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의 비혼출산을 보고

2020.11.18 05:07

Sonny 조회 수:1401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사유리의 출산은 일으킨 파문은 크고 넓게 퍼졌다. 고리타분한 정상가족 신화의 흙탕물은 생각보다 진하지 않았고 아이를 안고 홀로서기를 한 여자에 대한 응원들로 이내 맑아졌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사유리의 비혼출산을 두고 출생률(아직도 많은 이들이 '출산율'이라 부르며 단어의 의미를 완성시키고 마는)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점이다. 여자가 결혼해서 애를 낳기 싫으면 혼자라도 낳으면 된다는 남성들의 그 응원은 여성의 위치를 여전히 사회를 위한 재생산 도구에 머무르게끔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심한 비유일까. 남자들의 박수는 양계장 주인이 혼자서도 유정란을 낳는 암탉을 보고 즐거워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결국 애를 임신하고 출산한다는 여자의 노동으로부터, 여자가 자유로워지거나 노동을 분배하는 방향으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자가 애를 배고 여자가 애를 낳으며 겪는 인류유지의 독박은 그대로다. 다만 남자와 가정을 꾸리는 과정이 생략됐을 뿐이다. 단지 사회라는 스마트폰에서, 아기낳는 어플인 여성은 남성이라는 어플을 연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간소화된 생산과정은 그 결과물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 편한 마음으로 노동을 감수할 계기가 되겠지만 노동 자체에 대한 부담은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성은 아직도 부자유하다. 사유리의 홀로출산에 경탄하고 축하를 보내지만 어찌보면 페미니즘보다 일본식 가부장제를 늘 선호해오던 사유리에게 딱 들어맞는, 파격적 형태의 전통적 개념 실천이다. 여자 혼자 아이를 배고 낳는다는 것은 놀랍되 여자가 애를 배고 낳는다는 것은 쭉 이어져오던 여성만의 역사다.


이렇게 말 할 수도 있겠다. 괜시리 꿍해하는 구시대적 남자들과 선을 긋고 싶어하지만 변별점은 별로 없는 신세대 유교 남자들의 환영이 보여주듯 이번 화제는 저출생이라는 과제를 출산이라는 단어로 여전히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가부장제의 진화라고. 가와 부가 없으면 가부장제는 정말로 해체되는가. 이 의심을 조금 더 선명히 하기 위해 더 원초적이고 뻔한 질문을 해보자. 가부장제는 여자에게 왜 나쁜가. 여자가 자유롭지 못하고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없고 아버지가 없으며 가족이라는 굴레와 그 안의 지배자가 없으면 여자가 놓인 피지배의 상태는 해소되는가.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여자의 몫이다. 거시적인 시선을 동원한다면 인류 생존은 여전히 여자가 책임진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사유리의 비혼출산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거꾸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리는 임신과 출산을 위해 거의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신체적, 사회적 접촉인 섹스와 가정꾸리기를 건너뛰었다. 임신까지 이어지는데 당연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없어진 것이다. 불타는 돌을 던져 번쩍 타오르게 해보자. 여자가 섹스를 안해도 된다면, 시험관으로 수정할 수 있다면, 임신과 출산도 굳이 여자가 해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여자친구 혹은 아내라는 역할을 사유리는 수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머니"라는 역할 역시 여자가 수행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것이다. 어쨌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만 하면 될 것 아닌가. 여자가 왜 배를 점령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여자가 왜 죽을 정도의 진통을 느끼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아내가 될 필요가 없다면 어머니가 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지 않냐는 그 뻔한 고정관념의 의도에 난 반대할 생각이 없다. 누가 뭐래나. 상상만 해보는 거잖아. 인류의 변화는 상상과 그 상상이 들춰낸 작은 가능성에서 시작한다. 핸드폰 하나로 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들어서 엠피쓰리랑 디지털 카메라랑 극장이 망할 거라고 20년 전에 그랬다면 엄청난 욕을 먹었을 것이다. 이 상상의 근본적 목적은 여성의 해방이다. 제도를 건너뛰고 생물학적 결합을 생략한다는 건 사회적 역할을 소멸시키고 불공평한 생물학적 노동을 종결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애를 배고 낳아야한다는 개념을 뒤흔들지 못하는 이상 여성의 노동은 여성이 떠맡게 된다. 아직도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대리모"란 이름 아래 외주의 형태로 한계 안에 있다. 여성의 자유가 여성의 신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남성이 담당하는 정자제공이 훨씬 더 간편하게 되었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이나 여성의 노동에서 남성의 몫이 없기에 여성이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할 수 있다는 불공정한 노동의 분배를 증명한다. 남성은 외주를 주고 말고 할 게 없다. 남성은 이미 그 자체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서 분담하는 비율이 생략해도 될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얼핏보면 가부장제로부터의 독립으로 보이는 이 비혼출산에서 "출산"의 형태만이 달라졌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남성의 정자제공만큼 간편해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여성도 난자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의 임신과 출산도 다른 형태의 서비스로 대체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여성의 진정한 독립은 남성의 홀로출산이 가능해질 때 이루어진다. 여자가 더 이상 애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궁이 폐기되어야 여성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저출생 해결의 방법이다. 애를 낳는 것이 간편해지고 여성이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여성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자궁은 여성의 체외에 배치되어야 한다.


가부장제의 균열이 여성의 홀로임신과 출산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은 그만큼 남자들이 호응을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낙태 이슈가 이만큼이나 호응을 얻던가. 남자들은 무엇을 찬성하고 무엇을 반대하는가. 여성의 독립이 출산을 전제로 해야한다면 그것은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태아를 낳는 여자를 고민하되 태아를 낳지 않는 여자는 고민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으로서의 여자를 반기는 세상에 여자는 다시 한번 대답을 해야한다. 아내됨을 거부하는 여자가 있다면 엄마됨을 거부하는 여자도 당연히 있는 거라고. 결국 비혼출산은 비출산과 연결된다. 아이를 낳되 섹스하지 않음은 섹스하되 아이를 낳지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맥락이다. 여자가 여자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통제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 쪽도 저 쪽도 불법이라고 정해놓은 한국에 여자들은 양방향에서 묻고 있다. 여자는 재생산을 할 수 있지만 결정할 수는 있는 거냐고. 출산 혹은 임신중단은 신의 뜻인가? 남자들이 신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닌가? 여자는 인간이고 인간은 자유로워야한다. 과학이 인공자궁을 개발하지 못한 이유는 정말로 과학기술의 미진함인가 여자가 그래도 애를 낳아야한다는 도구적 생각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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