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9 04:10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조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놀라운 성취였습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좀 고개가 갸웃해지는 영화였죠.
『다크 나이트』의 눈부신 성취를 이으려고 하기보다는, 3부작을 마무리 지으려는 강박이 영화를 옭죄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서사는 좀처럼 동의하기 힘듭니다.
테러리스트들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세상을 부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 덕에 주식 시장이 무너지고, 감옥이 붕괴되고, 화려하게 살던 기득권자들이 공격당합니다.
그런데, 그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사실 사적 복수였죠.
그들은 처음부터 복수를 위해 이 화려한 쇼를 펼친 겁니다.
영웅은 가짜 혁명가를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습니다.
이 서사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입니다.
금융 위기가 도래하고, 금융가들은 자기 기업의 몰락을 이용해 한 몫 잡습니다.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것은 노동자들입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월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부유층은 마천루 위에서 와인을 마시며 시위대를 내려다봅니다.
이 시기에 바스티유(블랙 게이트)를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를 무찌르기 위해 공권력(경찰)과 손잡는 영웅의 서사는 뭔가 영 마뜩찮죠.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을 쓴 『맨 오브 스틸』에서 어쩌면 이 혼돈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민자 슈퍼맨은 말미에 미군 장교 앞에서 자신이 온전한 미국인임을 선언합니다.
외계인도 녹여버리는 위대한 용광로.
어쨌든 우리는 월가 시위를 지나,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배트맨 서사를 만났습니다.
『조커』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정확히 반대편에 서있습니다.
정점에 서 있던 영웅이 몰락하고, 다시 날아오르는 서사와 바닥에서 시작해 서서히 끓어오르다가 다시 시궁창에 처박히는 악당의 서사.
바닥에 처박혀 있던 아서 플렉은 모종의 사건을 겪은 뒤 서서히 삶에서 희망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연인과 자경단이라며 추켜 세워주는 사람들, 그리고 되찾은 아버지.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허위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의도치 않게 조커가 됩니다.
강한 미국과 위대한 자본주의의 시대 속에서 소외된 남자가 의도치 않게 일궈낸 파괴된 도시.
『조커』는 시의적절한 것 같습니다.
황금사자상은 그 시의적절함에 대한 표창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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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입니다.
말미에 불타오르는 도시를 보며 광화문과 서초동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그냥 떠올랐습니다.
둘 다 건투를 빕니다.
2019.10.09 10:25
2019.10.10 04:09
민중의 분노는 서사 안에서 충분히 당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봅니다.
고담은 청소부 파업으로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고, 복지 예산이 축소되서 빈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됐죠.
권력층은 빈민들의 분노를 논리적 근거 없는 히스테리 쯤으로 치부합니다.
총체적 난국이죠.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됐다고 봐요.
문제는 조커가 그들의 심볼이 될 만한 존재냐는 거죠.
물론, 조커는 그들의 심볼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철 사건은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사건이에요.
조커가 주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주체는 조커를 심볼로 삼아 자경단이라 추켜세우고 그걸 사건으로 고정시키려는 빈민들이죠.
오히려 거기에 충동적으로 몸을 던진 아서 플렉이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의 고난이 충분히 임계까지 밀어붙여지지 않았습니다.
『조커』가 인셀 논란에 휘말린 것도 그 때문이겠죠.
아서 플렉은 너무 빨리 폭발합니다.
'아버지 살해'로 이어지는 광기를 뿜어내려면 그는 좀 더 극단까지 몰렸어야 했어요.
하지만 제작진은 영화가 신파가 될까봐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균형 잡기란 언제나 어렵죠.
2019.10.09 10:40
마지막 한마디가 갸우뚱하게 만드네요. 양쪽 진영을 다 지지한다는 건가요?
2019.10.10 04:11
아니요.
둘 다 지지하지 않습니다.
다크나이트라이즈 서사 관련 이야기에는 공감이 갑니다.
테러범 = 프랑스혁명이 동일시 되면서 위기에 빠진 공권력을 회복시켜 막는다는 이야기는 당시에 보기에도 좀 희한해 보였죠.
그런데 이번 조커 이야기에서 그에 상응할만한 서사를 붙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질환 망상장애를 가진 조커 개인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다가 후반부 민중 투쟁의 아이콘이 되는 장면이,
애초에 고담 현실이나 광대 마스크 민중들이 어떻게 분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별다른 묘사도 없이 이어져서 좀 공허해보이고,
그 부분에서 감독이나 각본가의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