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3 17:12
우디 알렌의 ‘To Rome with Love’를 봤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로마라는 도시 그 자체죠. 비행기 안타도 여행간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자하니 알렉스 정의 기고가 기억났습니다. 서울도 로마처럼 저렇게 스토리가 많은 도시죠. 스물 셋에 한국으로 돌아온 미국 교포가 삼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자기를 재발견하는 내용이죠.글로벌 유목민 세대의 감성을 드러낸 에세이인데, 자기가 내재화시켜버린 인종차별도 예민하개 감지하고 있더군요. 이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한강의 야경이 보고 싶어집니대
This life, too, was a masquerade. One gyopo friend from Texas said that Korea was like quicksand, and the more you struggled to leave, the more the country would suck you in. I felt that pull, how I could become lulled into this false sense of self. I was Korean-American, and felt I had to stake my claim back home in America. This was a moment to exist in the hyphenate, in the breath between two worlds.
https://www.buzzfeednews.com/article/ealexjung/korean-american-asian-american
2019.05.24 08:58
2019.05.24 12:36
버즈피드의 unpacking 시리즈인데 제 생각에는 이 시리즈 중에서 알렉스 정의 글이 가장 뛰어나보입니다.
내가 놓쳤다고 생각했던 그런 인생을 나는 살고 있었다. 거기에 수반하는 재미, 권력, 향락까지를. 나는 그 인생에 목말랐고 거기에 아무런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셨다. 나는 음주에 능했다. 매일 저녁이 의지의 과시였다. 한 번은 도발에 응해서 원샷에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너 한국에서 사업가 하면 잘하겠는데, 남자들이 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활짝 웃고 모두에게 한잔씩 따른 다음 마시라고 말했다. 낯선 사람들의 테이블에 끼어들었고 때로는 그들과 잤다. 나는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나는 유부남에게 추파를 던졌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나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인생 최초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중략
새조개와 시샤모를 안주로 우리는 조용히 소주를 홀짝거렸다. 석유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밤을 보냈을 때를 기억했다. 바로 이 포장마차에서 가리비와 소주를 마시며 친구들과 울었더랬다. 여름의 끝이었고 날씨는 막 반으로 쪼갠 수박처럼 청량했다. 아줌마는 내가 떠난다는 걸 믿지 못해했다. 손님이 적은 밤이었기에 우리와 맥주를 몇 잔 마시다라 우리 계란을 태워먹고 다른 테이블에 계란을 내주었다. 내일이면 미국으로 간다고 하니, 아줌마는 나더러 쌍년이랬다.
한국에는 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감정", "심장", "정서"라고 번역한다. 영어로는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한자로는 두 부분으로 쪼개져 있다. 한 쪽은 심장이고 한쪽은 푸르다는 뜻이다. 한국어로는 청색인지 녹색인지 딱히 구분없는 색이다. 청춘의 색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전생에서 만난 것 같이 그들을 기억하는 느낌이다. 매일 목구멍으로 단단히 치받치는 그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없어질 때는 너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정은 네가 놓아버려야 할 때, 쥐게 만든다. 한국인들은, 사랑은 비극이고 정은 치명적이라고 종종 말한다.
아줌마는 언제 또 한국에 올 거냐고 물었다. 몰라요, 라고 답했다. 하지만 다시 올 거예요, 라고 약속했다.
2019.05.24 09:00
딴 얘기지만 곧 성인이 되는 아들의 음주 생활이 조금 걱정 되네요.
안주를 꼭 먹어야 한다. 안주없이 술먹으면 바로 토한다. 술은 고기를 위한 게 술이다. 빈속엔 독이다.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만.
알렉스처럼 마셔대겠죠. 저 또한 그랬던 것 같고...
링크해주신 알렉스 정의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저는 외람되게도 교포인 제 아들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자신의 롤모델이나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자라지 못한 해외의 2세 동포들의 삶이 젊을 때 얼마나 신산할 수 있는지 느끼게 되네요.
게다가 알렉스처럼 게이라면 더더구나 쉽지 않았겠죠.
저도 옮겨주신 문장이 가장 인상 깊네요. 어떻게든 자란 곳에 돌아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겠죠.
그것은 1세대 이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 내린 곳에서 목소리를 높여야죠, 물론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