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영화

2020.03.04 16:21

Sonny 조회 수:503

저번주 일요일에 셀린 시아마의 <워터 릴리즈>를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주 주말쯤에 정리해서 올릴 거구요. 일단은 다른 이야기들만 좀 하고 싶네요. 저를 사로잡았던 건 이 영화가 필름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원래도 필름의 질감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필름영화에 빠진 적은 처음입니다. 이 영화가 아주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고 필름의 아름다움이 갑자기 찾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가끔씩 생기는 그 노이즈와 거칠은 입자들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영화는 필름이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디지털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어찌 무시하겠습니까만은. 


레트로 감성이 도져서 그런 걸까요? 필름은 기본적으로 구식 기술이고 과거를 그리는데는 최적의 재료입니다. 필름으로 뭘 찍기만 하면 자연스레 그냥 옛스런 느낌이 묻어나옵니다. 물론 <소셜 네트워크> 같은 영화를 필름으로 찍으면 좀 괴상할 것입니다. 그 영화는 현재에서 미래로 도약하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영화니까요. 핸드폰이 나오기 이전의 시대를 필름으로 찍으면 딱 좋은 것 같습니다. 60년대나 70년대 영화들도 나름 필름의 맛이 있긴 하지만 뭔가 그리운 느낌은 안들어요. 아마 제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시절이 필름에 걸쳐있어야 혼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디지털에 대한 혐오가 치솟네요. 마블 영화들을 보면서 역겨웠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화면만큼은 진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화면은 인스타스럽게 이쁜데 아련한 느낌은 별로 안들어서 좀 팬시하다는 느낌만 받았거든요. 좋아하는 필름 영화가 뭐가 있더라... 좋아한다고 하는데 말은 못하는 이 건망증! 갑자기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의 황혼>이 떠오르네요. 


영화는 미래를 그릴 수 있습니까? 미래라는 시간은 아직 가보지 못한 점이고 꿈 혹은 희망으로 이야기의 바깥에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야기든 일단 그려놓고 보면 그것은 무조건 현재의 시간을 띄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미 그려져버린 미래는 현재이자 과거로 빠르게 퇴색해가며 "미지"라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제 개인적으로 여기에 그나마 분전을 펼쳤던 영화는 <빽 투 더 퓨쳐2>와 <라라랜드>였던 것 같아요. 영화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우리가 기억을 되돌려보는 형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과거지향이 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라면, 영화는 필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워터 릴리즈>가 필름으로 담아낸 청소년기의 그 불안과 우울은 재료 자체를 닮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명백하게 깔끔해질 수 없고 아무리 즐거운 와중에도 노이즈가 끼어들 수 밖에 없는, 디지털이 되지 못한 아날로그의 미숙한 감각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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