나가는 삶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 꿈과 삶이 서로 대립하는 이분법의 전제라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성찰이라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삶이 반드시 꿈과 대립하지만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삶의 영역에 계층이나 빈부같은 격차의 문제, 즉 사회적인 묘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 주장은 한없이 나이브해집니다.
주인공은 지금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꿈을 따라서 재즈 피아니스트 공연자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음악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선택할만한 이유가 있고 도전할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것이 과연 대다수 사람들의 삶인가 하면,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댇수의 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죠.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전제합니다. 물론 주인공은 영화에서 그렇게 풍요로운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그는 꿈 혹은 안정이라는 두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 온 생을 갈아넣죠. 꿈을 꿀 여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게는 조금 한가해보였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저승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만 유효해집니다. 아무도 개똥밭에서의 삶을 자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삶과 꿈이 아니라, 죽음과 삶을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똥밭에서 구를 수 밖에 없을 때 역으로 삶다운 삶은 남지 않게 되니까요. 출생률이 0.9로 떨어지고 대다수 청년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입니다. 그 공무원조차도 연금이 깎여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끝을 기준으로 삼아 삶을 긍정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역으로 <소울>의 세계관에서 영혼이 육신을 걸치고 환생을 해야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영혼만의 극도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내세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오히려 소울이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영화는 그걸 이뤄지기 직전의 꿈이라는 갈등으로 말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육신지옥 내세천국의 프레임으로는 저연령층을 위협할 뿐인 이야기가 되겠죠. 픽사의 다정한 태도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아무 불안도 상실도 통증도 없는 대신 아무 감각적 쾌락도 없다는 정신적 무미무취의 세계를 조금 더 강조했다면 그래도 저는 수긍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내세에서도 내내 소란스럽고 쾌활하니 피자맛을 못느끼는 씬에서도 그게 크게 와닿진 않더군요. 역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완벽한 자유는 허무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통제하지 못하는 삶의 결핍을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는가. 삶에 대한 영화라 그런지 죽음을 묻게 되는군요. 어쩌면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도취된 감각이야말로 시궁창 삶을 잊기 위한 최후의 도피처는 아니었는지 좀 독한 반문을 던져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못된 어른은 <소울>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기어이 <위플래시>로 대답하고 마는가 봅니다.
2021.04.09 18:39
2021.04.09 18:47
철지난 힐링 메시지라는 평들에 반박하기가 어려웠어요. 그것은 오로지 영화의 형식에서만 찾을 수 있겠지만...
2021.04.09 18:57
흠... 제가 받아들인 바와는 많이 다르군요
1.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 -> 꼭 꿈을 이뤄야만 삶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2. 삶의 의미를 못찾겠어서 지구에 태어나기 싫은 영혼 -> 그래도 한번쯤은 살아볼만 한가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두 캐릭터 만으로도 삶 vs 죽음의 고민도 간접적으로 풀어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우울증이나 좌절로 죽음을 택한 캐릭터도 집어넣어야겠으나... 그게 이야기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어서요ㅎ (관람 등급도 좀 높아지....)
물론 꿈 꾸는 것 자체가 버거운 사람 보다는 꿈이 뭐라도 있었는데 좌절된 사람들에게 더 어필할 이야기라는 생각은 저도 들긴 합니다.
저는 그래도 다들 크든 작든 나름 상황에 맞는 꿈은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좁은 시야의 편견일 수는 있겠네요.
2021.04.09 19:19
제가 역으로 이 영화에 공감할만한 심적 자산이 모자란 상황일지도 모르죠
2021.04.09 20:22
음악 말고도 여러분야에서 심취하는 사람을 다룬 것을 보고싶습니다.
2021.04.10 14:13
그게 저는 이 영화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그림을 그리는 걸 이렇게 고취된 상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좀 아리송하거든요. 무아지경이 어떤 삶의 하이라이트로 나오는데, 애초에 그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일상의 감각을 어떻게 반증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했어요.
2021.04.10 05:42
전 모두가 명작이라고 하는 "인사이드 아웃"도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말았거든요. 저한테는 큰 감흥이 없는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소울"도 나한테는 안맞겠구나 싶었어요.
2021.04.10 14:13
헉 저는 인사이드 아웃은 처음부터 펑펑 울면서 봤습니다 ㅋㅋ
2021.04.10 07:33
선택의 순간이 그리 거창한 것이었나요? 이 주인공의 선택지는 평범한 음악교사 vs. 평범한 재즈 연주자 였을 뿐입니다.
인생의 선택지는 특정인물만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똑같이 시궁창 같은 삶일지라도 매달 30만원을 모아 수억을 만드는 방법을 공부하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시간을 끝없이 사회를 탓하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도대체 이 놈에 나라꼴이 왜이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데 투자하고는 동조해주는 사람들 댓글을 읽으며 정의로운 본인의 모습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 거죠.
2021.04.10 14:14
아 예... 앞으로 제 글에 댓글 안다셔도 될 듯!
2021.04.10 22:40
저도 보다가 영 아니다 싶었어요. 일단 그 사후세계의 시스템이 전혀 납득이 안가고, 설명도 실패했다고 보고
왜 주인공에게만 그런 엄청난 특혜가 주어지는지도 모르겠고요. 사후실세인지...!?
또 <코코>에서도 느꼈던 점이 가장 역겨운데 그걸 고스란히 반복하더군요
뭐냐면 남자들을 위해 노모가 무조건 희생하고, 그걸 감동으로 미화하는 정서.
대체 왜 자꾸 이런 얘길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코코에선 누가봐도 음악질이나 하는 개망나니였던 할배? 를
온 가족과 할머니가 인생 바쳐서 음악길을 지켜줘야 되고, 또 주인공의 기타를 부숴버리는 장면에선 극장을 나갈까 고민했거든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하는 사람에게 부모가 악기나 화구를 버리거나 부수는건 꽤 큰 트라우마 자극제입니다.
근데 소울에선 무슨 양장점하는 엄마한테 가서 몇마디 쏼라쏼라 하니까
또 엄마가 남편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헬렐레 해서는 그래 니 원하는대로 하렴,,,그렁,,, 모드가 되더군요.
기만적이고 얄팍한 영화라고 봅니다.
2021.04.11 10:10
사후실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