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3 06:36
1. 피터 린치 3부작을 읽고 있습니다. 훌륭하네요. 특히 'Learn to Earn'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내용이 충실합니다. 책 표지가 싸구려처럼 보여서 떨떠름했는데, 가격이 싸고 표지 디자인이 나빴을 뿐 내용은 좋네요.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 ('A short history of capitalism') 챕터를 읽으면서, 아니 이걸 이렇게 쉽게 풀어쓸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죠. 자본주의 이전에는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었는지, 왜 자본주의가 경제체제인데도 정치체제를 바꾸는 역할을 했는지, 주식회사의 기원은 무엇인지, limited liability의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2. 몇년전부터 일본에서는 이세계 물이 유행했는데, '이세계 주점 노부'가 큰 성공을 이끈 뒤 비슷한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죠. 그런데 이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세계로 건너간 사람들 대부분이 안정적인 제도를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경제활동을 합니다. 모험가/전사/상인 등 길드가 형성되어 있고, 과제 수행에 따라 랭크가 비교적 공정하게 매겨지고, 희귀한 재료를 팔면 길드에서 정당한 값을 쳐줍니다. 바로 제도 (institution)가 안정적이란 의미죠. 만일 이세계가 중세와 같다면, 이세계로 간 사람들 대부분은 순식간에 사기를 당하고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이세계로 건너간 개인의 물질적 성공은 사실은 제도의 공정성, 투명성에 기반해 있지요. 자본주의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제도를 바꿨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기 때문이죠. 저는 '터무니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밥'과 '이세계 주점 노부'를 재밌게 읽었는데, '책벌레의 하극상'과는 달리 제도가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도가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으면 혁신을 가져오기 쉬워지고, 주인공들은 모방을 통한 혁신(이이토코토리 良いとこ取り)으로 금새 승승장구하게 되죠. '터무니...'에서는 감자튀김을 선보인다든가 '이세계 주점 노부'에서는 온갖 일식을 들여온다든가 하죠.
나라가 잘 살려면 제도가 선진적이 되어야하고, 그 중에서도 자본 시장이 선진적이어야 하죠. 그게 바로 김경율 회계사가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이유라고 봅니다.
김경율
September 14, 2019 ·
검찰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파라 파 깊이 파 얇히 파면 니 죽고
펀드건은 충분히 넓고 깊은 사건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한국 정치, 경제에 구조화된 사건이기도 하다.
혁신성장, 벤처육성한다고 금산분리 완화, 차등의결권 부여 등 뻘짓하지 말고 이번 수사 제대로 하면 코스닥 등 자본시장 잘 돌아간다. 내가 봐선 가장 시급한 벤처시장 활성화 대책이다.
지금 코스닥이 그게 어디 시장이냐?
파라 파 깊이 파 얇히 파면 니 죽고
3. 유시민씨와 진중권씨가 JTBC 신년토론에 나왔군요. 그런데 저는 이 사람들이 아니고 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진 사람들,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이거나 찬성하는 경제계 인사들 (교수, 기업인들 포함)이 나와서 토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한다고 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 경제정책을 책임진 사람들이 얼마나 설명할 수 있으며, 단기적으로 이런 저런 부작용이 있을 테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저런 이득이 있으므로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9년 1월에는 유시민 작가가 이 토론에 나왔더군요. 유시민 작가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결정합니까? 2020년에는 정치개혁을 주제로 유시민 작가가 또 나오더군요. 이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개혁을 주도합니까? 대변인들은 왜 토론에 나오질 않는 거지요? 경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왜들 이렇게 느긋한지 모르겠군요. 부동산 정책 놓고 김현아 의원과 김현미 장관 모셔놓고 이제까지 문재인 정부가 펼친 부동산 정책의 의도와 실제 결과에 대해서 서로 납득이 가도록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4. '두 교황'을 좀 보다 말았습니다. 조나단 프라이스 연기 잘합니다. 안소니 홉킨스보다 더 잘합니다. 하지만 저 고운 신발은 누가 지었을까, 저 예쁜 수단은 누가 세탁해서 다렸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영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더군요. 신부님들이 멋진 옷을 차려입고 나오기 위해서 수녀님들이 많은 봉사를 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두 명의 남자가 고담준론을 나눕니다. 사치스런 삶이죠. 설혹 자기 손으로 자기 비행기표를 끊고, 오래된 신발을 신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신적인, 지적인 측면에서 사치스런 삶입니다. 고단한 생활에 매몰되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그 여유가 곧 사치죠.
2020.01.03 07:56
2020.01.04 09:57
게다가, 그 세계의 신이 치트키 (예: 초절 필살기, 시간정지)를 한 두 개 주고 시작합니다. 엄마 아빠 치트키 (예: 공작의 아들, 엄마는 마왕 아빠는 용사)도 주어지구요.
2020.01.03 09:01
3. 주제가 경제라면 모를까, 1/1일의 토론 주제는 언론이었습니다. 중권이형이 하도 조국조국 하니까 레거시 미디어쪽 패널인 이창현 교수가 '주제가 언론 아닙니까? ' 라면서 환기를 시키더군요. 왜 경제는 주제로 안잡았냐라고 할거면 모를까...
2020.01.03 10:40
주제가 경제였던 2019년 1월에도 유시민 작가가 나왔고, 주제가 언론개혁이었던 2020년 1월 1일에도 유시민 작가가 나왔고, 주제가 정치개혁인 1월 2일에도 유시민 작가가 나옵니다. 경제정책을 담당한 사람이 나와서 경제정책을 설명하고, 정부의 대 언론 관계를 담당하는 청와대 대변인이 나와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정치개혁의 주체인 소장파 정치인들이 나와서 설명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경찰이 폭력을 외주화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정부관계자들이 PR을 유시민에게 외주화하고 있어요.
2020.01.03 10:44
유시민이 거의 모든 주제에 나오는 건 저도 탐탁지 않습니다만, 1월 1일 토론회에 경제정책 입안자가 나왔어야지는 핀트가 나간 거 아닌가요?
언론이 주제니 청와대 대변인이 언론의 문제점을 짚었어야 했다는 글을 쓰신 게 아니잖아요.
1월 1일 주제가 언론인데, 유시민이 왜 나왔냐는 말이 아니라 경제정책 입안자가 나왔어야지...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지적한 거죠.
2020.01.03 23:20
제가 쓴 포스팅을 다시 보세요. 2019년 1월 주제는 경제였고, 2020년 1월 1일 주제는 언론이었습니다. 둘다 유시민이 나왔어요. "2019년 1월에는 유시민 작가가 이 토론에 나왔더군요."에서의 이 토론은 앞 문장의 경제정책 토론을 말합니다.
2020.01.03 10:06
2. 라이트노벨은 '슬레이어즈' 와 '무책임함장 테일러' 가 마지막이라 언급하신 책들은 처음 들어보네요. 안정적인 제도가 공정하게 정착한 사회라니, '이세계 판타지' 답습니다. 사람이나 도시 이름 (독일어나 북유럽어에서 많이 차용하죠), 삽화로 표현되는 패션 (실제 유럽중세사람들 옷은 거적데기 비슷했을거 같은데..아닌가? -_-;;) 같은 설정이야 이야기 진행이랑 큰 상관관계는 없겠지요.
전 이세계 판타지물의 유행이 젊은 일본인들의 이주 욕구를 얼마만큼 반영하는지, 혹은 추동하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여성들이요. '리틀 포레스트' 는 젊은 여성이 피부 하나도 타지 않고 농사짓는 판타지지만 시골에서 자급자족 매뉴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청각 정보도 꽤 있거든요. 시골 산속에서도 케이크같은 서양요리 멋지게 해먹을 수 있다,고 말이죠. 도시에서 실패한 연애 기억에서 자가 치유도 하구요...현실에선 장기든 단기든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 일본에선 '해외주재원'은 한국과는 달리 매력적인 자리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고 들었어요. 인사고과 좋은 사람이 덤벼들만한 자리인거죠. 노동조건 빡세기로 유명한 유니클로가 아시아를 넘어 아시아계가 많은 뉴욕이나 토론토같은 북미 도시에 진출한지 몇년째인데요, 일본에서 파견나온 관리자급 인원중엔 여성비율이 높습니다. 워킹홀리데이로 단기 체류하면서 유니클로에 현지채용된 한국인 노동자분이 일본 본사에서 온 여성매니저의 '독함'을 성토하는걸 들은 적 있어요. '독함'과 근면함은 때론 구분하기 애매할것 같습니다만. 블랙기업이라고 지탄받는 유니클로의 해외성공은 어쩐지 메이지시대 수출을 책임진 섬유산업과 그 뒤의 '여공애사'를 떠올리게 해요. 100여년전 일본 방직공장은 어찌보면 70년대 한국 청계천보다 노동환경이 가혹했습니다만 그럼에도 고향집에서 하루종일 농사와 가사에 시달리는거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지원자들이 많았답니다. 그리고 시급이나 월급이 아니라 능력급이라 손이 굉장히 빠른 (근면한?) 극소수 노동자들은 급여를 모아 출세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하구요.
유니클로 매장이나 방직공장이나 그 속에서 경쟁이 혹심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100여년전보단 지금이 많이 나아졌다고 봅니다. 이웃나라 이야기지만 참으로 많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 제대로 참고했으면 좋겠어요...일본 뉴스에서 한국의 불매운동 현장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일본으로 오는 한국인 구직자 수가 이렇게 상승세입니다~ 라고 수치 보여주던데, 참 기분 묘하더라구요 -_-;;
2020.01.03 11:31
왜 출연자가 그런거냐 라고 궁금하거나 불만이 있으면 방송사에 항의하면 혹시 답볍을 들을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국도 궁극적 목적은 시청률을 통한 이익(돈)의 극대화니까요...
시청자의 입맛에 맞추는 거죠.
또다른 이유는 섭외의 어려움일수도 있구요. 정부부처의 담당자를 섭외한다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았다면,,이렇게 방송국에서 이야기한다면.
청와대 게시판에도 올릴수 있겠죠, 20만 달성이 어려워 답변을 들을지는 미지수지만요.
결국 인기셀럽인가...!
2020.01.03 23:23
제 생각에는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뒤로 숨는 거고, 대변인들은 조금만 질문이 깊게 나와도 답변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시민은 앞에 나와서 출연료 받고 유명해지고 정부 정책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죠. 역할 분담이죠. Bucks stop nowhere.
2020.01.03 13:13
4.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수녀가 대전 성심당에 가서 교황이 먹을 빵에 관해 일일이 체크했다는 기사가 떠오르네요.
2020.01.03 14:24
2020.01.04 09:58
썰전이란 프로그램 자체가 정신없고 수준이 낮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