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제다이 - 최고의 스타워즈이자 최악의 스타워즈

뭐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저는 상당히 괜찮게 봤습니다. 끝물이나 시류에 편승했다고 폄훼받을 망작은 분명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스타워즈 최고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어요. 반란군은 정말 반란군같고, 제다이는 정말 제다이같습니다. 사실 본편 세계에서 제다이들은 구공화국 시절부터 폼이나 잡고 다녔지 뭐 제대로 한 일이 있나요? 무슨 포스로 전함과 맞장뜨는 것도 아니고(그런데 스타워즈 게임에 나온 '스타킬러'는 무려 포스로 전함을 격추시킴;;), 그 지혜롭다는 양반들이 공화국 무너지는 건 낌새조차 못 알아채고, 그냥 친절하게 알려주면 될걸 괜히 선문답놀음이나 하다 제자가 타락해서 시스가 된 게 부지기수고...=_=;("제다이의 유일한 유산은 다스 베이더 같은 실패작들 뿐"이란 루크의 셀프 디스가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는;;) 결국 정식 제다이도 아니고 포스빨로 단기속성반 나온 루크만 제 역할 했죠. '라스트 제다이'에서의 제다이는 반란군이 가진 희망의 상징으로 제대로 된 자리를 찾습니다. 

다만 이게 스타워즈와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어요.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린 '공룡 둘리에 관한 슬픈 오마주'가 기존의 캐릭터들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며 엄청난 한방을 날린 명작임은 분명하지만, 이 작품이 둘리 세계관의 정사에는 낄 리가 없고 끼어서도 안 됩니다. 저에겐 '라스트 제다이'가 좀 그런 느낌이에요. 분명 파격적이고 좋은 이야기인데, 이게 스타워즈 본편과 어울리는지는 의문입니다. 

아직 캐릭터가 정립되지 않은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손댄 것과, 30여년 동안 확고하게 굳은 캐릭터를 손댄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_<;; 그리고 '제국의 역습'은 그나마 스타워즈의 세계관 속의 논리를 확장시키는 가운데 파격이라면, '라스트 제다이'는 아예 그 스타워즈 세계관의 논리 자체에 반기를 들고 있죠. 

'라스트 제다이' 속 얼렁뚱땅 허술한 부분이나(제국군 코앞에 추락하고 부상까지 심하게 입은 핀&로즈가 멀쩡하게 기지까지 돌아온다든지) 과학적 오류 때문에 까이는 탓도 있지만, 뭐 스타워즈에서 논리적으로 허술한 게 '라스트 제다이'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캐릭터 & 세계관 변화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아니 디즈니 돈도 많고 스타워즈는 야심찬 프로젝트일텐데 왜 하필...? O_O;;;; 저스티스 리그는 스나이더의 중도하차나 DCU 최대의 빌런인 워너브로스 수뇌부 늙은이들의 고루함을 탓하기 이전에 각본 자체가 별로였건만 도대체 뭘 믿고...???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파격을 외전도 아닌 정사에서 보여줬다는게 '라스트 제다이' 최대의 장점이긴 합니다. 저도 그다지 하드코어 팬은 아니라 스타워즈 설정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유치함조차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아우라가 스타워즈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패러디물이나 외전도 아닌, 본편 후속작에서 이걸 정면으로 까는 녀석이 나올 줄은 몰랐죠. 너무 신화화된 탓에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며 점점 화석처럼 굳어가던 굳어가던 스타워즈를 뒤흔들어 어쩌면 새로운 불꽃이 타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마음에 드는 녀석입니다. '깨어난 포스'는 올드팬이나 신규진입 팬들이나 모두 큰 불만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손잡고 영화를 본 뒤 밀레니엄 팰콘 모형을 함께 조립하는 흐뭇한 광경을 만들어내기에도 좋았지만 기존의 세계관에서 더 나아갈 용기는 없는 작품이었으니까요. 뭐 이런 점을 제외하면 '라스트 제다이'는 꽤나 충실한 스타워즈 후속작입니다. 일단 그 논란의 파격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만 성립이 가능한 거고, 올드 팬들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깨어난 포스'보다도 옛 인물들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예우를 갖추고 있죠. 공주가 아닌 저항군의 상징이자 지도자로서 기품과 위엄을 보여주는 레아 오르가나 장군의 모습이나 제다이다운 최후를 맞은 루크, CG가 아닌 인형 모습으로 출연한 요다 등은 팬서비스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저도 최고인 부분과 최악인 부분이 뒤섞여 결과적으로는 평균보다 조금 나은 어디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라고 평하기엔 올드 팬덤의 반발을 차치하고서라도 영화 자체가 허술한 구석이 많고, 그렇다고 최악이라 평하기엔 인물과 세계관 묘사가 무척 매력적이죠.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이제까지의 원작의 명성에 기댄 추억팔이를 넘어 뭔가 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면, '로그 원'과 '라스트 제다이'는 그 변곡점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최고라는 주장과 최악이라는 주장 양편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최고인 부분과 최악의 부분이 뒤섞여 중간 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작품들 중에선 그래도 평균은 넘는다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대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놀랍군. 네 말에서 맞는 게 하나도 없다니. 저항군은 오늘 새로 태어났고,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나는 마지막 제다이가 아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라스트 제다이'가 평가받을만 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벼랑 끝에 몰릴대로 몰린 저항군이 다음편 2시간 동안 전세를 역전시키는 무리한 진행 대신, 9편에서 저항군 재건의 가능성 정도만 보여주고 또다른 3부작으로 전쟁 이야기를 풀어놓을만한 엄청난 씨앗을 뿌린 셈이잖아요. 

저도 하드코어 팬이 아니라 그런지, 올드 팬덤의 반발이 좀 의외였어요. 파격적인 부분도 있지만, 충실하게 스타워즈스러운 면도 많은 작품이거든요. 핀 & 로즈의 활극은 외계동물의 적극적 활용+드로이드의 활약+적당히 행운에 의존한 전개 등 전형적인 스타워즈식 진행이고, 오히려 '깨어난 포스'보다도 옛 캐릭터들에게 훨씬 예우를 갖추고 있고요. 이 정도면 올드 팬들도 좋아할만 한데 싶었는데 생각보다 반발이 커서 당황;; 

뭐 저항군의 무능함이야... 전략 전술이라는 것도 어지간히 병력과 자원이 받쳐줄 때나 가능한 거지, 7편에서 함대가 통째로 증발하고 달랑 경순양함 + 지원함 2척 남은 상황에 적의 추격을 따돌릴 수도 없는데 뭘 어쩔 수 있을까 싶습니다;; 광속 점프 전 전투에서 그나마 없는 살림에 폭격기 편대까지 전멸시키긴 했지만, 전투기 & 폭격기 몇 대로 전투함 한 대 잡은 것만으로도 꽤나 큰 전과죠. 최소한 수송선 탈출작전 감행할 때 수송선을 절반 이상 잃고 나서야 뒤늦게 순양함이 방향 틀며 충각 돌격 감행하지 말고, 탈출포드든 데브리든 잔뜩 방출해 적의 시야를 분산시킨 뒤 수송선이 섞여나오는 전술이라든지, 수송선 내보내자마자 순양함이 변침한다든지 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줬으면 싶긴 했습니다만...=_=;;