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0 16:17
재택근무가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 사항입니다.
일 주일 째 집에 있으니 고양이님이 놀아달라고 자꾸 보채는군요.
사재기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확진자의 수는 미미한 수준인데도 이 모양이니 진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무서워요.
동네에 조그만 쇼핑몰이 있는데 거기 수퍼마켓이 항상 한산했거든요. 인접한 두 이웃동네(걸어서 15분 거리)에 커다란 쇼핑센터들이 있어서 저희동네 수퍼는 물건도 다양하지 않고 채소도 덜 신선한 편이죠. 그런데 갑자기 활황이 시작됐습니다. 문열기전 아침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맞은편에 한국인 카페가 있는데 덩달아 호황중. 사람들이 쇼핑하고 커피마시고 밥 사먹고 돌아다닙니다.
한 달쯤 전에 호주사람들이 화장지 사재기 하는 것만 뉴스에 나왔을 때는 그걸로 인터넷 밈 놀이하고 놀았는데요. 막상 필요할 때 물건이 없어 구하질 못하니까 이제 짜증이 납니다. 쇼핑몰 2층에 있는 한국 마트 아주머니가 바이러스보다 사람이 더 무섭대요. 거기도 쌀이며 화장지며 티슈며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항공편이 다 끊겼는데 혹시나 한국 물건 수급에 지장이 있지 않나 마트에 물어보니 배로 들어오는 건 괜찮대요.
그런데 중국발, 한국발은 물건을 전수조사 한다며 지금 컨테이너가 검역소에 묶여 있답니다. 재고는 다 떨어졌는데 지금 컨테이너 검역이 4월로 잡혀 있대요. 언제 들어올지 모른답니다.
총리님이 매일같이 급변하는 상황에 맞는 정책 발표를 하면서 '제발 사재기 좀 하지 마라'고 구구절절이 외치지만 사람들이 당췌 말을 들어먹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건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얘기해요. "당신때문에 필요한 사람이 구매를 못하니 제발 필요이상으로 사지 마세요.' 이걸로 행정명령 할 판이예요. 아니면 이미 떨어졌거나.
한국 문화가 집단적이라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저는 그게 '보스 1인 체제를 정당화 하기 위한 구실'이라고만 생각했죠. 유독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는 집단을 보면 제일 위선의 짱 1인이 내 맘대로 다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면서 그게 아니라 정말 한국인의 (동양일 수도 있는데 제가 다른 나라 문화는 경험을 못해봐서 일단 한국만 예로 듭니다) 집단 문화가 있다고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말하자면 저런 광적인 사재기도 그 중의 하나예요. 한국에서 만약 누군가가 한 사람이 물건을 싹쓸이 하고 있으면 생판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이 오지랖을 부리며 '거 어려운 시기에 남들 생각해서 적당히 하라'고 훈수를 둘거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거들기 시작하면서 사재기를 하던 사람은 민망해서 물건을 놔두고 황급히 빠져나갈 거라고 상상합니다.
물론 한국인도 사재기를 하겠죠. 그래봤자 라면, 생수, 참치 통조림 정도일테죠. 라면은 없으면 즉석밥이나 아니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면되고 물은 수돗물을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처럼 모든 생필품을 벌써 한 달째 가게에 물건을 갖다놓는 족족 동이 나니 혹시 최근에 냉장고와 냉동고의 폭발적인 판매 증가가 있었나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고기와 빵도 냉동 저장하기 위해 모두 팔려나가고 심지어 밀가루까지 사들입니다.
이런 차이를 느끼는 건 회의할 때나 프리젠테이션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는 회의 시간이 초과되었다는지 그러면 질문을 할 때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 민폐인가, 이 질문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등등을 고려합니다. 그래서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회의를 우선 끝내고 따로 질문을 하든지 그러잖아요. 여기 애들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회의 중간에 사이드로 빠지는 혼자만 관심있는 질문을 혼자서 줄기차게 물고 늘어져서 회의시간을 다 잡아먹기도 하고 시간이 초과되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반드시 해야만 하죠. 그리고 그런 게 참으로 권장되는 태도라서 말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나?' 이런 생각을 1도 안합니다.
요즘 진지하게 '한국의 집단 문화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럼 그렇게 나쁜 건 아닌데' 생각중입니다. 제게 더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죠. 모든 건 장단이 있고 양날의 검이니까요. 똑같은 오지랖이 명절 친척들의 '취직은 했니? 결혼은 안 하니? 네 사촌 누구는...?' 이런 질문으로 발화하기 시작하면 또 그만한 짜증이 없죠.
쌀이 떨어지면 밥을 시켜먹으면 되는데 고양이 사료를 못 구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예요.
엄청 잘 놀라고 바스락 소리에도 겁을 집에 먹는 애인데 최악의 경우에 밖으로 내 보내서 직접 사냥하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얘가 사냥을 할 수나 있을까요?
남자친구가 '진짜 진짜 상황이 나빠져서 먹을 게 하나도 없고 너와 고양이 둘 중에 하나가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쩔거냐?' 고 묻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한국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줄거다'라고 받아쳤습니다.
그런데 사실, 먹을 건 넘쳐나요. 밀가루와 육류를 세계 수출하는 나라인데 부족할리가... 얼마전에 비도 많이 내려서 농부들 상황도 나쁘지 않고요.
참, 사재기가 넘쳐나니 수퍼마켓들이 배달 서비스를 중단했어요. 웃기는 곳이죠. 이 시국에 배달을 안 하다가도 해야할 상황인데 시행중이던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고 모두 직접 가서 쇼핑을 해야 합니다. 자가 격리중인 사람들은 어쩌라고.
2020.03.20 17:35
2020.03.21 12:20
농담입니다. 저희가 평소에 고어한 농담을 즐깁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남자친구는 인도주의적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된 동물보호론자이며 고양이바보이기도 합니다.
2020.03.20 17:46
그 동네는 산불 지나니 홍수, 홍수 지나 이제 좀 신나게 여름을 즐겨보자 했더니 전염병인거네요; 참 버라이어티한 2020년 이 될듯합니다.
들어가서 열흘 좀 넘게 지내다 왔을 뿐이지만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이 동네에서 본격 터지기 시작하면 매우 클 나겠다 싶은 구석들이 참 많아 보이긴 하더군요.
지난 호주 대화제에 정부가 거하게 삽질 했다던데 이번엔 또 무슨 삽질로 큰 사단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겠어요.
2020.03.21 12:34
산불은 자연재해라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죠. 뭘 해도 욕들어먹는 건 행정부를 맡은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고요. 산불에 대해 정부가 비난받는 쟁점은 세 가지인데 하나는 산과 들과 집들이 활활 타며 소방관들이 불 끈다고 난리칠 때 총리가 말도 없이 하와이로 가족휴가를 간 것. 두 번째는 controlled burning에 대한 것, 나머지는 기후변화 쟁점이예요. 첫 번째는 사실 정부의 삽질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그냥 욕들어먹을 짓을 한 거죠. 총리가 휴가를 가든 어딜 가든 재난 대책은 언제나 작동하고 있어햐 합니다. 화재 진화작업은 꽤 강력하게 행해졌고 해외에서 지원도 받았아요. 그러는 중에 희생도 많았죠.
Controlled burning은 찾아보니 가짜뉴스인 것 같습니다. 여기는 여름이 되면 대규모 산불이 항상 발생하기에 습하고 기온이 낮은 겨울동안 숲의 일부를 여기 저기 미리 태우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미리 태워놓으면 여름에 대형 화재를 어느정도 방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극단적 환경보호론자들이 이것 마저도 인간의 인위적 개입이라며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느쪽이 맞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비판자들은 정부가 이 사람들 말을 들어 controlled burning을 겨울동안 안했기 때문에 이런 산불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을 찾아보니 작년 겨울에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뉴스. 작년 겨울이 유난히도 가물어서 수돗물 사용 제한을 시행할 정도였고 겨울에 비가 오지 않아 여름에 대형 화재 발생및 진화가 힘든 건 자연재해라고 봐야겠죠.
아마 세 번째 기후변화 쟁점이 가장 욕들어먹을 짓 같았는데 환경보호론자들이 이게 다 기후변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 것을 '지금은 그럴 말 할 때가 아니다.'라고 받아친거죠. 보수당 정부가 탄소배출 감소 정책에는 아주 보수적인데다가 사실 대책 자체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산불이 대형화되고 피해가 컸던 것은 호주 정부의 단기간 정책이라기보다는 전 지구적인 문제죠. 캘리포니아 산불도 마찬가지고요. 어쨌든 인류 공동이 같이 대처해야할 문제임에는 분명하고 그걸 무시한 결과인 것은 맞습니다. 거기에 대고 자신들의 전무한 기후변화 대책을 옹호하는 단호한 발언을 해서 또 욕을 들어먹었죠.
결론은 욕들어 먹을 행동과 말을 마구 했다는 건데 실질적으로 산불 진화작업을 방해했다거나 나몰라라 했다던가 하는 직접적 책임은 없는 걸로...
2020.03.20 17:51
2020.03.21 13:34
전세기 와도 고양이님을 돌봐드려야 하기 때문에 못 갑니다. 그리고 오늘 발표에 의하면 호주 정부는 한국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 같군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검사를 해서 조기에 찾아내서 차단한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 점은 다행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검사를 했어요. 오늘 뉴스에서 인구 비례로는 한국과 싱가폴에 이어 가장 많은 검사를 했고 곧 세계 1위를 차지한다(?)는 야심을 드러냅니다. 어제까지 14만건의 검사에 확진률은 약 1%. 한국의 확진률이 3% 정도니까 아주 광범위하게 검사를 했네요. 거기에 이어 해외유입도 적극 차단했으니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봐야죠.
2020.03.20 19:52
제가 강의 시간에 혼자만 관심있는 질문들을 마구 하던 때가 있었는데 (저는 한국인, 여긴 한국) 조울증의 조증시기였던 걸로 의사는 진단하고 약 폭탄을 처방하더군요.
2020.03.21 18:33
2020.03.21 20:21
인종차별을 경험한 게 두 번 정도인데 모두 중국인들이었죠. 호주에 오래 살아도 중화사상은 어쩔수 없구나 생각이 드는 게, 호주 토박이 너네들 동양인 차별하면 인종차별 나쁜 거지만 대국인 우리 중국인이 다른 아시아 나라 인종을 깔보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게 걔들도 알고 하는게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태도입니다. 그래도 뭐, 유럽계 애들처럼 지나가는 사람 두들겨 패고 칼부림하고 이런 수준은 아니어서 위협은 없지만 마음의 상처는 받죠.
2020.03.21 22:16
... 애인께서는 그런 질문은 왜 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군요. 어찌되었든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