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17:11
<희극지왕>이 나온 지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아.. 세상의 많은 영화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네요. 신 희극지왕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무엇보다도 주성치가 자신의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희극지왕>을 특별히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 무척 기뻤습니다. 긴 영욕의 세월을 거쳐 이제 흰머리가 성성한 그가 돌아보고 싶었던 건 초심이었을까요. 자신이 데뷔시킨 장백지와도 더빙 때문에 오랜만에 만났던데, 그 청초했던 장백지도 2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터, 서로 감회가 어땠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희극지왕은 우선 주인공이 여자라는 설정과, 특유의 이쁜 여배우라도 가차 없이(?) 막 다루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ㅋㅋ 그리고 현실은 10년 째 엑스트라이지만 순수하고 신념 있고 열등감이 없는 긍정적인 성격인 점이 좋았어요. 초반에 <백설공주: 차이나타운의 피바다>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장면은 주성치표 코미디를 즐기는 부분입니다. 유치하고 키치하고 풍자적이며, 짧게 치고 빠지는 타이밍 감각까지, 오랜만에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ㅋㅋ 그리고 원작의 명장면을 패러디 하는 장면에서는, 익숙한 그 음악이 나오는 순간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원작은 비극이지만 희극적으로 끝났던 것 같은데, 신편은 희극이지만 비극의 향이 진하게 풍기는 채로 끝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보니 주성치는 원작에서 주인공이 바다를 향해 외쳤던 ‘분투, 노력’이라는 네 글자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희망이 없는 데도 희망을 가져야 했던 엑스트라 시절의 기억, “아, 앞이 캄캄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니야. 날이 밝아오면 아름다울 거야.” 희극은 ‘희’와 ‘비’가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고, 가장 비참했던 기억으로 가장 웃긴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광대의 눈물을 이해하는 진정한 ‘코미디의 왕’인 것 같습니다. 희비가 공존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찍어내는 데 탁월한 봉준호 감독에게서도, 가끔 주성치스러운 향기를 희미하게 느끼곤 합니다.
마지막 부가영상에서 주성치 감독이 나오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워 소리지를 뻔.ㅋㅋ 흰머리는 났어도 꽤 예전 모습 그대로의 느낌이었습니다.
2019.10.26 21:37
2019.10.27 04:58
큰 규모의 주성치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B급 감성의 오리지날(?) 주성치 영화들은 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희극지왕은 그래도 드라마가 강한 편인데 저급 코미디 부분은 아무래도 적응이 어려우실 수도.
2019.10.26 23:41
주성치에 대한 인상 깊었던 기억 하나는 내한 인터뷰... 였는지 암튼 한국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였어요.
영화 내용들과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다가 갑자기 한국의 영화 푯값을 물어보더니
...그것 밖에 안 해요? 그럼 한국 관객분들은 두 번씩 보세요.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의 얘길 하는데 시종일관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해서 웃어야할지 당황해야할지 알 수 없었던. ㅋㅋㅋ
며칠 전 게시판 글부터 해서 저도 이 영화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희극지왕'을 본지 하도 오래돼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안 나요. orz
보들이님 글 내용을 봐도 그렇고 어느 정도는 기억이 나야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은 전편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부터 알아봐야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2019.10.27 04:54
원래 멀쩡한 얼굴로 헛소리 하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인 걸로.ㅋㅋ 전 주성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싸인 사진이에요.. 왼쪽은 선착순 5명에게 해준 거, 오른쪽은 나머지에게 해준 거ㅋㅋ 읽어주셔서 감사!
2019.10.26 23:50
2019.10.27 04:46
공감! 비록 세계적인 트로피는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기여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포스터의 백설공주 뒷모습 몹시 맘에 드네요.
전 <쿵푸허슬>을 참 재밌게 봐서 주성치 영화를 몽땅 다 보겠다고 의욕에 불탔는데
<식신>을 한 20분 보다가 재미없어 그만 본 후로는 주성치 영화와 멀어졌죠.
<희극지왕>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한번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