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엘리엇 페이지

2020.12.03 03:58

여은성 조회 수:658

 

 1.오늘은 전에 언급한 송옥에 가서 메밀을 먹어볼까...하다가 메밀이 땡기는 날은 아니라서 관뒀어요. 대신 가로수길-압구정 사이쯤에 있는 브라운 돈까스에 가려고 했어요. 한데 브라운돈까스에도 브레이크타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문을 닫길래 압구정로데오까지 괜찮은 식당 없나 계속 걸었지만 결국 못 찾았어요. 


 압구정로데오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고속터미널 역에서 갑자기 아웃백이 땡겨서 재빨리 내렸어요. 한데 또 아웃백을 가는 길에 조니로켓 햄버거가게가 보이는 거예요. 조니로켓이 땡겨서 먹으려다가...생각해 보니 조니로켓은 우리 동네에도 있는 거였어요.



 2.그럼 여기서 조니로켓을 먹고 다시 차비를 내고 우리 동네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환승이 무료일 때 다시 차를 타고 동네까지 돌아가서 조니로켓을 먹는 게 이득인 거죠. 그럼 똑같이 조니로켓을 먹으면서 차비도 아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네로 돌아갔어요. 


 

 3.오늘은 엘렌 페이지가 남성이라고 발표했길래 설마 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건가...했는데 그런 건 아니더군요. 엘렌 페이지...에드워드 노튼이랑 비슷한 과라고 생각해요. 좋은 배우인가 별로인 배우인가를 떠나, 작품에 출연하는 순간 그 작품에 자신의 색깔과 존재감을 덧씌우는 배우죠. 잘 맞는 영화를 만나면 대박이지만, 어벤저스처럼 감독까지도 기획자의 장기말 중 하나인 영화에는 별로 안어울리는 배우겠죠.



 4.휴.



 5.잘 모르겠어요. 엘렌 페이지 같이 멋지고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저런 주장을 하면 지지하기가 쉽죠. '와 그동안 고민이 깊었구나! 널 지지할께!'라고 반응해 주기가 쉬워요. 하지만 엘렌 페이지 같은 특권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저런 생각을 말로 하기가 힘들어요. 욕이나 조롱을 먹거나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라는 비꼬기를 당하겠죠.


 왜냐면 사람들은 인식을 강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표현을 강요당하는 건 더욱 안좋아하거든요. 엘렌 페이지는 전투력이 높으니까 어느날 갑자기 '오늘부턴 나를 He, 엘리엇 페이지라고 부르라고!'라고 강요할 수 있지만 전투력이 높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어라...그러고보니 '불러 달라'에는 언급하는 것까지도 포함되는 걸까요. 이름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 이제부턴 엘리엇 페이지. 나는 이름을 바꾸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는 이름을 세개씩 쓰고 있으니까...나에 비하면야 뭐.



 6.게다가 엘리엇 페이지는 실제로 만날 일도 없어요. 가까이서 볼 일이 없고 멋진 모습들만 고르고 골라서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이니까 지지하기가 쉽지만 주위에 있고 매일 봐야 하는 어눌하고 비호감 외모를 지닌 남자, 친구 없는 여자가 저런 말을 하면 가까이 하기 싫어지겠죠.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래?'라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거예요. 힘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예요.


 유명하고 힘있는 사람이 지닌 최고의 무기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는 권리거든요. 하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렇지가 않죠. 못 가진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대개의 경우는 그 공격을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니까요. 왜냐면 도덕이라는 것도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일 때에야 작동하는 거니까요. 만날일이 없는 사람이야 쿨하게 지지해 주기 쉽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의 경우는 도덕이 아니라 평판과 서열에 의해 대접이 달라지니까요.


 주위에서 볼 법한, 별다른 힘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호칭을 하루 아침에 바꾸라고 강요한다면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7.아마 그래서 인터넷에서 밈화된 래디컬 페미니스트...또는 젠더 운동가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된건지도 모르죠. 뭔가 머리는 짧고 사납고 드센 이미지의 여성들 말이죠. 엘렌 페이지나 엠마 왓슨같은 사람들이야 멋진 셀카와 함께 멋진 글귀를 올리거나, 멋진 정장을 입고 UN에서 연설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먹어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운동가가 되려면 쌈닭이 되어야만 하니까요. 힘있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멋지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지만 평범한 페미니스트나 젠더 운동가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뭐 하나 바꾸려고 하면 반작용에 부딪히고, 한 마디 한 마디 내딛을 때마다 쌈질을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요.


 



 ---------------------------------------



 


 혹시 오해받을까봐 말해 보자면 나는 젠더이슈 같은 거에 관심이 1도 없어요. 다만 나를 둘러싼 환경보다 내가 강해져야 인생이 편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긴 하죠. 생각해 보니 나와 페미니스트들이 비슷하면서 다른 점은 그 부분인 것 같았어요.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니까요. 나는 나자신이 바뀌면-물론 좋은 쪽으로-가혹했던 환경이 내게 겁을 먹고 알아서 친절해진다고 여기는 편이고요.


 다만 그런 경우에는 환경이 '바뀌는' 건 아니예요. 그저 그들이 지닌 다른 면을 내게 보여주는 것뿐이죠. 나는 사람들이 지닌 다른 면을 내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묻어 두지만, 운동가들은 그럴 수 없겠죠. 운동가들은 세상이 착해진 척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진짜로 착해지기를 원할 테니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1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6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35
114416 헐리우드가 여자 아역배우 전성기 같아요 가끔영화 2021.01.01 454
114415 새해에는 나이는 뺄셈, 행복은 덧셈, 돈은 곱셈, 웃음은 나눗셈하세요~ [2] 가끔영화 2021.01.01 334
114414 새해를 맞아 더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3] 예상수 2021.01.01 586
114413 이런저런 연예이슈잡담 메피스토 2020.12.31 481
114412 한 해 마무리들 잘 하셨는지? [2] forritz 2020.12.31 429
114411 [바낭] 새해 전날 밤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들 [10] 로이배티 2020.12.31 708
114410 다양성과 보편성 [3] 채찬 2020.12.31 467
114409 [송년덕담] 다사다난 했던 2020년도 저물..... [6] ssoboo 2020.12.31 665
114408 [오피셜]FA 우규민, 1+1년 최대총액 10억에 원 소속팀 삼성 잔류 daviddain 2020.12.31 216
114407 '코로나19' & '검찰개혁'...2020년 한국 언론을 말하다(민동기) [3] 왜냐하면 2020.12.31 416
114406 어몽어스 일기 [6] Sonny 2020.12.31 533
114405 [관리] 하반기 보고 및 의견 수집. [19] 엔시블 2020.12.31 722
114404 마음 정리... [4] 미미마우스 2020.12.31 446
114403 [회사바낭] 무슬림, 할랄푸드 [10] 가라 2020.12.31 796
114402 송년음악 가끔영화 2020.12.31 201
114401 미드나이트 스카이 [짧은 소감] [8] ssoboo 2020.12.31 723
114400 완벽한 타인(2018), 마녀(2018) [9] catgotmy 2020.12.30 549
114399 수색자를 봐야 할까요<만달로리안 스포 함유> [9] daviddain 2020.12.30 376
114398 [영화바낭] 두기봉의 세기말 홍콩 느와르 '미션'도 보았습니다 [15] 로이배티 2020.12.30 643
114397 코로나 격리자 식료품 지원과 채식주의자의 권리 [34] tomof 2020.12.30 151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